이 글에서는 기형도의 시에 나타나는 도시 공간의 특성과 양상을 파악하고, 시의 화자 또는 시 속에 출현하는 인물들과 도시 공간이 이루는 동적인 역학을 분석하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도시라는 구체적 삶의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실에 대응하는 기형도의 미학적 실천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기형도의 시가 한국시사에 던진 새롭고 유의미한 질문들을 구체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기형도는 산업화라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는 도시 공간이 창출하는 거대한 은폐와 배제, 이를 통해 재생산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무감각을 당대의 어떤 시보다 예리하게 간취해내었다. 시인은 도시의 필연적 익명성 속에 분별되지 않고 비정체화된 그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표정을 보아냄으로써, 존재를 은폐하는 도시의 장막에 구멍을 내고자 한다. 기형도의 시들에서 유난히 ‘본다’는 동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시인의 미학적 태도 때문이다. 기형도 시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도시 구석 구석의 인물들의 슬픔과 고독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에 연루됨으로써 존재를 망각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윤리적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출구 없이 캄캄한 시간을 분할하여 도시적 시공간의 은폐에 대응하고 그 구조의 속성을 관통하고자 하는 시인의 태도가 응시의 미학이었다면, 도시적 삶의 구조가 개인에게 가져온 일상화된 고립과 단절감을 넘어서는 시적 전환과 희망은 기형도의 시에서 역설적으로 붕괴의 순간에 실현된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갑자기 흘리는 눈물이나, 불현듯 무너지고야 마는 사태는 외부의 시공간에 동화되어 풍경에 침윤되어 가던 신체를 그 시공간의 구조에서 분할해낸다. 기형도의 시 속에 붕괴로 인해 열리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는 변증적 전환의 계기를 창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