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해방 직후 남한에서 민족주의 고조에 따라 민족국가 건설·운영의 주체인 민족의 구성/생산은 핵심적 의제였다. 이에 유의하여, 본 연구는 해방 직후(1945~1948) 남한의 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이루어진 민족 주체, 특히 전사형 국민 구성 문제를 검토한다.
근대 시기 숭무(崇武) 정신의 표상으로 구성된 무사는 중등 교과서의 전통시대 서사에서 외적의 침입 앞에서 국가와의 의리를 생각하며 불굴의 용기와 사생(死生)의 결의로 목숨을 걸고 배수진까지 치면서 철저 항전을 결행하는 존재로 나타났다. 또한 무사는 주도면밀한 전술·전략을 운용해 승리를 거두는, 전장(戰場) 기획자, 군사(軍事)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사는 인문적 소양과 교양을 갖춘 문인(文人), 또 실제적 지식인, 발명가·과학자이자 ‘지’(智)와 ‘의’(義), 또 ‘성’(誠)을 구비한, 전인적(全人的) 인격자이기도 했다. 나아가 무사는 지혜와 예지를 갖춘 선지자이자 지휘력을 갖추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였다.
이어서 한국사 교과서는 고구려에 관한 서사를 통해 전통 시대 한국인을 숭무의 민족으로 재현한다. 고구려인이 가진 숭무(崇武)와 용맹, 그리고 불굴의 정신 등의 정신적 특성은 강대(强大)한 고구려의 전성기를 낳았다. 이처럼 고구려인은 교과서에서 집단적으로 숭무의 민족으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고구려 멸망이후 신라의 독서삼품과와 고려의 과거제 실시 등으로 문약이 신라와 고려 시대 관리와 그 후보자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해서 조선 시대에 들어서서 그것은 사회화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숭무성은 여·몽 전쟁 시 고려 무신과 무신 정권, 또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사례 등에서처럼 ‘전국의 민’에 의해 표현되었다고 교과서는 이야기한다.
끝으로 해방 직후 한국사 중등 교과서는 전통시대 한국인을 민족적으로 피해를 입고 희생을 보는 집단으로 재현한다. 즉 교과서는 한국인을 민족으로 집단화하고, ‘일부’ 한국인의 피해를 ‘민족 전체’의 것으로 전화시키면서 전통 시대‘우리 민족 사회’를 ‘외족’의 피해자로 재현하였다. 또한 교과서는 ‘외적’의 한국 문화 파괴와 한국인 살상, 그리고 한국인의 물적 피해 등을 재현하는 다양한 서사 전략의 개발·동원 속에서 한국인의 민족적 피해자상을, 특히 보통 사람들의피해자상을 구상화(具象化)하였다. 이러한 것은 최종적으로 학생·독자들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사가 되어 총을 들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