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摴蒲記)에 재현된 공간의 역사지리적 구체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만복사저포기」는 전라북도 남원시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로서, 김시습은 28세이던 1462년에 실제로 호남을 여행하고 만복사를 포함한 남원 일대를 답사한 경험을 소설적 공간의 창조에 반영했다. 따라서 「만복사저포기」에 언급된 지명은 남원 고을의 실재하던 장소로서 역사지리적 접근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설적 공간을 구체적으로 비정하는 작업은, 소설의 서사가 갖는 의미와 작가의 창작 의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만복사저포기」의 서사와 결부하여 거론할 만한 장소로는 만복사와 지리산, 그리고 보련사와 개령동을 들 수 있다. 만복사는 전북 남원시 왕정동의 만복사지를 통해 그 장소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입지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 절이 남원 읍성 인근에서 오랫동안 고을 백성들의 소망을 두루 수렴하는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리산은 남주인공 양생이 목격된 마지막 장소로서 ‘부지소종’(不知所終)이라는 소설의 결말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만복사의 경내에서 멀리 지리산의 능선이 보인다는 점은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장소가 그 쓸쓸한 결말을 암시하는 공간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한편 보련사는 보련산 아래에 있던 사찰로서, 그 위치는 전북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로 추정된다. 이곳은 여주인공의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개의하지 않고 그와의 사랑에 몰입하던 양생이 결국 상대방이 이승에 머물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비극적 절정의 순간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령동은 익명의 여주인공이 주로 속한 공간으로, 1379년 혹은 1380년에 있었던 왜구의 남원 침입 때 희생된 그 여성이 임시로 매장된 장소다. 본고에서는 이 개령동이 전북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개령암지 아래의 골짜기라는 추론을 최초로 제기했다. 개령암은 지리산 정령치 인근에 있던 사찰인데, 김시습은 1462년 남원에서 함양을 거쳐 경주로 가는 노정에 그 근방을 경유했다. 개령동의 입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곳이 지리산의 권역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양생이 여주인공과 함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으로 그의 마음에 새겨진 장소이자 지리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개령동은, 단 한 번의 사랑을 끝내 간직한 채 사라진 양생의 동선에서 중요한 좌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