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도광(1821~1850)·함풍(1851~1861) 연간은 내우외환에 처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청나라 학계는 여전히 고증학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일부 문인들이 위기의식에서 출발하여 경세의 학문을 창도하였고 이는 조정의 지지와 문단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문단에서는 송시파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비슷한 시적 경향을 가진 동성파 문인들이 가세하여 송시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본고에서는 청나라 학풍과 문단의 변화를 기반으로 이 시기에 조선 사신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했던 청나라 문인들의 인맥과 교류, 성향 등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 조선 사신들과 교유했던 문인들은 일단 상당수가 진사 출신이어서 높은 문학적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 적지 않은 문인들이 아편전쟁 혹은 태평천국군과의 전쟁 등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였으므로 상당한 우환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학 경향으로 본다면 송시파와 동성파로 나눌 수 있는데, 본고에서는 송시파에서는 고증학자이면서도 송시파의 핵심 인물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장목(張穆, 1805~1849)을 중심으로 그의 학문적 경향과 시의 특징, 조선인과의 교류 등을 살펴보았다. 동성파에 대해서는 주기(朱琦, 1801~1861)를 중심으로 시가 창작 특징과 조선 문인들과의 교유를 살펴보았다. 이들의 학문적 경향과 시가 풍격은 조선의 문인들에게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