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문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유럽으로 파견한 세 차례 사절단의 여행기에 나타난 대양 항로, 특히 제국항로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897년 민영환(閔泳煥)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년 축하식을 다녀온 일, 1901년 김만수(金晩秀)가 프랑스 공사로 임명되어 유럽에 다녀온 일, 1902년 이재각(李載覺)이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다녀온 일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제국항로란 영국이 인도와 중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개척한 항로인데, 동아시아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 항로라고 부를 수 있는 서쪽 방향이다. 이 코스는 인천 제물포를 출발해 청국, 동중국해, 싱가포르, 인도양, 수에즈 운하, 지중해, 유럽과 영국을 거쳐 다시 거꾸로 지중해, 수에즈 운하, 인도양, 싱가포르, 동중국해, 청국을 통해 인천으로 돌아오는 경로이다. 당시 제국항로는 유럽으로 가는 일반적인 코스였다.
대한제국 시기 해외사절단의 경우 그들보다 훨씬 일찍 세계 일주를 한 청국의 벌링게임(Burlingame) 사절단이나 일본의 이와쿠라(岩倉) 사절단과 비교해 볼 때 여행기가 소략한 편이다. 본문에서 다룬 해양문명 관련 기사만 보더라도 단편적이며 구체적이지 못하다. 물론 사절단의 규모나 기간에서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기차나 윤선과 같은 서구 근대 문명을 경험하면서 받은 충격이나 세계 지리와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공통적이며, 이것은 점차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 균열을 가져왔다. 대체로 민영환은 군부대신으로서 군사 무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면, 이종응(李鍾應)과 김만수는 도로나 철로와 같은 교통시설에 관심이 두드러졌다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