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뢰번에 위치했던 루뱅가톨릭대학교(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는 벨기에와 주변 국가들에 의해 지적 중심으로 여겨졌던 곳으로 그 도서관 역시 깊은 역사적 유래를 가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고 군사적 시설이 아닌 대학 도서관을 파괴하고 방화하자 국제사회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도서관 재건을 위한 뢰번국제사업을 조성하고 추진했다.
일본은 이 사업에 동참하여 도서 기증을 추진했는데, 유럽에 일본문화를 전파한다는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문부성 산하에 뢰번국제사업위원회를 결성하고 재벌 등에 기부를 요청했으며, 표준도서목록을 제작해 기증 도서를 마련했다. 그리하여 6차례로 나누어 벨기에로 기증 도서를 보냈고, 2년 8개월간 도서 3,202부 13,682책이 송부되었다.
그런데 일본 뢰번국제사업위원회에서 보낸 도서 중에는 ‘조선총독부 기증서’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조선 도서 38종 181책, 조선총독부 간행물 7종 24책과 『곤여전도』까지 포함한 약 200여 책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도서는 조선 도서 38종으로, 당시 학무과분실에서 관리하던 규장각 도서출납부상의 반출 기록과 일치한다. 즉, 학무과분실에서 반출한 책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의 도서 및 기록류를 조선총독부로 강제 접수한 이래 취조국, 참사관분실을 거쳐 1920년대 중반 당시에는 학무국 소관으로 학무과분실에서 보관하고 있었고, 그중에서 도서를 선정해 뢰번으로 보냈음을 알 수 있다. 현지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살펴보면 고종의 서재인 집옥재나 왕세자 교육기관인 시강원 등의 장서인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도서 38종의 구성을 보면 언해본과 어정서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여기에 『조선어사전』, 『조선총독부통계연보』, 조선총독부의 영문 시정연보 등 조선총독부 간행물 몇 종과 함께 보내졌다. 벨기에를 원조하는 국제 사업에 동참함과 동시에 일본의 문화를 유럽에 전파하고자 했던 당시 일본 측의 의도를 함께 고려했을 때, 조선총독부에서는 독자적인 문자와 유교적 소양을 가진 나라인 조선을 통치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선전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루뱅가톨릭대학교 도서관은 독일에 의해 또다시 더욱 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소위 ‘일본 컬렉션’은 우연하게도 거의 피해 없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1968년 언어 분쟁의 결과 루뱅라뇌브 지역에 프랑스어계 루뱅가톨릭대학교(UCL)가 분리 설치될 때 도서관 장서도 나뉘었는데 ‘일본 컬렉션’ 도서들 일체는 UCL로 이관되면서 현재 루뱅라뇌브에 위치한 UCL에서 소장되고 있다. 이후 일부 희귀서나 미술 관련 도서들이 사라진 경우도 확인된다고 하나 조선 도서들은 산일 없이 소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류상으로는 1925년 송부 당시의 상황 그대로 소장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컬렉션’의 일부로 편성되어 있으며 목록에도 일본어 발음의 로마자 표기로 올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