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석사에서 ‘격물’은 앎을 확장하기 위해 대상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관점은 ‘격물’을 인식론 영역에 귀속시켜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물론, ‘격물’이 세계에 관한 객관적인, 혹은 사실을 기술하는 지식의 축적을 가리킨다고만 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려진 관점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론적 탐구가 가치 지향적인 앎을 추구하는 것과 일치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차원의 선한 행위를 성취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신에게 걸맞은 최적의 상태에 이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북송대에서 주희로 넘어가는 ‘격물’ 이해의 변화를 확인하고, 주희와 왕양명의 격물론이 함의하는 인간론을 살펴보려 한다. 그 배면에는 격물을 통한 지적 확장이 어떻게 도덕적 행위로 이어지는가라는 문제와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지식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준거가 지식 자체의 정합성이나 다른 근거를 토대로 삼기보다, 인식주체라는 덕인식론의 입론은 우리의 앎이 올바른 지적 행위자와 만날 때, 규범적인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知’ 의 성격이다. 주희와 왕양명이 ‘지’를 다르게 규정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인간론에서 어떤 차이가 벌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요컨대, 앎의 확장이 어떤 인간이 되느냐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실은 어떤 인간이냐에 따라 격물의 내용과 그 결과물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