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종용록』을 대상으로 서흥 김씨의 삶의 조건과 유서의 서술 맥락을 살펴보고, 유서가 당대 어떻게 읽히고 재맥락화되었는지 확인했다.
김부인이 혼인 후 시가에서 보낸 5, 6년 동안의 생활은 주변인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관찰 속에 놓여있었다. 김부인은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무엇을 보여야 하고 무엇을 보여서는 안 되는지 검열했다. 효열을 규범으로 삼아야 하는 여성들은 긴장 속에 일상을 보내며 감정의 절제와 노출을 조율하고 ‘보이는 모습’을 의식해야 했다. 김부인의 다른 모습이 통제와 절제 가운데 겉으로 드러나더라도 주변 시선에 의미있게 포착되거나 기억되지 않았다.
김부인이 남긴 여러 편 유서에는 말해야만 하는 명분과 그 이면의 속내가 담겨 있다. 〈벽상서〉와 〈아바님 젼상사리〉에서는 본인의 윤리적 태도와 결단을 드러내고 죽음이 대의를 위한 것임을 밝히며 관계 윤리에 합당한 발화를 했다. 그러나 〈김부인 유ᄒᆞᆫ서〉에서는 예나 금기와 상관없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후회와 엉킨 감정들을 풀어내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수치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김부인은 유서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규정하지만 해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부인의 유서는 김부인의 사적 바람보다는 공적 의미가 강조되는 방식으로 독해되었다. 예로 수렴되지 않는 김부인의 심정은 중요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의 글은 순절을 다짐하는 이념적 발화로 맥락화되고 다른 발화는 읽히지 않았다. 따라서 김부인의 목소리를 날 것으로 듣는 것은 해석의 겹을 걷어내고 그의 삶의 조건을 고려하여 ‘읽히지 않는’ 문장을 읽어내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