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중국 역대 황실 여자 예복으로 사용된 적의(翟衣) 형태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적의는 『주례(周禮); Zhouli』에서 기원한 적문(翟紋: 꿩 무늬)이 있는 황실 여자 예복으로, 남북조시대에 『주례』에 기반해 제도를 정비하면서 황실 관복제도에 나타나기 시작해 명대(明代)까지 중국 역대 황실 최고 예복으로 사용된다. 『주례』 「내사복(內司服);Neisifu」 주(注)에서 정현(鄭玄; Zhengxuan)은 육복을 의(衣; Ui)와 상(裳; Sang)이 연결된 심의(深衣; Simui) 형태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1370년(洪武3) 편찬된 『명집례(明集禮); Mingjili』 「관복도(冠服圖); Guanfutu」에 수록된 명 황후 휘의(褘衣; Hwiui) 도식(圖式)은 위아래 구분 없는 통재(通裁; Tongjae) 형태로, 이 형태는 고려말기와 대한제국시대 적의에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중국은 물론 한국 적의 형태의 연원을 파악하기 위해 언제부터 황실 여자 예복이 이와 같은 통재 형태를 하게 되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주례』 「내사복」 경문(經文) 및 정현의 주를 먼저 정리하고, 역대 중국 황실 여자 관복제도, 관련 출토유물, 회화, 도식을 활용해 적의 형태 변화를 분석하였다. 정현은 한(漢)의 곡거식(曲裾式; curved clothes) 옷을 들어 심의를 이해하였다. 곡거식 옷은 점차 장식성이 강한 규의(袿衣)로 변화되어 후한(後漢) 및 남조(南朝) 황실 여자 예복으로 사용된다. 당대(唐代)부터 심의 형태의 옷이 통재 형태로 변화됨에 따라 황실 여자 예복에 상(裳)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금대(金代) 제도를 통해 휘의와 함께 착용하는 상(裳)의 구체적 정보를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