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순조 27)의 존숭례(尊崇禮)와 진작례(進爵禮)를 기록한 의궤에는 한글 문헌의 종류뿐만 아니라 제작 물품과 수량, 이용자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기록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당시 의례는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거행하여 전례와 다른 부분이 많았으므로 일반적인 사례로 보기는 어려우나, 여성의 역할과 한글 문헌의 제작 관련성을 밝히는 데에는 매우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 의례는 원손(元孫, 훗날의 憲宗)의 탄생을 기념하여 왕과 왕비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이를 축하하는 의식으로서, 모두 창경궁(昌慶宮) 자경전(慈慶殿) 곧 내전(內殿)에서 거행됨에 따라 여성의 참여율이 높았다. 이에 따라 다수의 한글 문헌이 제작될 수 있었다. 의례의 주인공인 왕비에게는 의주(儀註)·홀기(笏記)·책문(冊文)·보문(寶文)·치사(致辭)·전문(箋文)·악장(樂章)의 한글본이 제공되었으며, 왕세자빈과 공주에게는 그들의 이름으로 올리는 치사와 의주 및 홀기의 한글본이 제공되었다. 특히 진작례와 관련된 의궤(儀軌)는 왕비와 왕세자빈을 위하여 언해본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관(女官)과 여령(女伶)에게는 그들이 직접 낭독하는 책문·보문·치사·전문과 창(唱)의 대본이 되는 홀기‧악장의 한글본이 제공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의궤 기록을 바탕으로 이용자의 신분과 역할에 따라 다르게 제작된 한글 문헌의 종류와 수량, 제작 물품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