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양보(朝陽報)가 여성교육을 강조하고 현모담론을 유포하는 방식을 전근대 여성담론의 구성방식과 비교하여 분석했다.
조양보가 다양한 지면 구성을 활용하여 여성에 대한 기사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일정 정도의 한문 지식을 갖춘 남성 독자를 주요 독자로 설정하고 있는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근대지(近代知)를 장기 연재했던 것은 사회교육 차원에서 여성담론을 유포하려는 전략으로 파악했다. 여성담론을 형성할 때, 담론을 구성하는 지식에 대해 남성이 먼저 내면화 과정을 거치는 방식, 즉 남성이 여성에 대한 지식을 선점하여 여성담론을 주도한다는 점은 전근대시기에 남성사족이 유교적 가부장제의 원리를 내포하는 텍스트인 소학을 선제적으로 깊이 내면화하여 주도적으로 여성담론을 형성하고 유포해 나갔던 방식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여성의 지적 열등함을 근거로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식 또한 전근대시기에 음란함, 투기, 사치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여성의 본성으로 파악하여 열(烈)ㆍ노동 담론을 개진하는 방식과 유사했다.
조양보에서 수록하고 있는 근대지로서 가정학(家政學)은 중역(重譯)된 자료이면서 모본이 된 자료의 극히 일부만 수록하고 있다. 중역의 과정은 모본에서 변화된 구성과 추가된 내용을 수용한 것이었다. 이때 자녀의 의식주와 교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극히 일부의 내용만 수록한 까닭은 유교적 가부장제의 성 역할을 견지하면서 특히 어머니 역할을 강조한 근대지를 수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근대시기에 여성에게 요구된 어머니의 역할과도 흡사했다.
다만 전근대시기에는 가문을 위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성이 유효했다면 근대계몽기에는 국가를 위한 국민 양성자로서의 모성이 강조되었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을 기술할 때 조양보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데 반해 전근대시기에는 피상적으로 당위성만 강조하는 형태로 서술되었다. 그리고 전근대시기에는 여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고 가내에서 가장과 어머니에 의해 여성담론을 내면화했다면 조양보에서는 여성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에 대한 지식이 전문적인 분과학문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여성이 교육의 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조양보의 여성계몽의 전략과 전근대 여성담론의 비교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연속과 변화의 지점이 여성의 근대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피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