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관련 기록에 나타나는 ‘왜장(倭將)’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600)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1562~1611)의 형상에 주목하여, 두 인물이 구현되는 양상과 그 의미를 탐색한 것이다. 유키나가와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체의 대표자이며 조선에 집단 트라우마를 심어준 당사자이다. 그런데 조선 기록 속 두 왜장의 형상은 부정 일변도(否定一邊倒)로 재현되지 않으며, 나아가 두 왜장에 대한 객관적·긍정적 기록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의 배경을 파악하고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왜장이 언급된 임진왜란 관련 조선 기록을 사건과 기록의 성립 순서를 고려하여 검토해보았다. 왜장 형상과 그 특징을 살펴본바 유키나가의 경우, 전쟁 중반부까지는 명나라 유격장군 심유경(沈惟敬)의 영향하에 ‘주화파 외교관’의 형상을 유지했는데, 정유재란 직전의 반간계 사건을 계기로 이후 여러 기록에서 부정적인 ‘모사’의 형상으로 재현되었다. 기요마사의 경우, 전쟁 중 유키나가와 대비되는 행보 때문에 ‘호전적 무장’으로 형상화되는데, 전후의 일부 기록에서는 긍정적인 ‘덕장’으로 이야기된다. 이는 순왜(順倭) 국경인(鞠景仁)과의 대비 차원에서 형성된 부분도 있겠으나, 김귀영(金貴榮)·황정욱(黃廷彧) 등 왕자를 호종하던 이들의 신원(伸冤)과 연관되어 형상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18세기 후반 정사박해(丁巳迫害)와 관련하여, 박지원의 글에서 두 왜장이 전쟁의 가해자나 원수보다는 천주교도로서 호명된 사례가 있어 주목을 요한다. 조선 기록 속 왜장 형상은 전쟁 중 혹은 전쟁 후 조선인이 당면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와 목적에 따라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