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형법정주의가 지배하는 형사법의 영역에서 ‘법률’이 아닌 신의칙을 기초로 범죄성립을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기어렵다. 강제규범에 의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제한하는 형벌규범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신의칙을 형법상 범죄성립의 기초로 삼는 경우에는 좀 더 보수적인 관점의 해석론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범죄성립의 기초가 되는 형법적 의무와 형법외적 의무를 규정형식과내용의 측면에서 5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각에 경우 신의칙이 범죄성립에 미치는영향과 그 타당성을 평가해 보고자 하였다. 논의의 기본적 방향성은 ① 의무의 내용이 신의칙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형법적 의무로 설정된 이상 이는 법률상 의무로서 범죄성립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 ② 다만 형법외적 의무를 설정하고있는 조항의 경우 의무의 인정이 곧 범죄성립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법률’ 이외의형식에 의한 의무의 인정은 형벌의 겸억성을 고려하여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점이다.
논증의 자료로는 최근 보이스피싱 관련 사례에서 횡령죄 성립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과, 사기죄에서 고지의무에 관한 기존 대법원의 법리를 예로 들었다. 판례는 횡령죄와 관련하여 신의칙을 범죄성립 제한원리(예컨대 보호가치 없는 위탁관계)로도 범죄성립 확장원리(예컨대 착오송금 사례에서의 위탁관계 의제)로도 활용하고 있는데,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 전자는 허용될 수 있지만 후자의 인정은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또 판례는 신의칙상 고지의무에 터잡은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 성립을 법리화하고있는바, 이 역시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해석론이라고생각된다. 범죄성립의 근거로 작동하는 신의칙상 의무의 인정은 가급적 최소화할 필요가 있고, 법공동체의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신의칙 위반 행위유형 또한 순수한 신의칙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체결상의 부수의무로 포섭하여 해결함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