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토기는 일반적으로 2단투창고배에 뚫린 상하 엇갈린 투창을 지표로 한다. 이러한 단순한 인식론은 학계에 널리 퍼져 있어서 제대로 된 신라토기 연구에 있어 오히려 장애가 된다. 신라토기는 도질토기 발생기부터 확산기까지 유기체와 같은 발전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신라토기라 하여도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필자는 이 신라토기를 도질토기를 중심으로 하여 (고식)-전기-중기-후기-통일 양식으로 파악한다. 전기 양식의 중심은 경주로 한정할 수 없고 영남 동남부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데, 오히려 부산지역이 그 중심으로 판단된다. 경주의 특색이 뚜렷한 토기는 중기양식이다. 이후 신라의 영역 확장에 따라서 신라토기는 경주를 벗어나 점차 지역 범위를 넓혀 확산한다.
본고는 이러한 신라토기의 양식 분류 중 중기양식을 중점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 중기양식은 ‘2단각 고배’, 토기 뚜껑에 ‘대각축소형 꼭지’의 부착, 토기에 다양한 ‘침선문계 문양의 시문’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황남대총 남분의 부장품에서 전형으로 구현된 양식이다. 양식의 성립은 실은 영남 여러 지역에서도 소국이 성립하며 그 지역성이 뚜렷한 토기를 생산하던 시기이다. 경주에 있어서도 적석목곽묘로도 대표되는 마립간 시기의 대부분에 걸쳐서 생산되던 토기 양식이다.
이에 먼저 중기 양식의 편년 위치와 설정 의의를 명확히 하였다. 다음으로 해당 고분들의 편년(가)안을 제시한 후, 생산과 수급관계에 있어 경주 중심지고분군과 외곽지역 간의 초기 이원화 단계에서 2단각으로 일원화해 가는 시점을 5세기 4/4분기로 밝혀, 전체 신라토기의 발전도상에서 중기양식의 설정 의의를 찾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