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불복종은 ‘법을 위반한 행위’이므로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불복종행위자는 자신의 불복종행위의 법적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하지만 대의제가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하는 체제의 부분적 고장을 해소하기 위하여 출현한 시민불복종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전체 법질서를 온전히 수용하는 시민불복종에 대하여 도덕적 정당성을 수긍하는 것을 넘어 그 법적 정당화를 인정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 논문은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시민불복종의 법적 정당화 가능성을 실정법의 해석을 통하여 모색하려 한다. 대의제의 맹점을 보완하는 시민불복종의 실체와 역할을 인정하고, 일정 부분 적법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오히려 법치국가의 영역을 확장하는 길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불복종의 법적 정당화라는 개념이 실정법과의 구체적 관련이 불명한 채 막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선 일반적・추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시민불복종의 법적 정당화라는 개념에 대하여, 헌법 및 실정법률과 관련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개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먼저 직접적 시민불복종과 간접적 시민불복종을 구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 시민불복종이 위반하는 대상 규율이 시민불복종이 항의 목적으로 삼은 대상 법률이나 정책 등의 규율과 일치하느냐, 불일치하느냐에 따라 시민불복종 자체 혹은 개개 불복종행위의 법적 정당화가 양상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명확히 한 후에 헌법 및 실정법률과의 관련을 밝히는 것이 체계적이며, 이는 또한 미국 배심제의 법적용거부와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시민불복종의 헌법적 영향력 이론을 검토하기 위한 논리적 전제가 된다.
미국배심제의 법적용거부는 형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이 기소된 범죄에 대해 피고인이 유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무죄를 평결하는 예외적 제도이다. 헌법의 중요부분인 배심제에 있어 핵심적 요소인 법적용거부 권한을 헌법적 차원의 문제로 이해하는 한, 때때로 시민불복종에게 법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법적용거부라는 장치가 지니는 함의는 예사롭지 않다. 우리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조항을 해석하는 데 있어, 법적용거부가 제공하는 시사점을 음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편, 1980년대 독일에서 핵미사일 설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운동은 마침내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 시민불복종이 논의되는 국면에 이르렀다. 특히 1986년 결정의 반대의견은 시민불복종의 헌법적 영향력이라고 지칭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시간을 두고 이어진 1995년 결정의 다수의견 역시 1986년의 반대의견이 제시한 이론을 묵시적으로 시인한다고 여겨지는 해석을 내어놓았다. 이러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해석론을 우리 형법 사회상규조항의 해석에 있어 원용할 수 있는지 검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