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홍콩 누아르’에 관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문화기억의 작동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시절 홍콩 누아르는 한국에서 영화적 어휘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으며, ‘기억 들춰보기’가 문화적인 적법성을 띠는 지점은 홍콩 누아르 영화들을 참조틀로 삼아 제작된 영화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예시되어 왔다.
이 글은 홍콩 누아르에 대한 과거지향적인 기억하기 행위를 넘어서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수용해 온 한국관객과 한국영화의 시선에 대해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수행한다. 그 출발점으로 홍콩 누아르라는 창조적 조어와 장르적 감각이 한국에서의 수용 현상과 밀접한 관계 속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전제된다. 이어지는 세 가지 단계의 질문은 심도 깊은 논의의 계기를 마련한다. 첫째, 한국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 중반에 걸쳐서 홍콩 누아르 현상이 일어났을 때, 과연 그것은 누아르 장르의 원산지인 할리우드 누아르 또는 해외 담론에서 논의된 홍콩 누아르와 호환되거나 비교될 수 있는 현상이었는가? 둘째, 한국에서의 홍콩 누아르 수용에 나타난 고유한 특징은 무엇이며, 당시 홍콩 범죄영화의 흐름을 누아르 장르로 각인시킨 요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셋째,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로 새로운 포스트-홍콩 누아르는 어떻게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가?
우선, 한국에서 홍콩 누아르로 받아들인 영화들의 정체성은 서구에서 아직 누아르적 수용이 일어나지 않은 영웅적 유혈극으로 불리던 것이고, 서구와 홍콩의 영화담론에서 홍콩 누아르의 등장을 말하는 포스트-반환기 작품들보다 앞서있는 시기의 영화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 ‘시차’의 문제는 비교적 관점의 연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시절 홍콩 범죄영화들이 누아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학적으로 누아르 장르로 정의될 수 있는 텍스트이기보다는, 한국 관객들이 ‘정동’ 차원에서 해당 작품들을 수용함으로써 어둡고 아노미적인 누아르 영화로 느꼈던 이유가 크다. 이러한 과거 홍콩 누아르의 기억을 향하는 ‘노스탤지어’는 포스트-홍콩 누아르 시대를 맞이한 동시대에도 강력하게 작동하며, 홍콩 누아르 수용이 이후의 한국 누아르와 스릴러 영화 성장에 영향을 미친 지점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