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향토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1930년대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의 시기에 있었던 향토와 향토음악 관련 논의를 검토한다. 이것은, ‘향토’라는 개념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향토음악’이라는 개념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것들의 역사적 함의를 이해하고자 한 노력이다.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유입된 향토의 개념이 ‘조선’과 연결되면서, 조선인들은 ‘향토’를 통해 조선 민족을 상상하였다. 이러한 속에서 서양음악 종사자들은 ‘향토음악’으로,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실제 연행(演行)된 ‘재래음악’은 서양음악 종사자들이 주창한 향토음악으로 호명되지 않고 ‘연예’또는 ‘예술’로 호명되었다. 이는 아직 ‘향토’와 ‘음악’이 결합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향토음악의 구성 장르가 아직 확정되지 못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해방 직후 향토는 ‘지역’과 ‘민족·국가적’으로 연결되기도 했지만, 향토의 주된 의미는 ‘지역’이었다. 향토음악 역시 민족적인 의미가 약화되거나 사라졌다. 대신, 지역적인 의미가 강화되면서, 향토음악은 주로 ‘지역 음악’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향토음악에 대한 인식에서 변화가 있었다. 이때 향토음악이 ‘재래음악’과 결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향토음악을 구성하는 재래음악의 장르는 유동적이었다. 그 결과 해방 후에도 향토음악의 구성 장르는 미확정 상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