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식민지 시기 「보존령」으로 도입된 문화재 지정제도의 구체적 실태를 검토하여 1930∼40년대 조선총독부 문화재 보존정책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33년 공포된 「보존령」은 보존해야 할 대상을 총독부가 ‘지정’한 문화재로 한정하였으며, 지정된 문화재는 엄격한 규제를 통해 관리·통제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에게 문화재 관리의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총독이 자의적으로 법조문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조선총독부는 지정제도 시행과 함께 조선 각 도에 통첩을 내려 지정·보존할 만한 문화재 조사를 명한다. 조사된 문화재는 총독부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선별 지정되었으며, 지정문화재를 조선총독부의 식민지배 정당화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조사된 문화재가 모두 지정되지는 않았다. 당시 대중들에 의해 보물 또는 고적으로 인식되어왔고, 또는 총독부 관리가 보존할 만하다고 보고한 문화재라도 총독부는 정치적, 행정적 이유로 이들을 지정 대상에서 배제시켰다.
한편 조선 내 문화재에 관련된 안건을 심의하는 보존회에는 학계 전문가와 다수의 총독부 고위 관리가 참여하였다. 총독부 관리들은 의결권을 가지고 문화재정책에 개입하였으며, 이로 인해 ‘문화재 보존’이라는 가치가 산업 개발이나 식민통치의 논리에 의해 쉽게 포기되기도 하였다. 이런 문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문화재 지정해제와 현상변경 행위이다.
이처럼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보존정책은 일정 부분 ‘문화재 보존’을 표방하였으나 결정적으로 식민통치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총독부는 지정제도 운영을 통하여 문화재에 새로운 의미와 보존 가치를 부여하였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그 의미와 가치를 변형, 왜곡시켰다. 결국 총독부의 선별적 문화재 보존정책은 식민지기 많은 조선 내 문화재들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어 파괴에 이르는데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