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일본 영화 〈란〉을 통해서 고귀한 인물이 지닌 비극성이 재현되는 방식이 지닌 유사성과 차이점을 논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일본 영화 〈란〉을 프랑스와 합작하여 1985년 개봉하였다. 구로사와 감독은『리어왕』을 토대로 한 영화 〈란〉의 각색이 원작의 재현보다는 새롭게 창조된 모습을 보여준다. 구로사와 감독의 이러한 시도는 영화 〈란〉에서 보여지는 시대변화, 스토리의 일부 변형, 그리고 영화라고 하는 장르적 차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상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어왕이 경험하는 비극의 핵심 요인은 그가 지닌 성격적 결함에서 기인한다. 리어왕은 오랜 시간 동안의 권력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만, 주관성, 그리고 쉽게 현혹되는 어리석음을 갖추고 있다. 또한 리어왕의 비극은 두 명의 딸들이 지닌 물질적 탐욕과 함께 전개된다. 그러나 리어왕이 지닌 비극적 요인 중 딸들과의 갈등과 배신은 보편적인 성격의 것이란 점에서 관객들의 몰입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리어왕의 비극성은 개인의 결함과 혈육의 배신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비극적 타당성 효과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영화 〈란〉의 비극적 주인공인 히데토라도 역시 개인적 오만, 권위,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것 외에도 히데토라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주변 영지의 침략과 정복된 사람들의 살해를 통한 잔인한 면모로 인해서 분노, 적개심, 그리고 복수심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리어왕보다 상대적으로 히데토라가 상대적으로 비극적 결말의 우위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주인공이 맞이하는 비극성의 원인을 다양하고 복잡하게 연계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구로사와 감독의 시도는 비극적 타당성에 대한 관객들의 몰입을 확장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구로사와 감독의 연출은 관객에게 비극성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을 충분히 확보해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