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중국에 전래된 후, 많은 사람들이 고고학에 관심을 보였다. 청말 일부 학교에서 ‘고고학’을 과목 혹은 학과로 설치하기도 했고, 신해혁명 이후에는 ‘고고학’ 과목을 역사학 전공(혹은 관련 전공) 속에 설치하였으며, 베이징대학 같은 경우 ‘고고학연구실’을 설립하는 등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후반, 리지와 량쓰융이 서양에서 귀국하기 전까지 활동하던 ‘고고학자’들은 대부분 금석학이나 지질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학에서 ‘고고학’을 강의하고, 고고조사(심지어 발굴까지)를 추진하였다. 이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적 필요성을 인지했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비록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지만, 고고학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본격적인 인쉬 발굴로 이어졌고, 중국 고고학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