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수영의 책무는 충청도의 해방(海防)이었지만 조선후기 평화시기에는 송정(松政) 업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게 작동되었고 그 개연성이 여러 정황에서 나타난다. 송정은 국가에서 필요한 船材와 건축용재 및 관곽용 소나무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산림 정책이다. 조선시대 안면도에는 71곳이 봉산으로 지정됐는데 ‘안면송전’이라고 통칭되었고, 섬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면적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소나무는 ‘도송’이나 ‘안면송’으로 불리며 유명하였다. 이러한 안면송전에 대한 송정 관할권을 위임받은 충청수영은 220여 년 동안 안면도를 군정으로 다스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면도라는 고립된 섬에서 집행되었던 충청수영의 송정 수행의 실무 내력의 조명은 수군사로서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이에 본고는 안면송전에 대한 송정을 수행했던 충청수영의 운영 방식과 그 성과 등을 세심하게 살펴보고자 하였다. 즉, 안면송전의 규모와 상태를 분석하였고, 안면송의 조달 규식과 조달 규모를 파악하면서, 송정에 따른 부수입원으로써 수영의 재정충당 방법을 추적 하는 등 송정과 관련하여 파생된 각종 문제점을 고찰하였다.
송정을 군영(軍營)에서 집행토록 한 제도는 일사불란한 조직력에 의한 효율성이 있었지만 군사작전처럼 송금 위주의 강압적인 운영은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도외시한 결과, 백성들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며 괴리되어 갔는데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청수영은 안면도의 송정을220여 년 동안 수행하면서 충청수영의 필요 선재는 물론이고 어떤 때는 경기수영과 궁궐용 건축재를 비롯하여 일부는 전라도의 조선과 군선용 선재를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송정의 기본인 심고 기르는 육림은 등한히 하면서, 관속들의 부패와 결탁된 도벌과 남벌이 자행되자 송전의 황폐화는 더욱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안면송전 만큼은 선재의 품질은 저하됐으나 그런대로 조달기능이 유지됐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