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암 박지원의 지방관 활동에 나타난 수령관과 정치운영 방안을 검토한 논문이다. 박지원은 당시 수령을 도신(盜臣)으로 평가하면서 이들이 인순고식하고 미봉책만 시행한다고 비판하였다. 수령이 그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를 촉구하였다. 단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시혜가 아닌 수령이 대체(大體)를 파악하여 장기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하였다.
박지원은 수령의 태도뿐 아니라 수령이 적극적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박지원은 수령이 상부의 명령만을 집행하여 향촌의 병폐를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처지라고 보았다. 이에 수령에게 많은 자율적 권한이 부여되어 수령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근거한 박지원의 정치를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진휼이다. 박지원은 감사에게 사진(私賑)을 요청하면서 감사의 개입과 관리 대신 수령에게 오롯한 책임을 부여해달라고 하였다. 수령의 자율적 판단에 따른 시행을 중시한 것이다. 이외에도 기근이 들었을 때 국가의 시장 개입과 균역법의 어·염·선세의 정액화를 비판하였다. 박지원은 행위 주체가 융통성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합당하다 여겼다.
아울러 박지원은 선정의 방법으로 교화의 확대와 예치를 모색하였다. 조선후기는 교화의 주재자로서 수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임에도 박지원은 수령이 그 교화의 책임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박지원은 형벌과 포상의 정치는 한계가 있어 인간 내면의 명예를 바라는 욕구를 높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박지원은 형장이 아닌 교화로서 군현을 다스렸다. 향리를 대하는 방식, 문제를 일으킨 관속과 천주교인을 처리할 때 교화로서 이들을 감화하고 권면하였다. 교화를 통한 깨달음을 얻은 백성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하여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였다.
더 나아가 박지원은 교화의 확장과 풍속 개조를 위하여 군현 의례를 정비하였다. 이는 국왕인 정조의 정치를 군현에서 실현하는 것이었다. 박지원은 수령이 군현의례를 정비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사족을 교육하여 사족의 역량이 강화되기를 기대하였다. 아울러 수령이 진휼 현장에서 발생하는 백성의 범분(犯分)과 무질서를 교정하고 예를 깨우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례의 형식이든 수령이 시행하는 구체적인 행정이든 예에 맞는 질서를 보여주고 가르쳐, 사족과 백성 모두 예를 체화하기를 기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