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보문산 중대바위 아래 있던 중대사(中臺寺)는 근래 폐사되었고 그곳에 있던 후불탱이나 3층석탑이 다른 곳에 남아 전한다. 중대사는 안동이 고향인 유성룡(柳成龍)이나 김상헌(金尙憲) 등 조선시대 명사들이 즐겨 찾던 사찰이었다. 그들의 기록 속에는 중대사에 주석했던 승려의 법명이나 법호들도 몇몇 전한다.
학조(學祖) 대사의 후손 김상헌은 안동에 은거하던 시절에 중대사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김상헌 사후 30년 정도 지나서 중대사의 도문(道文) 상인(上人)이 김상헌의 시를 들고 김상헌의 손자와 증손자들을 찾아다니며 차운시를 청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진행된 이 행위는 김창업(金昌業)의 아들 김신겸(金信謙)의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선조의 시에 대한 차운시를 요청받을 때 그에 응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행위이고, 선조의 시와 자신을 매개해 준 승려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됨은 당연하다. 당대 문화의 중심에 있는 집안과 인연을 맺고 유지하는 것이 승려와 사찰의 사회문화적 위상을 높여 주었을 것이다. 도문 상인이 수십 년에 걸쳐 차운시 청탁을 통해 장동 김씨 집안의 인물들과 지속적으로 교유한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