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선 지난 약 100년간 우리가 연구 대상으로 삼아 온 민속과 그 지식 분야로서 민속학, 이 양자의 원점이랄 수 있는 ‘포클로어(Folklore)’의 탄생과 확산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동아시아로의 박래(舶來)와 그 번역 및 식민지 조선으로의 이입(移入) 과정을 짚어 보았다. 그 결과, 19세기 중엽 영국 런던에서 탄생한 포클로어는 약 30년 후 문화 진화론의 잔존 개념을 장착하며 근대 학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아울러 1870년대의 초중반 이 서구산 용어와 개념이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에 들어온다. 그리고 19세기 말 일본에서 그 역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어, 20세기 초 ‘민속(학)’이 영일사전에 처음 등장한 이후 실로 다양한 번역어들이 양산되어 경합을 벌린다. 이윽고 1910년대 중후반 이후 ‘민속(학)’이 ‘고속학(古俗學)’이나 ‘구사학(舊辭學)’, ‘속설학(俗說學)’ 등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한다. ‘민속(학)’이란 역어의 확산엔 1912년에 창립된 일본민속학회의 활동이 일조하며, 1920년대 중후반 이후 그것이 자리를 잡아가는 데엔 번역서 「민속학개론(The Handbook of Folklore)」의 보급과 민속학회의 출범 및 활동이 크게 이바지한다. 이 일본산 ‘민속(학)’이 1920년대 중후반 최남선과 손진태, 이마무라 도모[今村鞆],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 이입된다. 그리고 1932년 조선민속학회가 설립되고 이듬해 기관지 「조선민속」이 창간된다. 이를 계기로 ‘민속(학)’이 학술 용어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1930년대 중후반 송석하가 주도하는 조선민속학회의 사회적 실천 활동들과 함께 언론계를 비롯한 사회 일반에 수용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