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메이지기 여의사의 성립과정에 나타난 특징을 분석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는 서양의학을 익힌 의사를 급속히 양성해야 했다. 그 이유는 부국강병책을 위해 군의관의 양성이 시급했으며, 또한 각지에서 유행하는 콜레라와 이질 등의 전염병 대책을 위해서 공중보건 지식을 가진 서양의가 불가결했기 때문 이다. 따라서 메이지 정부는 정규교육과정 이외에도 내무성이 실시하는 의술개업시험을 통해 의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에 처음부터 여성들이 참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여의사가 탄생하기 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일본 여의사의 형성과정에 나타난 특징은 첫번째로 메이지기 서양의 양성제도인 ‘의술개업시험’을 들 수 있다.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의술개업시험에 1884년부터 여성도 응시자격을 얻었고, 이듬해 6월에 일본 최초의 여의사가 등장했다. 당시 ‘의술개업시험’으로 인해,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도 의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성도 시험 응시자격만 얻으면 의사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특징은 여성이 의술개업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자, 다카하시 미즈코를 필두로 하여 여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교에 입학하는 여성들이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선구적인 여성들의 열의와 의지가 성별을 초월하여 ‘개인’으로서 인정받고, 그것이 후계인 여자 지망자들에게 유용한 ‘전례’를 제공하게 되면서 여의사들의 수도 증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여성 의학전문학교의 설립이다. 요시오카 야요이가 여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도쿄여의학교’를 설립하고, 러일전쟁 발발 이후 여의사에 대한 신뢰가 상승하면서, 도쿄여의학교는 근대 의학교로 성장하여 본격적으로 여의사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