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집안에 충신 난다.”는 말은 효와 충의 연속적 관계를 말한다. 효와 충을 事親, 事君의 순종, 복종의 개념 범주에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효와 충은 개념 범주가 다르다. 천륜에 근거한 효는 한결같지만, 인륜적 가치인 충은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평상시의 충은 ‘사군’이지만, 왕조교체기의 충은 ‘不事二君’에 더 가치를 둔다. 여말선초 많은 지식인들이 갈등한 부분이고, 이 논문에서 다룬 桑村 金自粹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김자수에 대한 기록은 단순 ‘사군’이냐 아니면 ‘불사이군’의 節義이냐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단순 ‘사군’이란 고려와 조선에서 모두 仕宦했다는 기록이고, ‘불사이군’의 절의란 고려의 신하로 조선의 벼슬을 거절하고 자결했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자결의 시점이 조선이 건국되고 한참 지난 뒤인 태종 때란 점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논란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에 따른 사실관계 논증보다는 충개념의 가변성에 논의의 중점을 두었다. 왕조실록의 조선 仕宦 기록과 문중, 지방지의 고려에 대한 절의 기록이 상충하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른 충개념의 가변성 때문에 나온 차이이다. 같은 왕조실록이라도 김자수에 대한 전후기의 기록이 다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왕조 개창기의 ‘불사이군’은 불편한 일이지만, 왕조 수성기에는 대단한 충의 가치가 된다. 따라서 김자수의 사환과 절의, 어느 게 맞는가의 사실관계 확인보다 충의 각기 다른 가치판단을 여기에 적용해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 이는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평가되는 효개념과 비교된다. 천륜에 기반한 효는 항상성을 지니지만, 인륜에 근거한 충은 가변적이다. 김자수의 생애에 나타난 효와 충을 통해 이를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지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