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는 元·明代의 理學이나 心學에서의 ‘理의 非실재화 경향’을 비판한다. ‘리의 비실재화 경향’은 구체적으로 원대 오징(1249-1333)의 ‘태극무동정’, 명대 왕양명(1472-1528)의 ‘리무동’ 그리고 나흠순(1465-1547)의 ‘기지리’에서 나타난다. 퇴계는 기대승(1527-1572)의 오징 비판을 수용하여, 자신의 철학적 핵심으로 삼았다. 기대승은 “태극은 그냥 원리로만 존재할 뿐이다”라는 오징 주장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퇴계에게 왕양명의 리는 ‘그냥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 법칙(理無動)으로서, 리는 오직 심을 통해서만 드러난다(心卽理)는 주장을 비판한다. 왕양명에 대한 평가만큼 비판적이지 않지만, 퇴계에게 나흠순의 ‘기지리’는 ‘物의 理’가 아닌 ‘기의 결’을 의미한다. ‘기의 결’은 기의 원리나 物의 理가 아니다. 퇴계는 ‘기의 결’이 기질지성이라고 하면서, 결국 이 기질지성은 인간의 본성(本然之性)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퇴계가 보기에, ‘리의 비실재화 경향’은 리를 ‘형이상의 실체’로 보지 않는 것이다. 리는 보편 법칙일 뿐이지, 動靜하는 실체가 아니다. 현상에서 “流行”이라는 방식으로 리는 실재하는데, 퇴계에게 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를 구현하는 강한 지향성을 가진 실체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