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의 추상회화 담론은 ‘평면성’이 회화에 고유하고 배타적인 것이라는 모더니즘 회화론의 입장을 적극 수용했다. 그들은 평면성을 회화의 귀결점이 아니라 회화의 출발점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평면’에 온갖 의미를 덧붙였고 이로써 그들의 평면은 의미로 포화된 상태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평면에 무언가를 덧붙일수록 평면은 평면이 아닌 것이 되어갔다. 어떤 의미에서 1970년대 한국의 추상회화는 이중구속의 상태에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은 항상 평면에서 시작하고 평면을 고수해야 했지만 동시에 평면 이상의 것을 얻고자 했다. 이중구속의 상태를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은 평면과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평면의 규제를 회피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개념과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이일이 제기한 ‘평면에서 표면으로의 이행’이나 박서보, 권영우, 하종현 등이 취한 ‘물성’의 논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물성’을 ‘원초적인 것으로의 회귀’를 통해 물질과 이미지, 물질과 정신, 객관과 주관의 대립을 극복, 초극하는 동양적, 한국적 추상회화의 대안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러한 초극의 논리가 심화되면서 추상회화 담론에서 ‘평면’의 위상은 점차 약화됐고 중요성을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