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년 송宋의 고려에 대한 사신단 파견은 여러 면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먼저 송은 ‘객주’라 불리는 민간 상선 6척을 임대하는 것은 물론, ‘객주客舟’의 3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관선官船인 ‘신주神舟’ 2척을 새로 건조하여 총 8척의 대규모 선단을 구성하였다. 선단에 탑승한 사신단은 9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였고, 여기에 선적할 각종 예물까지 준비하여야 했다. 그 준비 기간도 1년 2개월여에 달하였다. 더욱이 송 사신단은 극험極險의 해로를 항해하는 극한적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으니, 그야말로 국력을 기울여 준비한 특별한 국책 사업이었다 할 것이다.
이에 본고는 1123년 송의 사신단 파견의 건을 ‘고려에 대한 거대 외교프로젝트’로 규정하고, 이미 1078년에 실행한 판박이의 선례와 비교하며 그 실상의 전말을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송의 두 차례 사신단 파견은 고려를 자신의 편에 확실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사면초가의 궁지에 빠져 있던 당시 국제 정세를 변통시키려는 외교적 ‘한방’으로 기획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의 거대 외교프로젝트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송은 금金에게 패퇴하여 ‘남송南宋’으로 퇴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다만 두 차례의 대규모 사신단 파견은 결과적으로 조선술과 항해술에서 획기적인 진보를 가져와 이후 중국과 고려의 관계가 극험의 해로를 넘나들며 보다 가까운 ‘이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해양기술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 더욱이 1123년 사신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서긍이 귀국 후 1년여의 정리를 거쳐 1124년 8월에 송 휘종에게 봉진奉進한 『선화봉사고려도경』을 통해서 이러한 사정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미 역시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