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에서 생활개선・주택개량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치(文化政治)가 실시되는 1920년대부터다. 일제의 문화정치가 식민지 조선에 대한 기만적인 정책이었음에도, 동시에 언론・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모순적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식민지 조선 대중을 향한 지식인들의 생활개선 관련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1930년대는 당시 서구 모더니즘・기능주의 주도의 세계 건축계의 흐름과 관련 주류 담론들이 연계되어 일본인 건축가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에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1930년대 당시 식민지 조선의 가정・생활개량 담론을 주도하였던 건축 및 예술 분야지식인들에게 크게는 서구 합리주의・기능주의, 구체적으로는 건축 분야에 있어서 서구 모더니즘 운동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그들의 가정・생활개량 담론이 식민지 조선의 주거 전반에 어떠한 인식적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위에서 언급한 고유섭・박동진・박길룡 이 세 사람이 1930년대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관련 기사들을 중심으로 서구의 모더니즘 운동과 식민지 조선의 가정・생활개량 담론과의 상관관계를 고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