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1975-79년까지의 외교문서 기록들 중에서 사할린 한인동포 귀환문제와 관련한 사항을 중심으로 당시의 교착상태 속의 시대상황, 주변국들의 상황 인식, 민간차원의 움직임 등을 살펴보았다. 1975년까지의 사할린 한인동포 귀환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을 계기로 조금씩 외교적 의제로 자리잡아 가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성과를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기며 주변 당사국들 간의 고질적인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 속에서 한국, 일본, 소련의 사할린 한인동포 귀환문제의 책임있는 당사국들의 시대인식과 이해관계는 해방 이후의 인식 수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져들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노학을 비롯한 민간차원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사회의 활발한 활동은 당시 교착상태 속에 놓인 사할린 한인동포 귀환문제의 새로운 물꼬를 터주는 이정표와 같았다. 이처럼 본고에서는 교착상태 속에서도 조금씩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 사할린 한인동포 귀환문제의 자취를 1975-79년까지의 한국생산 외교문서를 통하여 확인하였다. 현재 일정부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낸 밑바탕에는 지난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간 민간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