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미군정기 조선해안경비대(朝鮮海岸警備隊)의 창설과 발전을 해방 이후 38도선 이남에 남겨진 일본의 해군(해운) 관련 유산과 미국군사원조의 결합이라는 틀로 분석했다.
해방 이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에는 일본이 남기고 간 해군(해운) 관련 유산들이 다수 존재했다. 창설 초기 해군 건설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했던 조선해안경비대는 이를 활용해 조직을 빠르게 확장함과 동시에 부족한 자원은 미국의 군사원조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조선해안경비대는 비교적 단기간에 38도선 이남의 한반도 연안에서 독자적으로 경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중 미국의 군사원조는 조선해안경비대의 창설과 안정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으나, 반대로 그 한계도 명확했다. 1947년 중반 미국은 대한민국 수립과 주한미육군 철수에 대비해 조선경비대를 정규군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지원하면서도 전환에 비교적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조선해안경비대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그리고 이는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남로당이 주도한 무장봉기에 조선해안경비대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의 소극적인 조선해안경비대 육성방침은 6·25전쟁 발발 이후까지도 계속됨으로써 대한민국 수립 직후부터 해군 증강을 추진한 이승만정부의 해군정책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