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대구·경북 지역 화교 경영 중국음식점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검토한 것이다. 지역 첫 중국음식점은 대구에 화교가 정착한 초기인 1910년대에 탄생했으며, 1920년대 들어서는 대구부뿐 아니라 경상북도 군 지역으로까지 확산했다. 중국음식점 가운데 군방각은 당시 조선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급 중국음식점으로서 알려져 있었다. 중국음식점이 이렇게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확산한 배경에는 저렴한 호떡에서 고급 요리까지 다양한 층위의 메뉴를 가지고 있었고, 조선인의 입맛에 잘 맞은 점이 작용했다. 1931년 화교배척사건과 중일전쟁 직후 지역 중국음식점은 귀국하는 화교의 증가로 문을 닫는 곳도 많았지만 점차 안정을 되찾으면서 회복하는 추세를 보였다. 한국전쟁 발발로 지역에 피난 온 한국인과 화교의 증가로 타 지역과 달리 지역의 인구는 해방 이전보다 2.4배 증가하고,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경제가 발전해, 1950년대 후반 화교 중국음식점은 급증했다. 지역 중국음식점 수는 전국에서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한국정부의 각종 규제와 화교 인구 감소로 인한 일손 부족, 한국인 중국음식점의 증가와 경쟁 등으로 인해 지역 중국음식점 수는 급감했다. 하지만 화교 중국음식점 중화반점, 인화반점, 태산만두 등은 노포로서 화교 중국음식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