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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을 헤매다 아이로 돌아가고 있는 엄마 / 딸 김서영
지붕 위에 빨간 고추를 널던 여덟 살 아이
유복녀로 태어나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
부잣집으로 식모살이 가다
새총을 쏘아대던 주인집 아들
엄마와 새아버지가 데리러 오다
신랑 얼굴도 모른 채 초례를 치르다
징용으로 끌려간 신랑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대하고
일제 양산, 장갑, 그리고 구루무 한 통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다
애 딸린 홀아비의 아내가 되어
두 번째 남편마저 징용으로 붙잡혀 가고
꿈인 듯 남편이 돌아오다
해방이 되자 이어 동족상잔의 전쟁이 이어지고
또 다시 딸을 낳은 후 심해지는 남편의 의처증과 술주정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다
마음잡고 새 삶을 살게 된 남편, 그러나
고대하던 아들을 낳고
애지중지하던 아들들을 가슴에 묻고
고잔으로 이사하다
남동생의 집에서 쌀밥과 돼지고기를 먹고
참으로 고마운 부인
사당동에서 꽃과 조경나무를 키우며
병점에 자리를 잡다
교통사고를 당하다
수술도 받지 못하고 떠난 남편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칠십여 년 만에 찾아온 마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