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있는가, 어디 있는가고조선(古朝鮮)은 유토피아 고조선이란 단군조선은 찾을 수 없는 아틀란티스 대륙예맥(濊貊)은 한반도에 없었다요동에 있던 예맥이 우리조상, 중국을 능가하던 문명국조선은 대릉하(大凌河)가의 조그만 나라우하량(牛河梁) 언덕에 있는 초기 국가유적 그게 조선단군신화(檀君神話)는 개작되었는가「위서」 기록에 맞추려 평양이라 했다가 아사달로 바꿔삼위대백(三危大伯)이 무엇인가'티벳 설산 위에서 인간만사를 주관하던 산신' 이라는 뜻'삼위'는 은둔의 왕국(王國) '샴발라''샴뷔.샴웨' 비슷한 옛 말이 삼위(三危)로 시음된 것 태백(太白)은 '티벳'도 되고대(大)ㆍ태(太)는 산(山), 버(Be)ㆍ배(bae)ㆍ백(白)은 신(神) 장당경(藏唐京)은 '창탕캉리'창탕(羌塘)의 봉우리가 아니면 티벳의 서울이라는 뜻아사달(阿斯達)은 '아시들이 아니다'아사달은 수도(首都)라는 뜻, 신강성에만 2~3개 있어단군(檀君)은 큰 무당(巫堂)'텡그리감'이 단군왕검(檀君王儉), 천군(天君)도 같은 말 웅녀(熊女)가 먹었다는 마늘은 없었다마늘은 BC 2세기 장건(長蹇)이 이란서 들여와 퍼뜨려단군신화 고려조작설(高麗造作說)몽고에 항쟁하려면 민족단합이 필요해 신화로 만든 것 단군(檀君)을 이은 나라가 왜 없는가 동이 나라 중 단군에 이어 대며 정통성 주장한 나라 없어단군은 백두산(白頭山)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백두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 아니다 일제 때 최남선이 단군과 연계해 성산(聖山)으로 만든 것 환웅(桓雄)이 내려운 곳은 기록상 묘향산(妙香山)「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편 주가 명확하게 밝혀 고구려ㆍ발해 이후 역대 국가의 국경지대 금(金)ㆍ원(元) 거쳐 여진 땅 되고 명(明)ㆍ청(明)과 국경 맞대 20세기 초까지 우리는 백두산이 있는 줄도 몰랐다정유재란 때 처음 실록에 등재, 대산(大山)으로만 기록장백산(長白山) 기슭 부족(部族)들이 모시던 산읍루ㆍ말갈이 도태산(徒太山: 太白)이라 부르며 용변도 안해 '태백산' 이란 이름은 중국 당(唐) 때 얻은 것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太白山)이 태백산(太白山)일수 없어말갈(靺鞨)이 최초로 백산(白山)이라 불렀고 금(金)때 장백산, 원(元)때 자비령(慈悲嶺), 명때 다시 장백일제 강점기 단군과 결부시켜 '백두산 붐'일으켜청의 금봉책 무시하고 월경 잦자 강희의 제의로 국경 그어 중국을 능가하던 예맥문화와 태양제는 사라져 백두산 단군을 역사 위에 덧씌어 민족사 전반이 날아가 고조선과 부여가 남긴 땅, 그리고 대륙 백제 역사 너머 유토피아 단군조선은 전설속 나라, 아무데도 없는 가공의 공간고조선의 강역(疆域)고조선 예맥(濊貊)은 대릉하 서쪽 북경지방에 걸쳐 있어 장성(長城)의 기점은 갈석(碣石)이 아니다 역대 북방족의 침입루트인 철수성, 무수(武遂)가 그 시작점발해만(渤海灣) 일대가 예국(濊國)천진(天津)과 창주(創州)등 옛 황하(黃河)연변이 그곳 우리시조는 태양제 해모수(解慕漱)해모수는 해머슴, 햇볕 같은 해부루(解夫婁)가 아들이고 동명성왕(東明聖王)은 주몽(朱蒙)이 아니다 해가 떠야 동쪽이 밝아지는 것, 활 잘 쏜다고 안 밝아져 '하르빈'은 '검은 강가' 라는 말 '오리ㆍ오루'로 불리던 송화강 가, 검다고 '하르'가 되고 안들, 돌발터와 달갱이부여의 백금보문화와 한서문화 및 망해둔문화가 꽃핀 곳동북아의 철기(鐵器)시대는 부여(夫餘)가 열어 동아시아 어느 부족보다 먼저 첩강법까지 터득대부여(大夫餘)의 흑토지대(黑土地帶)부여가 고구려에 망한 뒤 물길에 쫓겨 와 살던 곳 곰내(甘河)와 아리무르(阿里河)까막골 윗골 소리재 얼고내 이무르 물돌이 긴 내 도 있고 흥안령(興安嶺)은 이상향(理想鄕)검고 맑은 기름져 온갖 생물이 번성해 살기 좋은 곳이란 뜻 동이족은 ' 한 알[大卵] →하늘'의 자손청조(淸朝)초부터 찾던 알선동 수수께끼 끝내 풀리고 단군(檀君)은 몽골에서나 생겨날 이름예맥(濊貊)족의 위대한 조상은 모두'알'에서 태어난다부여(夫餘)의 북쪽 국경의 약수(弱水)크다는 뜻의 '어리물'이 '아리무르' 되었다가 '아무르'되고 웃고 있는 청동좌룡(靑銅坐龍)홍산의 옥룡을 이어받아 작호도의 호랑이에게 맥 전해금태조(金太祖)는 고려 사람제손으로 부수고 태워버린 궁터는 말 그래도 백성(白城)미투나는 동경(銅鏡)에도 남녀사(男女事)에서는 누구나 떳떳할 수 없는 게 사내들 목단강(牧丹江)은 '물안이' 팔녀투강(八女投江)비는 사내들이 저만 살겠다고 도망친 증거 발해(渤海) 궁터는 조작되었는가 동호족의 궁전은 대부분 동향, 새로 쌓은 남향기단 의심가고 진국(震國)을 버린 수수께끼 대조영은 발해군왕(郡王)자리를 왜 넓죽 받아 들였는가 동모산(東牟山)은 어느 산인가오동성(敖東城)이라더니 성산자산(城山子山)이라고 해 장춘(長春) '긴배미'전설 짓기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을 곤혼스럽게 만든 까닭지르미→길음이가 '길림(吉林)'건융제는 '지린 '으로 보아 신라가 이곳에 있었나 의심용담산성(龍潭山城)이 부여왕성인(夫餘王城) 인가 이것이 고구려 천리장성이면 내몽고의 고려성은 또 무엇고구려는 '고르(:古爾고이)'가 되고 고구려 신성(新城)은 고르산성, 개모성은 노동공원 돼 원수림(元帥林)은 고구려 병마원수의 군영(軍營)동북왕이 된 마적단 두목이 차지하고 묻힐 자리 만들어 조선 원병도 피흘린 살수대전(薩水大戰)옛터 철배성ㆍ남소성ㆍ계번성 있던 곳, 강홍립은 여기서 투항했고되놈이 '되놈'이라 욕하고 형제의 의를 맺었던 여진을 배척만 하다가 어육이 되었고할머니 방 같은 심양궁(瀋陽宮) 내전(內殿)청의 후비는 모두 몽고족 벌치키트씨로 친고모나 친자매 나쁜일 안했다는 마적단 두목만주로 떠난 동포들의 이불짐까지 빼앗아 황제처럼 살아 유조호(柳條湖)에는 호수가 없다 일제는 장개석의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 탓에 승승장구 서탑가는 홍등가(紅燈街)가 되고 국밥장사로 남편 독립운동 돕던 곳, 서울의 유흥가를 닮아 예사람이 갔던 길 따라 홍대용, 이정구가 찾아갔던 곳, 왕이열의 시가 문간서 맞고 고구려 철장(鐵匠)들이 비지땀 흘리던 곳 안산은 고구려의 철의 고장, 지금도 용광로는 계속 끓어 안시성은 금단의 땅, 여순 가면 불법침입자외국인 출입금지구라 체포 될 수 있다며 받을 돈 다 받아 러ㆍ일전쟁(露日戰爭)의 격전지 중국 땅 서로 뺏겠다고 벌인 전쟁, 우리에게도 큰 영향 줘 요동(遼東) 벌은 대유전(大油田)위만이 세웠던 조선의 왕검성 터가 바로 신개하에 있고 이여송(李如松)이 살던 마을누르하치의 거병마저 눈감은 중국의 귀화 조선인들한강(漢江)은 여기에 있었다약수ㆍ유수ㆍ한수로 불리다가 대릉하가 되었는데 신라 봉수병(鳳首甁)의 유입경로지중해 지방서 만들어진 오이노코에는 마리를 거쳐 동으로 황하문명 앞서는 '붉달문화[紅山文化]' 예맥문화의 우수성 증명되자' 황하문명' 이란 말마저 사라져 '돼지' 라고 했다가 '곰' 이라고 하는 사연 자라 설화를 곰 설화로 조작한 것이 동북공정의 시작점기자조선(箕子朝鮮)이 있었던 곳 평방자향의 백랑은 평양의 사음이고,백랑수는 패수 예맥(濊貊)의 땅 중심에 서다 '동호(東胡)'라는 딱지와 국외자(局外者)호화찬란한 회도와 청동기들은 한반도가 군외임을 증명해 그래도 요동(遼東)은 정신적 고향계문란 벽서에 동병상련하며 쫓겨온 조상들의 땅 생각하고한 옛날 국경 갈석산(碣石山)에 오르다 일본 학생들의 동아리활동 보며 우리 대학생이기를 바라곁가지 도막들아완(亞卍)무늬는 예맥(濊貊)의 무늬만(卍)자는 인도의 스와스티카가 아니라 예맥(濊貊)의 글자 석굴암돔은 바침없이 쌓은 것불국사 계단 아치(Arch)와 그 뿌리를 찾아 우르(Ur)까지 청맹과니와 한글 전용장님에 '단청(丹靑)구경'시키며 제 자랑만 하는 한글학자들 동박나무와 하늘다람쥐 동박나무를 생강나무로 고치는 바람에 「국어사전」도 헤매고 제사(祭祀)가 싫은 일이 안 되려면 4대 봉사는 잘못된 제도, 제사는 망자와 가까운 사람만 지내라 황성(荒城) 옛터와 수천년의 종살이 북통만한 한반도로 쫓겨 들어와 나라 세운후 노예 못 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