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지
판권기
[사진]
간행사 / 이태진
해제 / 최기영
범례
목차
국내보도기사 74
1910년대 76
1. 상해 가정부 해산 및 독립신문 발행 정지 (『매일신보』 1919.10.24) 76
2. 불령선인 근거지 일소 (『매일신보』 1919.10.25) 76
3. 불령단 해산 (『매일신보』 1919.10.26) 77
4. 가정부 해산 공보 (『매일신보』 1919.10.28) 77
5. 상해 가정부 해산에 관한 적지경무국장 담화 (『매일신보』 1919.10.28) 78
6. 가정부원 여운형 동경행 (『매일신보』 1919.11.12) 78
7. 상해 가정부 실상을 알고자 나선 조선경관 (『매일신보』 1919.11.18) 79
8. 상해 가정부 불란서 조계에서 나가라고 (『매일신보』 1919.12.15) 80
1920년대 80
9. 가정부 성립 축하문 배포 (『매일신보』 1920. 1. 12) 80
10. 가정부 여당 부호를 협박 (『매일신보』 1920.1.17) 81
11. 상해 가정부 길림군무지부 군자금 모집자 체포 (『매일신보』 1920.1.25) 81
12. 상해 가정부 교통부 관서지부 설치 (『매일신보』 1920.1.25) 82
13. 가정부원을 칭하고 2천원 강탈 (『매일신보』 1920.1.29) 82
14. 상해 가정부의 사명을 받고 운동책략중이던 김유화 체포 (『매일신보』 1920.2.27) 83
15. 관공서와 조선인 관리에게 폭탄습격을 획책한 문상직 체포 (『매일신보』 1920.2.28) 83
16. 상해 가정부 독립자금모집원 체포 (『매일신보』 1920.3.28) 84
17. 자칭 가정부원 육혈포를 손에 들고 담을 넣어 부자집에 (『동아일보』 1920.4.1) 84
18. 목제 육혈포로 상해 가정부 명령이라며 큰 돈을 빼앗아 (『동아일보』 1920.4.2) 85
19. 가정부를 파는 3인 강도 평양에 출현 (『매일신보』 1920.4.7) 85
20. 가정부원 이원진 체포되어 수원 검사국으로 (『매일신보』 1920.4.13) 86
21. 김강과 김택환은 가정부 헌금으로 부호를 위협하여 2천 여원 탈취 (『동아일보』 1920.4.16) 86
22. 군자금을 모집하던 가정부원 체포 (『매일신보』 1920.4.25) 87
23. 금전을 강탈한 자 가정부원이라고 (『동아일보』 1920.5.1) 87
24. 가정부원 2명이 부산수상서에 잡혀 (『매일신보』 1920.5.6) 88
25. 정해면은 과연 가정부원 (『동아일보』 1920.5.10) 88
26. 가정부 독립신문의 통신기관인 신청년단 검거 (『매일신보』 1920.5.13) 89
27. 독립신문 배달부 순사 치고 도망 (『동아일보』 1920.5.22) 90
28. 상해 가정부 정해면 서기 1년 징역 구형 (『매일신보』 1920.5.24) 90
29. 가정부원 비밀모의 중 잡혀 취조 중 (『매일신보』 1920.5.24) 91
30. 육혈포 가진 가정부 출장원 전라도 각 군에 퍼져 (『매일신보』 1920.5.25) 91
31. 자칭 가정부원 나주에서 군자금을 강청 (『매일신보』 1920.5.28) 92
32. 상해 가정부원 박형용 등 공판 (『동아일보』 1920.5.30) 92
33. 가정부를 팔고 탈금한 강도 체포 (『매일신보』 1920.6.7) 93
34. 가정부원 종강선 징역 1년 6월 선고 (『조선일보』 1920.6.8) 93
35. 나주에서 가정부원 6명 체포 (『동아일보』 1920.6.8) 94
36. 이덕환 외 가정부원 예심결정 (『매일신보』 1920.6.13) 94
37. 죽첨정에서 2명의 강도, 가정부원이라고 60원(월) 강탈 (『동아일보』 1920.6.15) 95
38. 상해 가정부 밀정 혐의자 무죄 방면 (『조선일보』 1920.6.16) 95
39. 이덕환 외 가정부원 예심 (『동아일보』 1920.6.17) 96
40. 독립운동비를 내라는 가정부원 출몰 (『동아일보』 1920.6.18) 96
41. 총기 휴대한 상해 가정부원 검거 압송 (『매일신보』 1920.6.19) 97
42. 상해 가정부 군자금 모집원(이덕환 외 4명) 유죄 결정 (『조선일보』 1920.6.22) 97
43. 상해 조선 ○○○ 대일결전 운운 (『조선일보』 1920.6.22) 98
44. 가정부원 군자금 모집하려다 총살되어 (『동아일보』 1920.6.23) 98
45. 상해 가정부 국민회원 70여명 체포 (『동아일보』 1920.6.24) 99
46. 독립자금 모집 자칭 가정부원 경성복심법원에 공소 (『매일신보』 1920.6.25) 99
47. 평남 성천에서 대한국민회원 50여명 체포 (『조선일보』 1920.6.28) 100
48. 가칭 가정부원의 육혈포 강도 (『조선일보』 1920.6.28) 100
49. 가정부원 3명이 면장을 총살 (『동아일보』 1920.6.28) 101
50. 군자금 모집 중 상해 가정부와 군정부 연락자 체포 (『조선일보』 1920.7.5) 101
51. 지영규 외 7명 가정부원 체포 (『동아일보』 1920.7.6) 102
52. 독립단 수괴 지영규 체포 (『매일신보』 1920.7.7) 102
53. 상해에 조선정부 (『조선일보』 1920.7.8) 103
54. 대한국민회 간부 일동 체포 (『매일신보』 1920.7.15) 103
55. 상해 가정부에 급진파와 온화파 의견 충돌 (『매일신보』 1920.7.15) 104
56. 대한국민회원단 예심판결 (『조선일보』 1920.7.18) 105
57. 평양에서 가정부를 팔고 강도질 (『매일신보』 1920.7.21) 106
58. 자칭 가정부원 이광윤 진남포에서 체포 (『조선일보』 1920.7.22) 106
59. 국민단원 진남포에서 체포 (『매일신보』 1920.7.22) 107
60. 평양에 자칭 가정부원은 진짜 강도로 판명 (『매일신보』 1920.8.1) 107
61. 독립대운동단 검거, 각종 배일문서 및 신문 철포 (『매일신보』 1920.8.1) 108
62. 가정부 군자금을 모집하던 기산도 일파 공판 (『조선일보』 1920.8.3) 109
63. 평양 강도사건 상보 (『매일신보』 1920.8.5) 109
64. 상해조선가정부, 미의원단 일행에 조선문제에 관한 진정서 제출 계획 (『동아일보』 1920.8.8) 110
65. 남재호·이광윤 등 상해 가정부 원조하던 국민단원 공판 (『동아일보』 1920.8.8) 110
66. 상해 가정부 요로에 있는 군인이라 한 군자금 청구자 강도죄로 검사국에 (『동아일보』 1920.8.10) 111
67. 가칭 가정부원 돈을 강청하다가 체포 (『매일신보』 1920.8.10) 111
68. 조선임시정부의 안동현 연통요새 (『동아일보』 1920.8.11) 112
69. 경성에서 가정부 재정단, 2만원의 군자금 제공계약 받아 (『조선일보』 1920.8.13) 113
70. 미국 선박을 막은 2청년은 방면, 가정부와 연락이 없다고 (『동아일보』 1920.8.14) 114
71. 평남 강서에서 가정부원 박달욱 체포 (『동아일보』 1920.8.14) 114
72. 미국의원단의 입성을 기회로 하여 배일 조선인 대비밀계획 (『매일신보』 1920.8.17) 115
73. 과격파와 상호 결탁하여 국외감사대를 조직 (『매일신보』 1920.8.18) 116
74. 대구에서 조직하려던 결사대 8명 검거 (『매일신보』 1920.8.19) 117
75. 상해 가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던 5명 중 2명 검거 (『매일신보』 1920.8.20) 117
76. 상해로 도주한 평양광성학생 체포, 검사국에 갔다. (『매일신보』 1920.8.20) 118
77. 상해 가정부와 기맥을 통한 보국대청년단 (『매일신보』 1920.8.24) 118
78. 비밀결사 대한국민회의 수령 취박 (『매일신보』 1920.8.25) 119
79. 형사가 가정부에 큰 돈을 모아 보내 (『동아일보』 1920.9.3) 119
80. 연통제원 박원혁 외 판결 언도 불복 공소 (『조선일보』 1920.9.5) 120
81. 미의원단에 진정서를 제출코자한 가정부 비밀사 김인근, 평양에서 체포 (『매일신보』 1920.9.5) 121
82. 가정부원과 밀통한 형사 순사 면직, 징역 6개월 처분 (『매일신보』 1920.9.6) 122
83. 포목점 2층을 가정부 교통부로 만들고, 독립운동자를 숙박케하며 음모를 꾸며 (『매일신보』 1920.9.7) 122
84. 연통제사건의 피고 36명, 일제히 공소 (『매일신보』 1920.9.9) 123
85. 내란죄로 구금중인 쇼, 의문의 2백만원 재산 (『매일신보』 1920.9.10) 124
86. 상해 독립신문 폐간 (『매일신보』 1920.9.11) 124
87. 임시정부 특파원 4명(윤병희·오상봉·김제원·임관희) 체포 (『동아일보』 1920.9.12) 52쪽 125
88. 상해 가정부 ○○교통부 서기 체포 (『매일신보』 1920.9.13) 125
89. 부자의 아들을 속여, 가정부로 동행하자고 약속 (『매일신보』 1920.9.13) 126
90. 윤자작 집에 잠입하였던 상해 가정부원 체포 (『매일신보』 1920.9.14) 126
91. 관수교 모 요리점에서 자칭 가정부원이 육혈포로 협박 (『매일신보』 1920.9.16) 127
92. 가정부를 팔고 강도질한 악한, 평양법원에서 중역 넉달 처분 (『매일신보』 1920.9.17) 127
93. 임시정부의 특파원, 18일밤 관수동 방면에서 수명이 체포 (『동아일보』 1920.9.21) 128
94. 경부 성정수에게 사직하라는 경고문 발송 (『동아일보』 1920.9.24) 128
95. 비밀운동자 체포, 독립자금을 모집차 오다가 잡혀 (『매일신보』 1920.9.27) 129
96. 미국에서 비행기 1대를 구입하여 상해 ○○○로 (『매일신보』 1920.10.3) 129
97. 가칭 상해 가정부특파원 이병도 등 2명 체포 (『매일신보』 1920.10.9) 130
98. 강서서에 체포된 대한부인청년단 (『매일신보』 1920.10.13) 130
99. 독립자금모집자 기술에 함락되어 체포 (『매일신보』 1920.10.13) 131
100. 노국식 5륜발 권총으로 군자금을 강청 (『매일신보』 1920.10.13) 131
101. 상해 가정부의 내막(1) (『매일신보』 1920.10.15) 132
102. 상해 가정부의 내막(2) (『매일신보』 1920.10.16) 132
103. 결사와 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광복단장 이하 4명 체포 (『매일신보』 1920.10.17) 133
104. 상해 가정부의 내막(3) (『매일신보』 1920.10.19) 134
105. 상해 가정부의 내막(4) (『매일신보』 1920.10.20) 135
106. 군기 구입자금으로 구국의연금 모집 (『매일신보』 1920.10.20) 135
107. 상해 가정부의 응모병, 벌써 50여명에 달해 (『매일신보』 1920.10.21) 136
108. 상해 가정부 기관지 「선미보」 배부 (『매일신보』 1920.10.22) 136
109. 가정부 철혈단에게 피체되던 전말 (『매일신보』 1920.10.22) 137
110. 상해 가정부의 내막(5) (『매일신보』 1920.10.22) 138
111. 상해 가정부의 내막(6) (『매일신보』 1920.10.23) 139
112. 쌀·콩 중개인은 가정부특파원 수천원 강탈 (『매일신보』 1920.10.25) 139
113. 개성에 출현한 가정부원 4명, 군자금으로 돈 만원을 내 놓으라고 (『매일신보』 1920.10.26) 140
114. 상해 가정부의 밀의와 위험운동 계책 (『매일신보』 1920.10.28) 140
115. 상해 가정부 내막(7) (『매일신보』 1920.10.30) 141
116. 상해 가정부와 기맥을 통한 겸이포의 비밀결사단 (『매일신보』 1920.11.4) 142
117. 비밀결사 대한애국부인회 검거 (『매일신보』 1920.11.7) 143
118. 공채 2만원 은익하고 일본인 복색으로 장기에 오다가 잡혀 취조 (『매일신보』 1920.11.7) 144
119. 독립군자금모집에 관한 피고 4명에 조전검사의 구형 (『매일신보』 1920.11.10) 144
120. 연통제 공소 공판(1) (『매일신보』 1920.11.16) 145
121. 연통제 공소 공판(2) (『매일신보』 1920.11.17) 146
122. 연통제 공소 공판(3) (『매일신보』 1920.11.18) 147
123. 연통제 공소 공판, 평산 검사의 구형, 피고 37명에 대하여 징역형 (『매일신보』 1920.11.19) 148
124. 상해 가정부는 최근 로령으로 이전했나 (『매일신보』 1920.11.25) 148
125. 세인을 놀라게 한 연통제 판결 언도 (『매일신보』 1920.12.3) 149
126. 육혈포 1발에 순직한 이형사 (『매일신보』 1920.12.6) 150
127. 노백린 부하 15명, 초산경찰서에서 체포 (『조선일보』 1920.12.7) 150
128. 15만원사건, 상해 가정부 조선독립운동 비용으로 조선은행 수송금 탈취 (『조선일보』 1920.12.10) 151
129. 15만원사건(2) (『조선일보』 1920.12.11) 152
130. 비밀조약을 체결한 가정부와 노농정부 (『조선일보』 1920.12.12) 153
131. 가정부는 시베리아로 (『조선일보』 1920.12.12) 153
132. 상해 가정부 이전비를 소지한 자, 용산에서 봉천으로 (『매일신보』 1920.12.13) 154
133. 상해의 가정부 이전, 모스크바 외 2개소에 지부를 설치해 (『조선일보』 1920.12.14) 154
134. 상해에 있는 가정부의 근정, 급진파는 정부를 지다시에 이전하고 일본에 선전코자 (『조선일보』 1920.12.14) 155
135. 상해 가정부 내정, 이승만과 김규식이 미국으로부터 돌아와서 협의 중 (『매일신보』 1920.12.14) 155
136. 대구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상해 가정부원 6명 대구 검사국에 (『조선일보』 1920.12.15) 156
137. 군자금 모집의 상해 가정부원 각지 부호를 음습하고 돈을 내어라 (『매일신보』 1920.12.16) 156
138. 상해 가정부 외교총장 여운형의 동정. 김가진과 의사가 대충돌 (『조선일보』 1920.12.17) 157
139. 무단파의 계통은 만주파 (『매일신보』 1920.12.17) 157
140. 가정부가 군함 수척을 구입하여 태평양 상의 해전을 계획중이라는 풍설 (『조선일보』 1920.12.19) 158
141. 평북 용천군에 별별 풍설 전파 (『매일신보』 1920.12.19) 158
142. 독립군자금 모집, 사형선고를 하느니 폭탄을 던진다고 공갈 (『매일신보』 1920.12.19) 159
143. 상해 가정부의 대일선전포고 (『조선일보』 1920.12.20) 159
144. 연해주 사회공산중앙총회 로국 과격파와 제휴하여 일본의 질서를 각란케 (『매일신보』 1920.12.20) 160
145. 군자금 제공을 거절하였다고 가정부로부터 사형선고 (『조선일보』 1920.12.21) 160
146. 가정부원 담양에 출현하여 군자금 1만원을 내라고 강청 (『매일신보』 1920.12.21) 161
147. 상해 가정부 선전원의 공판을 경성지방법원 형사부에서 불일간 개정 (『조선일보』 1920.12.22) 161
148. 귀순자가 휴대한 가정부 공채권, 민국이 완전히 건설된 후 5개년 후로 30년 내에 환상한다고 (『매일신보』 1920.12.23) 162
149. 유하현 삼원포에 군대식의 한족회, 군복을 정제히 하고 여러 가지 기관까지 정돈 (『매일신보』 1920.12.24) 163
150. 상해 가정부 과격파의 결의 (『조선일보』 1920.12.25) 163
151. 가정부 신방략은 선전이 유일 무기 (『매일신보』 1920.12.26) 164
152. 가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의 아들 체포 (『매일신보』 1920.12.26) 164
153. 상해 가정부와 무관학교 현상 (『매일신보』 1920.12.27) 165
154. 간도 방면을 돌파하고 조선 내 침입 계획 (『매일신보』 1920.12.27) 166
155. 면사무소 협박한 가정부의 파견원인 김홍수 외 2명 체포 (『조선일보』 1920.12.28) 166
156. 대한민국군정부 특파원 군자금을 대모집 (『조선일보』 1920.12.28) 167
157. 정운복에 대하여 이강공 전하와 상해 가정부에 투신하라고 협박 (『조선일보』 1920.12.28) 168
158. 상해 가정부의 밀사로 경성에 잠입한 묘령의 여자가 중심이 된 공영상회원 전부 인치 (『매일신보』 1920.12.28) 168
159. 자칭 가정부 밀사 체포 (『매일신보』 1920.12.30) 169
160. 가정부원인가 수상한 상륙객 (『매일신보』 1920.12.30) 169
161. 육혈포 가진 가정부원 2명, 부호를 협박 (『매일신보』 1921.1.3) 170
162. 여운형의 연설, 독립 원조를 희망 (『매일신보』 1921.1.7) 170
163. 상해에 가서 조선가정부 총재라도 하실 생각으로 (『조선일보』 1921.1.8) 171
164. 가정부원의 군자금 모집. 육혈포를 휴대하고 6백원 강탈 도주 (『조선일보』 1921.1.8) 171
165. 독립신문 및 상해 가정부의 공보 약 5백매를 김리욱에게 교부 (『조선일보』 1921.1.8) 172
166. 조선독립청년단. 예심종결서(1), - 조선독립 군자금을 모집하던 이원식외 17명- (『조선일보』 1921.1.8) 173
167. 군자금 모집 혐의, 중역에 불복 공소 (『조선일보』 1921.1.9) 174
168. 조선독립청년단 예심종결서 (2) (『매일신보』 1921.1.9) 175
169. 시내 및 각지로 횡행하던 음모단원 2명 검사국으로 (『매일신보』 1921.1.9) 176
170. 군자금모집자 공소, 제 1심을 불복하고 경성으로 (『매일신보』 1921.1.9) 176
171. 육혈포를 가진 가정부원 6명, 부호를 협박하고 6백여원을 강탈 (『매일신보』 1921.1.10) 177
172. 군자금을 얻어서 가정부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은 군자금모집원 검거 (『매일신보』 1921.1.11) 178
173. 신년벽두를 제하여 종로서 대활동으로 중대범인 검거 (『매일신보』 1921.1.11) 179
174. 여운형 도미설, 선전하기 위하여 머지않아 간다고 해 (『조선일보』 1921.1.11) 179
175. 가정부원 군자금 달라고 위협 (『조선일보』 1921.1.12) 180
176. 독립원이 조제한 가정부의 지화. 충북 면사무소에서 발견 (『조선일보』 1921.1.12) 180
177. 면사무소에서 공금 탈취하던 대한정부의 원조금 수취원 김홍수 일파의 상보 (『조선일보』 1921.1.12) 181
178. 시국을 빌고 상해 가정부 애국금 모집한 자 검사국으로 (『조선일보』 1921.1.12) 181
179. 여운형의 목적 진상, 가정부를 광동에 이전 관측 (『매일신보』 1921.1.12) 182
180. 상해 가정부원 50전 지폐 위조 (『매일신보』 1921.1.12) 182
181. 대한민국 임시정부특파원 예심종결서. -유갑순 등- (『조선일보』 1921.1.13) 183
182. 가정부를 빌어 금전 강탈한 단총휴대 가정부원 최강식과 김이만 (『조선일보』 1921.1.14) 184
183. 제2부에서 중대범인 1명 체포, 상해 가정부에 상당한 지위를 가진 이병규 (『조선일보』 1921.1.14) 184
184. 여운형의 광동 유세 목적. 가정부는 광동으로 (『조선일보』 1921.1.14) 185
185. 군자금 조달과 독립신문을 반포한 18명에 대해 검사국에서 예심청구 (『매일신보』 1921.1.15) 185
186. 가정부의 신지폐, 군자 사용 목적으로 각지에 밀수설 (『조선일보』 1921.1.16) 186
187. 미국 무관 시찰은 여운형 일파의 운동 (『조선일보』 1921.1.17) 186
188. 외적 운동에 실패한 대음모단의 신연통제사건 대폭로 (『매일신보』 1921.1.17) 187
189. 독판부 조직을 반대한 서일이란 사람은 안정근을 암살코자 하였었다고 (『매일신보』 1921.1.17) 188
190. 가정부 후원회를 조직하여서 민의적으로 기부금을 모집하여 원조해 (『매일신보』 1921.1.18) 189
191. 가정부 군자금 모집원, 어제 검사국에 압송 (『조선일보』 1921.1.19) 190
192. 경성에 가정부 조직이라는 새로운 안의 별별 사기술 (『매일신보』 1921.1.19) 191
193. 가정부의 일대 계획, 선전포고를 협의 중이다 (『매일신보』 1921.1.20) 192
194. 조선독립단 가정부 특파원의 불복 공소 (『조선일보』 1921.1.21) 192
195. 상해 가정부 간부 등의 대활동, 김좌진·홍범도 등 동지를 소집하여 암살단 조직 (『조선일보』 1921.1.22) 193
196. 상해 가정부에서 일본에 대하여 선전 (『조선일보』 1921.1.22) 193
197. 가정부 군자금 모집원 공판 제3회 개정 (『조선일보』 1921.1.22) 194
198. 재봉침대로 횡령한 가정부원 횡령액 5천원 (『조선일보』 1921.1.22) 194
199. 상해에서 협의한 가정부의 방침 (『조선일보』 1921.1.22) 195
200. 3명의 가정부원 김태수·김맹춘·문정물이 군자금모집하다가 목포경찰서에 검거 (『조선일보』 1921.1.23) 195
201. 상해 가정부에 군자금 송부 사건 (『매일신보』 1921.1.23) 196
202. 여운형의 도미 용무, 대일 선전에 관하여 교전 단체의 승인을 얻고자 함 (『조선일보』 1921.1.25) 197
203. 상해 가정부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동휘의 알력 (『매일신보』 1921.1.25) 197
204. 자칭 가정부원 여비 강청, 그 사람은 모 신문기자다 (『매일신보』 1921.1.26) 198
205. 부호가에 사형 선고 (『조선일보』 1921.1.28) 198
206. 가정부 위원 공판을 일간 개정 (『조선일보』 1921.1.28) 199
207. 가정부원 검거, 철산경찰서 (『조선일보』 1921.1.29) 199
208. 제국대학 생도 가정부에 간 듯 (『조선일보』 1921.1.29) 200
209. 군자금모집원 강성관, 대한제국 대통령 안창호 인장친 보조기로 군자금 청구 (『조선일보』 1921.1.31) 200
210. 상해에 있는 가정부 (『조선일보』 1921.1.31) 201
211. 조선어 능통한 일본인의 가정부원 군자 모집 (『조선일보』 1921.1.31) 202
212. 경성 각소를 배회하는 자칭 가정부원, 3명 체포 군자금 모집관계인 듯 (『조선일보』 1921.2.1) 203
213. 가정부특파원의 공판개정, 독립운동 군자모집을 하다 검거된 이원생 외 1명 (『조선일보』 1921.2.1) 204
214. 군자금모집 및 정치변혁운동하던 가정부 특파원, 상해임시정부 내무부장 이동녕과 활동중 검거 (『조선일보』 1921.2.1) 205
215. 안창호 부하 검사 공판 청구, 경성을 중심삼아 군자금 모집한 자 (『매일신보』 1921.2.1) 205
216. 조선 독립 운동하던 맹호단장의 공소 (『조선일보』 1921.2.3) 206
217. 가정부 특파원이 동정부원에게서 금전 강탈 (『조선일보』 1921.2.3) 207
218. 가정부 특파원 복심원에서 이원생 외 1명의 제2회 공판 (『조선일보』 1921.2.4) 207
219. 부호인에게 군자 강청, 독립단인가 강도인가 (『조선일보』 1921.2.5) 208
220. 상해 가정부 광동조계로 이전, 내무총장 이동녕은 각 방면에 통지서를 발송 (『조선일보』 1921.2.6) 209
221. 가정부를 빙자하고 협갈 취재 (『조선일보』 1921.2.6) 209
222. 임실군 오수우편소로부터 상해가정부의 군자금모집 서류 1통 배달 (『조선일보』 1921.2.6) 210
223. 상해가정부 광동으로 이전, 내무총장 이동녕은 각 방면에 통첩 발송 (『매일신보』 1921.2.6) 211
224. 가정부 재무원 체포, 불온문서를 배포해 군자금을 모집 (『매일신보』 1921.2.6) 211
225. 벽동 군청에 근무하는 자칭 가정부원 사살 (『조선일보』 1921.2.8) 212
226. 비밀단 조직, 군자금을 모집하여 가정부에 보낼 목적으로 (『조선일보』 1921.2.8) 212
227. 15만원사건 제2회공판 (『조선일보』 1921.2.8) 213
228. 군자금 강청범 김진동 사건 (『조선일보』 1921.2.8) 214
229. 가정부 직원 사살 (『매일신보』 1921.2.10) 215
230. 15만원 사건 어제 복심원 개정 (『조선일보』 1921.2.11) 215
231. 독립 군자금을 모집 가정부원 예심 종결 (『조선일보』 1921.2.11) 216
232. 가정부 경성 교통부 애국금 수합위원 검사국에 (『매일신보』 1921.2.11) 217
233. 조선부인이 군자금 8만원을 중국인에게 위탁하여 상해 가정부에 보냈다고 (『조선일보』 1921.2.14) 217
234. 독립단을 빙자하고 군자금을 청구 (『조선일보』 1921.2.15) 218
235. 군자금을 생활비로 소비한 자칭 가정부 지방출장원 2명 체포 (『매일신보』 1921.2.15) 218
236. 단총을 휴대한 상해 가정부원 평강 경찰에 체포 (『조선일보』 1921.2.16) 219
237. 15만원사건 상고 (『조선일보』 1921.2.17) 219
238. 가정부 특파원의 공판 개정. 경성부 관훈동 이원생 (『조선일보』 1921.2.18) 220
239. 군자금모집하다 발각된 가정부 의군단원 오지화 등에 공소 판결 (『조선일보』 1921.2.19) 220
240. 가정부특파원 이원생·서정섭의 계속 공판 (『조선일보』 1921.2.20) 221
241. 가정부로 가려던 비밀사건, 군자금 모집을 위해 여비 마련중 발각 (『조선일보』 1921.2.21) 221
242. 가정부 의정원 부의장 이춘숙 등 공판기 (『조선일보』 1921.2.21) 222
243. 상해임시정부 경북교통부장 안상길 등은 공판에 부치어 (『동아일보』 1921.2.23) 223
244. 가정부 교통부장 공판에 (『매일신보』 1921.2.23) 224
245. 여운형 민단장, 일본에 초대를 받아 후대를 받았다고 (『매일신보』 1921.2.26) 224
246. 상해조선임시정부의 간부, 대통령은 여전히 이승만 세력을 회복코저 하는 중 (사진: 이승만) (『동아일보』 1921.2.27) 225
247. 상해 가정부 특파원 이원생 등 판결 (『동아일보』 1921.2.27) 225
248. 가칭 가정부원 자위단원에게 잡혔다 (『매일신보』 1921.2.27) 226
249. 상해 가정부 법무차장은 일본측 탐정 혐의로 참수되었다고 (『매일신보』 1921.3.2) 226
250. 독립운동원 이원식 판결언도는 오는 10일 오전10시 (『조선일보』 1921.3.3) 227
251. 가정부 외교부장 최명록 북경 출발설 (『조선일보』 1921.3.3) 227
252.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모집원 평양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1.3.3) 228
253. 군자금모집원 육혈포로 협박하고 금품 강청 (『매일신보』 1921.3.4) 228
254. 육혈포를 휴대한 군자금모집단 4백원 탈거 (『조선일보』 1921.3.5) 229
255. 단총 휴대한 가정부원, 백원같은 약소한 것은 아니 가져 간다고 (『조선일보』 1921.3.5) 229
256. 상해 임시정부 제8회 의정원회의. 이승만대통령 명령으로 28일 개회 (『조선일보』 1921.3.7) 230
257. 군자금모집원 판결언도는 오는 11일 (『조선일보』 1921.3.7) 230
258. 동경에 온 상해가정부 재무총장과 국무총리 비서역이였던 모학생에 대한 경시청 활동 (『동아일보』 1921.3.7) 231
259. 안악 원명로씨 집에 가정부원 군자금모집자 침입 (『동아일보』 1921.3.7) 158쪽 231
260. 평북의주 송세열씨 집에 3명의 임시정부원 침입 (『동아일보』 1921.3.7) 232
261. 숭실학생 5명의 청년이 군자금을 모집해서 상해 임시정부로 가 사관생될 계획 발각 (『동아일보』 1921.3.7) 232
262. 양대현 정영원 2명 가정부와 연락하여 군자금모집, 이강공 애첩 이연연을 협박하고 50원을 강탈 (『동아일보』 1921.3.8) 233
263. 대동청년 해산, 간부들이 연통제 죄로 검거와 재정곤란으로 (『조선일보』 1921.3.9) 233
264. 가정부특파원 제3심공판. 이원생 서정섭 등 충남에서 군자금 모집 (『조선일보』 1921.3.11) 234
265. 15만원사건의 공판기일은 오는 24일 (『조선일보』 1921.3.11) 234
266. 정치범 등 공판기일. 조선독립운동사건 이춘숙외 10명 공판 (『조선일보』 1921.3.12) 235
267. 상해 가정부와 광동군정부 접근설, 동제사 총대 신예관(신규식)은 광동군정부에 원조 요구해 (『조선일보』 1921.3.12) 235
268. 독립단원 백승하 등 오는 16일 언도 (『조선일보』 1921.3.13) 236
269. 가정부와 연락하여 독립선전 (『조선일보』 1921.3.13) 236
270. 임시정부의 정탐, 의주 야소교회 장로 조광준을 체포 (『동아일보』 1921.3.13) 237
271. 자칭 가정부원이 암살단에게 총살됨 (『조선일보』 1921.3.14) 237
272. 시국을 빙자하고 가정부원이라 하야 김기팔에게 군자금 백원 청구 (『동아일보』 1921.3.14) 238
273. 불온문서를 전송하던 신명공사원 박기택 체포 (『동아일보』 1921.3.15) 238
274. 상해임시정부 군무차장 이춘숙의 공판은 16일 (『동아일보』 1921.3.15) 239
275. 독호단의 판결 금일, 백승하 외 1명 (『조선일보』 1921.3.16) 239
276. 금일 법정에 설 상해 가정부의 의정원 부의장 이춘숙 (『조선일보』 1921.3.16) 240
277. 배일조선인단과 독립군비단이 모은 만원의 군자금은 가정부에 (『동아일보』 1921.3.16) 241
278. 섬천에서 이병조 윤창수가 가정부원이라 거짓말하야 부호를 협박 (『동아일보』 1921.3.16) 241
279. 의군단원에게 징역 2년 구형, 정기순 외 1명은 독립운동에 관한 서류를 가지고 입경 (『조선일보』 1921.3.17) 242
280. 안악 최창선 집에서 군자금이라고 60원을 피탈한 가정부원으로 인해 안악지방 불안 (『동아일보』 1921.3.17) 243
281. 독립운동하던 승려 등의 공판, 박달준 김봉율은 무관학교졸업생으로 군자금 모아 가정부에 (『조선일보』 1921.3.19) 243
282. 지금 상해에 살아있는 안병찬 씨의 참수설은 무근 (『조선일보』 1921.3.19) 244
283. 정치범의 공소기각, 백승하와 허영기(『조선일보』 1921.3.19) 244
284. 독립단 무기 구입설, 안창호·이동휘파가 과격파로부터 (『매일신보』 1921.3.19) 245
285. 의군단의 판결, 정기순·김영수는 조선 가정부의 파견의군단 가입 (『조선일보』 1921.3.20) 245
286. 암살단의 공소, 김홍수는 군자금 모집하며 암살단이라 자칭 (『조선일보』 1921.3.20) 246
287. 단총을 휴대한 7명의 정부원 300원을 뺏어 (『조선일보』 1921.3.20) 246
288. 안병찬씨 일본정탐 혐의로 이승만 명령에 의한 사형설 무근 (『동아일보』 1921.3.20) 247
289. 선지인 대음모 사건, 대한독립구국단을 조직코자 정인호 외 8명이 군자금 1·2만원을 보낸 듯 (『매일신보』 1921.3.20) 247
290. 가정부로부터 금메달, 조선독립만세사건시 조선인을 도와준 제창병원에 감사표시 (『조선일보』 1921.3.21) 248
291. 요술로 대관 암살, 상해 임시정부의 새 계획 (『동아일보』 1921.3.22) 248
292. 구국단원 장두철·정인호 등 8명 검사국으로 (『동아일보』 1921.3.23) 249
293. 용천 관민 의사소통, 용천군 내 유력가 제씨가 상해가정부로부터 사령을 접수한 사실이 발각 (『동아일보』 1921.3.23) 249
294. 상해정부 위문사, 간도에 들어와 여러 수령과 면회하고 실행방법 의논 (『조선일보』 1921.3.24) 250
295. 15만원사건 제3심 공판 (『조선일보』 1921.3.25) 251
296. 가정부 특파원의 상고 공판 (『조선일보』 1921.3.25) 251
297. 이선경은 구례면의 김형석 집에 들어가 시국을 빙자하고 40원을 강탈 (『동아일보』 1921.3.25) 252
298. 보성군 홍덕함의 집에서 단도로 협박한 김태삼 윤사윤 등 5명은 전부 체포 (『동아일보』 1921.3.25) 252
299. 친부에게 협박장, 진주군 평안동 서윤보의 아들 서상순이 상해 가정부원이라 하고 돈을 내라고 (『동아일보』 1921.3.26) 253
300. 「13도 총간부」라는 특파원증을 주고서 독립군자금을 걷은 류갑순 예심종결 (『매일신보』 1921.3.27) 253
301. 상해가정부는 재만친일조선인조직 보민회 간부들을 죽이라고 간도독립단에게 현상으로 암살 계획, (『동아일보』 1921.3.29) 254
302. 대한민국청년단원 이시모 문관진 문덕일 등 군자금모집 후 상해임시정부로 보낸 혐의로 징역 10년 (『동아일보』 1921.3.30) 254
303. 가정부원 공판 (『조선일보』 1921.4.1) 255
304. 가정부에 보낼 폭탄 제조범 박문욱 김용환 독고규, 상해 임시정부 원조 목적으로 폭탄제조 은닉 (『조선일보』 1921.4.2) 255
305. 상해임시정부에서 발행하는 독립신문을 판매한 이용서 체포 (『동아일보』 1921.4.2) 256
306. 신민단 거괴 체포, 상해가정부와 연락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려 활동 (『매일신보』 1921.4.3) 256
307. 대한애국부인청년단 검거상보, 상해임시정부에 보내고자 군자금을 모집한 안인대 등 14명 평양검사국 압송 (『동아일보』 1921.4.4) 257
308. 안주 류광조씨 집에 육혈포단, 상해임시정부 군자금으로 천원을 강탈 (『동아일보』 1921.4.4) 257
309. 상해 정부의 사명을 띠고 귀선한 길송죽·권혁행·최헌은 과격사상을 선전하기 위하여 (『조선일보』 1921.4.5) 258
310. 상해가정부 분열, 무력파는 따로 가정부를 세우려고 지금 계획 중임 (『매일신보』 1921.4.5) 258
311. 가정부 공보로 동지를 규휼하다가 드디어 체포되어 (『매일신보』 1921.4.5) 259
312. 신의주 박욱·독고규·김용환은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여 독립운동에 사용하고자 폭발탄 3개를 제조 (『동아일보』 1921.4.6) 259
313. 황해도 신장선·김일남은 상해가정부원이라 공모하고 군자금으로 돈을 청구하다 체포 (『동아일보』 1921.4.7) 260
314. 주비단원 이승길씨 등 50명 사리원경찰서에서 검거 (『동아일보』 1921.4.9) 260
315. 경관 「가정부원」이라 사칭한 재녕청년회장 정택유씨를 체포 (『동아일보』 1921.4.11) 261
316. 자칭 가정부원 두번째 감옥으로 (『동아일보』 1921.4.12) 261
317. 독립단원 천규석 등 공소 (『조선일보』 1921.4.13) 262
318.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령」 문서를 받은 최진순 천규석 공소 (『동아일보』 1921.4.13) 262
319. 상해 임시정부원으로 과격사상을 선전한다는 혐의를 받아오던 최두현 등 3명 사실이 없음 판명 (『동아일보』 1921.4.15) 263
320. 흑용주에 특수지대 설정설 (『동아일보』 1921.4.17) 263
321. 「니콜리스크」시에서 조선독립공채를 모집하던 김용범 공소 (『동아일보』 1921.4.20) 264
322. 가정부원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로 재령청년회장 정택유씨 무사 방면 (『동아일보』 1921.4.23) 264
323. 상해 임시정부관련 독립단원과 군자금모집원 출몰 이유로 순천경찰서 대활동 (『조선일보』 1921.4.24) 265
324. 가정부의 헌병 체포 (『조선일보』 1921.4.24) 265
325. 교통국사건 17명 피고에 대한 구형 (『매일신보』 1921.4.28) 266
326. 교통국사건의 구형, 상해 임시정부에서 오는 문서는 일반에게 배포하고 공채로 독립자금을 모집 (『동아일보』 1921.4.28) 267
327. 군자금을 모집한 평남 순천의 김법은 잡히어 검사국에 넘겨 (『동아일보』 1921.4.30) 267
328. 독립군자금을 모집 계획하다 광주서 체포된 신덕영 등의 공판 (『동아일보』 1921.5.1)[원문불량;p.195] 268
329. 가정부 이전설. 이동휘가 상해에서 열심 운동 (『조선일보』 1921.5.2) 269
330. 상해 가정부 헌병반장 전복신. 음하주재소 부근에서 체포되어 검사국에 (『조선일보』 1921.5.3) 269
331. 대한독립일신청년회장 전경하 이외 20명 체포 (『동아일보』 1921.5.3) 270
332. 향촌회원 강서군에서 10명을 검거 (『동아일보』 1921.5.3) 270
333. 중대범인 4명 겸이포경찰서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1.5.3) 271
334. 1만원을 모집한 정주 오산학교 교원의 공판 (『매일신보』 1921.5.5) 272
335. 상해 가정부 연합대회, 반대파에 대하여 대항책을 강구 (『매일신보』 1921.5.8) 273
336. 의주에도 독립단 4명이 들어와 상해임시정부원이라고 큰 돈을 가져가 (『동아일보』 1921.5.9) 273
337. 광복단원 또 검거 (『동아일보』 1921.5.9) 274
338. 여행중인 통영 김두옥 체포,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한 혐의 (『동아일보』 1921.5.10) 274
339. 북경 조선인 국민대회. 상해 가정부 시위운동 (『조선일보』 1921.5.11) 275
340. 상해 가정부 군무차장 이춘숙 공판기 (『동아일보』 1921.5.13) 275
341. 경무서에 체포된 독립원. 신의주경찰서로 인도 (『조선일보』 1921.5.14) 276
342. 수상한 북한산의 노영 때문에 깜짝 놀라서 탐험대까지 보내어 체포 (『매일신보』 1921.5.14)[원문불량;p.203] 276
343. 가칭 가정부원 영광 부자의 집을 습격하여 강탈해 (『매일신보』 1921.5.14) 277
344. 독립청년단 양승복 외 19명. 순천경찰서에 체포되어 (『조선일보』 1921.5.16) 277
345. 애국청년단 검거, 상해가정부를 원조할 목적으로 군자금을 걷어 (『매일신보』 1921.5.17) 278
346. 비밀결사단 2명은 무죄. 대한독립청년단원 중 이원식은 증역 5년에 (『조선일보』 1921.5.20) 278
347. 불온문서로 선전코자 내선한 교통특파원 체포 (『매일신보』 1921.5.24) 279
348. 출옥한 오백경, 상해 임시정부원이라 현금 1원과 집신 한켜레 빼앗다 장련에서 잡혀 (『동아일보』 1921.5.24) 279
349. 독립운동원 황종희는 가정부의 항일독립에 관한 서류와 함께 체포 (『조선일보』 1921.5.25) 280
350. 가정부원 체포. 완구총으로 위협하며 군자금을 제공하라고 (『조선일보』 1921.5.25) 280
351. 상해 임시정부 선전원 정효용, 공판은 오늘 (『동아일보』 1921.5.25) 281
352. 상해 임시정부 군무차장 이춘숙의 공판은 오늘 (『동아일보』 1921.5.25) 281
353. 상해가정부 군무차장 이춘숙의 제1회 공판 어제 개정 (『동아일보』 1921.5.26) 282
354.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와 안창호의 비밀회의 (『동아일보』 1921.5.26) 282
355. 상해 특파원 1명 체포 (『동아일보』 1921.5.26) 283
356. 강원도의 천도교구장 김찬호와 가정부 선전원 정효용 2건 같은 법정에서 공판 (『동아일보』 1921.5.26) 283
357. 이동휘 안창호 등의 내분, 제다정부가 일본과 악수할 듯해서 (『매일신보』 1921.5.26) 284
358. 정치범 3명의 언도 오는 30일에 될 터, 징역 10년 구형 (『매일신보』 1921.5.26) 284
359. 음모운동에 가담하라고 권유하고 군자금을 강청한 김현석 체포 (『매일신보』 1921.5.27) 285
360. 안상길 등 불온문서 교묘히 물병 속에 넣어 가지고 활동하다가 체포 (『매일신보』 1921.5.27) 285
361. 불온문서로 협박하고 6천여원을 거두어서 상해 가정부로 보내다가 체포 (『매일신보』 1921.5.28) 286
362. 가정부 출장원이라고 자칭한 이윤강 복심법원에 공소 (『매일신보』 1921.5.28) 286
363. 양기탁 대통령설,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6월 상순에 취임한다고 (『동아일보』 1921.5.30) 287
364. 상해 가정부에 돈을 보내려던 오산학교 회계 이윤영은 결국 1년 판결 (『동아일보』 1921.5.31) 288
365. 양씨도 사실을 부인, 양기탁씨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이라는 말은 풍설에 불과한 듯 (『동아일보』 1921.5.31) 288
366. 군자금영수증과 임시정부공채증서를 가진 5명 마침내 경찰부 손에 잡혀 (『동아일보』 1921.6.1) 289
367. 충남지부 특파원으로 독립자금을 모집하던 유창렬은 1년, 불복하고 공소 (『동아일보』 1921.6.1) 289
368. 천안 신대선도 피체, 사건은 점점 커지는 모양 (『매일신보』 1921.6.2) 290
369. 상해 임시정부 군무차장 이춘숙은 5년 징역 (『동아일보』 1921.6.4) 290
370. 가정부 선전원 정효용 징역 1년 (『동아일보』 1921.6.4) 291
371. 독립신문사 사원 이원렬의 1심공판 (『동아일보』 1921.6.4) 291
372. 운동 중에 발각된 음모, 노국 노동정부와 결탁하여 조선에 노농회 설치 (『매일신보』 1921.6.4) 292
373. 군무차장 이춘숙은 결국 징역 5년으로 (『매일신보』 1921.6.4) 292
374. 광주청년회를 중상코자 전남도청에 투서 (『동아일보』 1921.6.5) 293
375. 여러 가지 경고문을 인쇄하여 가지고 암살대를 조직코자 했다 (『매일신보』 1921.6.5) 293
376. 충주 방면에도 가정부원 횡행, 부자에게 군자금을 청구 (『조선일보』 1921.6.6) 294
377. 수괴는 무기도형에, 상해가정부원이라 칭하고 전남지방을 횡행한 자 (『매일신보』 1921.6.6) 294
378. 가정부통신원 15명 전부 체포 (『매일신보』 1921.6.8) 295
379. 비밀청년단, 조선독립운동기관으로 조직 (『매일신보』 1921.6.8) 295
380. 여자로 조직한 향촌회, 32세된 한 독신여자가 부회장이 되어 활동 (『매일신보』 1921.6.8) 296
381. 예배당에서 밀의, 독립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가정부로 보내자고 (『매일신보』 1921.6.9) 296
382. 독립부인단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보내어 (『조선일보』 1921.6.10) 297
383. 제일루사건 내용 어제 경기도 경찰부 발표, 공채증서와 특파원임명장으로 군자금모집 (『조선일보』 1921.6.10) 297
384. 거액의 금전을 수취한 가정부원 김봉구 전문옥 강작지에 대한 언도 (『조선일보』 1921.6.10) 298
385. 시국을 표방하여 상해가정부원이라 사칭 천원 강청하던 자, 강도죄로 공판 (『동아일보』 1921.6.10) 298
386. 가정부원 서흥·연백군에 출현, 군자금 모집인 듯 (『조선일보』 1921.6.11) 299
387. 의주군회를 조직,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던 의주군감 등에 대한 판결 (『동아일보』 1921.6.13) 299
388. 상해 가정부 현상. 이승만은 원조를 구하고자 미국으로 (『조선일보』 1921.6.14) 300
389. 통신물 단속, 독립신문·임시정부선전서 등에 대해 경기도경찰부에서 조사 중 (『동아일보』 1921.6.16) 300
390. 한희수 등 판결, 한희수는 중역 1년 반에 기타는 6개월씩 언도 (『매일신보』 1921.6.16) 301
391. 가정부의 공채증서를 충북도청 고원 이광석이 가진 혐의로 대수색 (『동아일보』 1921.6.17) 301
392. 가정부특파원 각처에서 군자금을 많이 모집 (『매일신보』 1921.6.17)[원문불량;p.229] 302
393. 면장을 사살한 박인혁 무기형이 무죄로 판결 (『매일신보』 1921.6.17) 303
394. 계혈단의 침입설, 정황을 충분히 조사하여 종교대회에 보고코자 해 (『매일신보』 1921.6.17) 304
395. 상해 가정부에서 각단 대표자회의. 광복 흥업 군비의 삼단에서도 대표자를 파송 (『조선일보』 1921.6.19) 304
396. 자성대안에서 접전,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부하 김영화 외 1명 체포, 3명은 총살해 (『동아일보』 1921.6.19) 305
397. 상해가정부 군무부 소대장 김영화, 평북자성경찰서에 체포 (『조선일보』 1921.6.21) 305
398. 상해가정부 발행 독립공채를 이용하여 군자금 모집하던 박래홍을 공소 (『동아일보』 1921.6.21) 306
399. 도미 도중의 조선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지난 14일에 마닐라 출발 (『동아일보』 1921.6.22) 306
400. 가정부의 영수인가? 우선 웅야환에 탑승한 신사풍의 조선인 경계중 (『조선일보』 1921.6.23) 307
401. 동대문서 관내에서 육군비밀서류 휴대한 중대범인 체포 (『조선일보』 1921.6.25) 307
402. 동대문서에서는 중대범 ○명 체포한 후 어제 식전부터 대활동 (『조선일보』 1921.6.26) 308
403. 광복단의 대음모, 60여명은 유죄로 호송 (『매일신보』 1921.6.26) 308
404. 소위 ○○누설사건 신사실 폭로?, 군대당국은 설명이 없어 의혹만 점점 깊어가 (『조선일보』 1921.6.27) 309
405. 과격파라 자칭한 이위상 징역 8년 언도 (『동아일보』 1921.6.28) 310
406. 가정부의원 김진우, 신의주역에서 경관에게 발견 (『조선일보』 1921.6.29) 310
407. 동대문서에 중대사건 다시 발발. 25·6일에 유력한 범인 2명 체포 (『조선일보』 1921.6.29) 311
408. 공소한 상해 가정부 군무차관이던 이춘숙은 다음달 4일에 공판 (『동아일보』 1921.6.29) 311
409. 동대문서에 체포된 가정부특파원 홍순삼 (『조선일보』 1921.6.30) 312
410.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출장소이고 진정한 정부는 로국에 있다고 대언한 김명호 압송 (『동아일보』 1921.6.30) 312
411. 군자금으로 2만원을 청구한 2명 경성에 공소 (『동아일보』 1921.6.30) 313
412. 총살한다 협박하고 독립자금이라고 돈을 강청한 최성형 등 구형 (『매일신보』 1921.6.30) 313
413. 홍재문과 권잠술, 상해가정부원이라 자칭하고 3천원을 강탈 (『동아일보』 1921.7.1) 314
414. 안국동에서 청년 6명, 상해와 연락하고 갈 기회를 엿보다가 종로서에 체포 (『동아일보』 1921.7.2) 314
415. 양평군의 비밀결사, 대한독립단을 만들고 단장 한덕리은 야소교 장로 (『매일신보』 1921.7.2) 315
416. 대동단원 공소 판결. 황창오는 15년 신현필은 5년 (『조선일보』 1921.7.3) 316
417. 주비단원 60명, 남천경찰서의 활동으로 잡아 취조 중 (『매일신보』 1921.7.3) 317
418. 상해 가정부의 신계획, 구국공채를 모집코자 모집대를 만들어 만선 각지에 파견 (『매일신보』 1921.7.3) 317
419. 신의주경찰서에 독립당원 다시 검거 (『조선일보』 1921.7.4) 318
420. 독립자금을 거두던 박재후, 상해에 밀왕을 기도하다 의주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1.7.4) 318
421. 양기탁 통령설 전혀 무근이라고, 대통령 이승만은 방금 미국 가는 중 (『동아일보』 1921.7.4) 319
422. 함경남북총사령 사령서를 받으려고 상해가정부로 가던 박재후 잡혀 (『매일신보』 1921.7.4) 319
423. 양기탁 대통령 당선설 무근, 이승만 박사가 여전히 대통령 (『매일신보』 1921.7.4) 320
424. 란인 상업은행으로부터 2만원을 횡령한 배일중국인, 상해임시정부와 그 맥을 통하여 회녕으로 들어가 (『조선일보』 1921.7.5) 320
425. 윤건영 형제 40만원사건 검사국에 (『조선일보』 1921.7.5) 321
426. 상해 임시정부 군무차장 이춘숙의 공소 공판, 검사는 8년 징역을 구형 (『동아일보』 1921.7.5) 321
427. 송임 중에서 밀의하고, 군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군인을 모집 (『매일신보』 1921.7.7) 322
428. 부호를 협박하고 3천원을 내라고 처참하게 공갈 (『매일신보』 1921.7.7) 322
429. 모 사건의 중대범인 종로경찰서에 체포, 군자금 모집하던 가정부원인 듯 (『조선일보』 1921.7.8) 323
430. 가정부 재무부원으로 모집원을 편성하여 만·선 각 지방과 일본에서 구국공채모집 (『조선일보』 1921.7.8) 323
431. 상해 임시정부 군무차관이었던 이춘숙 공소 취하, 결국 5년 복역 (『동아일보』 1921.7.9) 324
432. 시국 표방의 흉적, 군자금이라고 사기공갈을 한 6명 도적 동대문에서 (『매일신보』 1921.7.10) 324
433.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고 독립운동에 진력하던 대한정의단 체포 (『조선일보』 1921.7.12) 325
434. 부호를 협박하고 현금 6백원 강탈 김영규, 상해 가정부원이라 칭하며 군자금요청 (『조선일보』 1921.7.15) 325
435. 권총 휴대한 오인단, 의주군에서 군자금 강청 (『매일신보』 1921.7.17) 326
436. 숭실교 출신 김상만 체포, 상해 가정부에 참가하여 군자금 모집하다가 (『조선일보』 1921.7.19) 326
437. 동경유학생이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큰 음모 (『매일신보』 1921.7.19) 327
438. 상해 가정부와 기맥을 통한 중국은행원 81,982원을 휴대하고 어디로 도주해 (『조선일보』 1921.7.20) 327
439. 큰 돈을 소지한 중국청년 음모선인단에 가담 (『매일신보』 1921.7.20) 328
440. 종로서에 시국범인 체포, 상해 가정부와 연락되는 ○○○○단의 수령 (『조선일보』 1921.7.21) 328
441. 동경에서 발각된 암살단원 이증임, 보합단에 관련 (『동아일보』 1921.7.21) 329
442. 순사를 총살한 공범, 상해 가정부원 왕익붕은 취조 후에 검사국으로 (『동아일보』 1921.7.22) 329
443. 각종 건물 파괴를 위해 조선에 수입하려던 폭탄 20개와 함께 박용만의 부하 체포, (『동아일보』 1921.7.23) 330
444. 총리 이동휘 체포? 신가파에서 영국관헌에게 잡혔다는 전보 (『매일신보』 1921.7.23) 330
445. 상해와 연락한 부인청년회, 군자금을 모집하여 가정부로 보내었다 (『매일신보』 1921.7.24) 331
446. 임시정부 외교단원 정악윤 등 3명 종로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1.7.25) 331
447. 가정부의 시찰원 조선사정을 시찰키 위해 전도사로 꾸미고 각처로 다녀 (『동아일보』 1921.7.25) 332
448. 시내 모처 대경계, 상해가정부에서 독립공채를 가지고 온 상해임시정부특파원 1명은 체포 (『동아일보』 1921.7.25) 332
449. 가정부 간부 비밀회의, 이번은 폭탄을 만들기로 계획 (『매일신보』 1921.7.25) 333
450. 상해 가정부 특파원 2명의 요구에 현금 59원 제공 (『조선일보』 1921.7.27) 333
451. 종로경찰서의 고등·사법형사들이 철야 수색 (『조선일보』 1921.7.27) 334
452. 내선 중국인의 내란죄 예비죄는 증거불충분과 상해임시정부와 관계가 없어서 방면 (『매일신보』 1921.7.27)[원문불량;p.261] 334
453. 연통제를 부활하고자 하다가 종로서에 검거 (『조선일보』 1921.7.28) 335
454. 가정부원이라 빙자하고 도처에서 공갈 탈취 (『매일신보』 1921.7.29) 335
455. 상해가정부원의 독립신문 재계획, 목하 불국 관헌과 협의 중이나 아직 결정 못해 (『조선일보』 1921.7.30) 336
456. 상해 독립신문 재간 운동, 이동휘 일파 불국 관헌에 운동 중 (『매일신보』 1921.7.30) 336
457. 이동휘 체포 허설, 잡힌 자는 멀정한 딴 사람이고 이동휘는 불란서에 상륙 (『동아일보』 1921.8.2) 337
458. 가정부원 4명 경찰부에 체포 (『조선일보』 1921.8.4) 337
459. 시국표방 강도, 돈 천원을 제공치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매일신보』 1921.8.4) 338
460. 불변단과 철혈단, 종로서에서 잡은 이영선은 상해불변단원이라고 (『매일신보』 1921.8.5) 339
461. 권총으로 면장을 중상케 하고 공금 강탈한 청년단원의 판결 (『매일신보』 1921.8.8) 340
462. 요새 새로히 원조금 모집국이 생기었다고 해 (『매일신보』 1921.8.9) 341
463. 국민회와 향촌회원, 독립신문을 배부하고 불온사상을 선전 중 발각 (『매일신보』 1921.8.9) 341
464. 상해 최근 상황, 상해에서 이번 들어온 장영한씨 담화 (『매일신보』 1921.8.10) 342
465. 숭의단 판결 언도(사형 1명, 무기징역 2명, 기타 징역)에 불복 공소 (『매일신보』 1921.8.11) 343
466. 상해 가정부운동, 태평양회의를 기회로 조선의 독립을 획득 (『조선일보』 1921.8.13) 345
467. 독립당들이 화성돈회의에 조선독립을 얻고자 운동 전개 (『동아일보』 1921.8.13) 345
468. 강도단 권총을 가지고 다니며 재물을 다수 강탈 (『매일신보』 1921.8.19) 346
469. 가정부특파의 군자금모집원 최익한은 중역을 받았으나 불복 (『조선일보』 1921.8.22) 347
470. 중학동에 복면강도, 자칭 가정부원이라 하고 군자금 1만원을 내라고 (『매일신보』 1921.8.24) 348
471. 군자모집 여자 지정신 공판. 판결은 금일 (『조선일보』 1921.8.25) 348
472. 여자독립당 지정신, 상해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채증권분배사건 해주에서 공판 (『동아일보』 1921.8.25) 349
473. 법정에 묘령 여자, 징역 1년의 구형을 받고 쇠수갑 채인 채 감옥으로 (『매일신보』 1921.8.25) 350
474. 불온문서 배부, 수십장으로 군자금 강청 (『매일신보』 1921.8.25) 350
475. 소위 가정부원 김희선 상경, 군무차장이라는 것은 전혀 풍설임 (『매일신보』 1921.8.26) 351
476. 시국의 주의인물 김의선 문사에 입항, 평양으로 돌아오던 중 배안에서 취조 받아 (『조선일보』 1921.8.27) 351
477. 긴장한 경찰 활동, 종로경찰서에서 임시정부와 기맥을 통하여 일을 도모하던 청년 여러명 검거 (『동아일보』 1921.8.27) 352
478. 부산에 하륙한 김희선, 상해가정부 군무차장 김희선과 문답한 말 (『매일신보』 1921.8.27) 353
479. 또 다시 불온문서 수일 전에 경성에 들어왔다고 (『매일신보』 1921.8.27) 354
480. 군정서의 명령서를 게시판에 붙여서 선동한 조인원 공판 (『매일신보』 1921.8.27) 354
481. 독립공채를 매각한 지정신·황학소·김봉우·이경호·민관식 판결 (『동아일보』 1921.8.28) 355
482. 해주지방법원에서 지정신 일파 언도 (『조선일보』 1921.8.29) 355
483. 상해 가정부원 박승래는 군자금 모집하다 검거, 중역 판결 (『조선일보』 1921.8.30) 356
484. 1만5천원을 강탈했다는 상해가정부원 윤홍선의 공판 (『동아일보』 1921.8.31) 356
485. 군자금 모집 중 체포된 정락윤 방효상 김충희는 가정부원으로 (『조선일보』 1921.9.5) 357
486. 상해 임시정부의 두목들, 만주·로령에 있는 조선독립단들과 연락 운동설 (『동아일보』 1921.9.5) 357
487. 상해 가정부 육군학생 귀성 중에 체포. 김란섭 이창실은 군수살해사건 관련 (『조선일보』 1921.9.9) 358
488. 상해 임시정부와의 연락으로 주목을 받던 기로덕, 담양서에 잡혀 취조268 (『동아일보』 1921.9.9) 358
489. 안경신의 공판 연기 (『매일신보』 1921.9.10) 359
490. 가정부 특파원. 종로서의 활동으로 자지동에서 체포 (『조선일보』 1921.9.12) 359
491. 창신동에 강도 출현, 5명의 강도가 나타나서 상해 가정부원이라고 하여 (『매일신보』 1921.9.13) 360
492. 정의단 1심 공판, 검사는 13년 구형 (『매일신보』 1921.9.14) 360
493. 남대문 역두에서 일본 문사로 가던 상해 가정부 간부 여운형의 친동생 여운홍을 체포 취조 중 (『조선일보』 1921.9.20) 361
494. 중국 옷을 입은 상해임시정부 임원 여운홍, 18일 아침 남문역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1.9.20) 361
495. 여운형 친동생 체포, 어제 아침 남대문역에서 차에 내리다가 피체 (『매일신보』 1921.9.20) 362
496. 2명의 가정부원. 무슨 중대한 목적으로 일본에 (『조선일보』 1921.9.23) 362
497. 보통여객에 대한 불법신문을 당한 임청길은 냉소, 관헌은 동경에서 가정부 활동 예정으로 추측 (『조선일보』 1921.9.25) 363
498. 회녕을 중심으로 한 조선독립단사건(1). 정조용 외 19명 예심 종결, 상해가정부와 기맥을 통해 조선내 독립기관 설립 (『조선일보』 1921.9.25) 364
499. 회녕 폭탄범 예심 종결, 일파 20명을 청진지청 공판에 (『매일신보』 1921.9.25) 365
500. 회녕을 중심으로 한 조선독립단사건(2), 정조용 외 19명 예심 종결 (『조선일보』 1921.9.26) 366
501. 회녕 폭탄범 예심 종결, 일파 20명을 청진지청 공판에 (『매일신보』 1921.9.26) 367
502. 검사국에 송치될 여운홍, 가정부 내막도 자세히 알 수 있을 듯 (『매일신보』 1921.9.28) 368
503. 상해 가정부와 연락하여 공채를 모집코저 공갈, 경성지방법원에서 불일간 공판 (『매일신보』 1921.9.28) 369
504. 암살단원 공판, 임종상의 집에 가서 2천원을 강탈한 자 (『매일신보』 1921.10.1) 370
505. 수상한 청년 3명, 경남산청군에서 가정부원 육혈포로 순사를 쏘고 도주 (『동아일보』 1921.10.2) 370
506. 산청지방에 상해 임시정부원으로 군자금모집하던 2명의 독립단과 순사 충돌 (『동아일보』 1921.10.3) 371
507. 암살을 빙자하고 강청, 강탈한 만원 가까이 되는 군자금을 각처에 증수 (『매일신보』 1921.10.3) 371
508.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공채를 발매하던 민관식·지정신·감봉우·이경호 등 4명은 공소 (『동아일보』 1921.10.4) 372
509. 호랑이굴 내의 모험단, 군자금을 모집해 상해 임시정부에 보낸 안국정 등 대한청년단원 19명의 공판 (『동아일보』 1921.10.5) 373
510. 전 가정부원 이항진, 부산서 취조 받고 무사히 방환되어 (『매일신보』 1921.10.6) 374
511. 서대문서에 체포된 4명의 범인은 가정부원이라며 시내에서 금전 강탈 (『동아일보』 1921.10.10) 374
512. 군자금으로 6천원을 절취한 장덕하, 워싱턴회의에 대표자를 파견코자 운동비 모집중 경도에서 잡혀 (『동아일보』 1921.10.13) 375
513. 태평양회 미위원에 조선독립운동 (『동아일보』 1921.10.13) 375
514. 상해 가정부원 김동필이 경산 이치규를 3차나 방문하고 군자를 청구, 범인을 수색 중 (『동아일보』 1921.10.17) 376
515. 이봉하씨 만기 출옥, 상해 임시정부의 시정기념축하를 위해 민중을 선동하고 애국단을 조직한 사건 (『동아일보』 1921.10.17) 376
516. 상해 임시정부 파견원이라 칭하고 군자금모집하던 민충기 체포 (『동아일보』 1921.10.18) 377
517.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낸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던 독립진명단원 차경근 만기 출옥 (『동아일보』 1921.10.22) 377
518. 자칭 가정부특파원이라고 군자금을 모집한 양한위는 검사국에 넘기어 (『동아일보』 1921.10.25) 378
519. 대한군정서암살단사건 공판 제2일, 임시정부를 축하코자 경성에 온 명제세, 30만장 불온문서의 사실 (『동아일보』 1921.10.28) 379
520. 독립자유회사건, 유영규 등 4명의 첫 번 공판 (『동아일보』 1921.10.28) 380
521. 이두흥을 체포,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하다가 조선으로 오는 길에 (『동아일보』 1921.11.5) 381
522. 가정부 참의 이두흥 체포, 압록강 철교를 지나가는 것을 잡아 취조 중 (『매일신보』 1921.11.5) 381
523. 상해 임시정부에서 적화운동 자금을 받았다는 평전진이는 3일 장기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1.11.8) 382
524. 동경유학생과 무슨 일을 하고자 상해가정부 밀사라는 조선인 체포 (『동아일보』 1921.11.11) 382
525. 동경에 가정부 밀사 (『매일신보』 1921.11.11) 383
526. 김동순과 불변단장 명제세 등 암살단 판결 언도 (『조선일보』 1921.11.16) 383
527. 워싱턴회의에 대하여 운동을 일으키려던 상해가정부 밀사 최모, 신호 경찰에 체포 (『동아일보』 1921.11.16) 384
528. 인구세로 4만원을 가정부에 보낸 박의식·계용수·김진기·김상련 등 10명 공소 제기 (『동아일보』 1921.11.17) 384
529. 문사에 또 다시 주의 인물, 가정부지방국장이라 하는 최동오 (『동아일보』 1921.11.18) 385
530. 대판서에 중대범. 전국 각 서에 체포명령 발하였던 임시정부원 김희 (『조선일보』 1921.11.19) 386
531. 의문의 청년 김홍선 취운정 내에서 검거, 상해 가정부와 관련된 듯 (『조선일보』 1921.11.21) 386
532. 청진경찰서에 체포된 가정부 해삼위특파원, 군자금 모집코자 특파되었다가 잡혀 (『조선일보』 1921.11.22) 387
533. 최동오씨 귀경 (『조선일보』 1921.11.22) 387
534. 주의 중의 상해 가정부 지방국장 최동오, 조선으로 호송되어 (『동아일보』 1921.11.22) 388
535. 상해 가정부 지방국장 최동오씨 방면 (『동아일보』 1921.11.23) 388
536. 조선독립단 운산피단을 설립하고 군자금을 모집, 상해 가정부에서 보낸 김왕성 등 8명의 공판은 불일간 (『동아일보』 1921.11.28) 389
537. 의군단과 구국단, 이억준·석기호·이응수는 사형, 4명은 징역 10년 모두 불복 (『조선일보』 1921.11.30) 390
538. 가정부 모금원 변응찬과 전기국은 군자금모집 중 체포 (『조선일보』 1921.12.5) 390
539. 임시정부대통령의 포고문 등을 배포하고 군자금을 다수 모집한 광복단 (이경식·김홍식·이형련·김치성·김찬종·이세일) 공소 (『동아일보』 1921.12.6) 391
540.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로 영국인 제엘 쇼에게 임시정부에서 훈장을 주어 (『조선일보』 1921.12.6) 392
541. 사회주의자를 선동해 조선독립의 목적을 관철하고자 군자금을 모집하다 발각 체포된 남대관·최승달 등의 공소 기각 (『동아일보』 1921.12.10) 392
542. 조선 임시정부 교통지국을 설치하였던 강석춘씨 만기 출옥 (『동아일보』 1921.12.13) 393
543. 공금을 임시정부에 바친 면서기 양희제의 공소공판 (『동아일보』 1921.12.16) 393
544. 의주 부호 최홍모 형제 피체, 상해 임시정부 군자청구서를 당국에 제출하지 아니한 혐의로 (『동아일보』 1921.12.17) 394
545. 군자금을 대한민국 가정부에 보낸 평양총관 김찬종 등 공판 예정 (『동아일보』 1921.12.18) 394
546. 상해 임시정부원이라고 하면서 군자금을 강탈한 전주경 체포 (『동아일보』 1921.12.21) 395
547. 상해에서 온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인 이명용 아들과 일행 5명은 문사에서 조선으로 (『동아일보』 1921.12.27) 395
548. 독립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부한 사건으로 검거되었던 최대용·김태균·도명수 3씨의 만기 출옥 (『동아일보』 1921.12.28) 396
549. 상해 임시정부 법무총장 신규식씨의 아우 신건식씨 체포 (『동아일보』 1921.12.31) 396
550. 신호에서 상해로 간 러시아 사람이 가정부의 관계자인가. (『동아일보』 1922.1.11) 397
551. 임시정부 재무총장의 명령으로 군자금을 모집한 홍완기 등 1심 판결을 불복하고 공소 (『동아일보』 1922.1.13) 397
552. 상해 가정부에서 온 모씨, 의주서에 체포되어 취조 중 (『동아일보』 1922.1.19) 398
553. 상해 임시정부에서 왔다고 군자금을 청구한 박용봉을 체포 (『동아일보』 1922.1.21) 398
554. 임시정부 지방총무 김○○ 체포, 의주 구룡포에서 (『동아일보』 1922.1.21) 399
555. 이중혁 윤철 등 「로농정부」사건 개정 (『동아일보』 1922.1.24) 399
556. 이탁과 장덕진을 체포하려는 탐정을 총살하라고 상해가정부 윤덕보에게 명령 (『동아일보』 1922.1.28) 400
557. 고려공산당 수령 류동설 등 상해 가정부를 방문 (『동아일보』 1922.2.4) 400
558. 군자금 모집하던 평남도 독판 이덕환씨 출옥 (『동아일보』 1922.2.4) 401
559. 가정부에서 군자금 30만원을 「치타」에서 차용키로 협의 (『동아일보』 1922.2.8) 401
560. 가정부를 표방한 강도단이 군산에 출몰한다는 소식 (『매일신보』 1922.2.9) 402
561. 군자금모집을 위해 육혈포로 위협하고 강탈한 이득원을 체포 (『동아일보』 1922.2.26) 402
562. 구국단을 조직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낸 윤철 등 8명의 공판 (『동아일보』 1922.3.15) 403
563. 상해가정부 명령으로 군자금을 모집코자 돌아오던 황덕환은 부산에서 발각 체포 (『동아일보』 1922.3.16) 404
564. 가정부와 연락 여부, 장응규가 내왕한 사건과 우리견 등 공판 속기 (『동아일보』 1922.3.18) 405
565. 상해가정부의 이면, 돈 보내는 길이 끊어져 지금은 매우 곤궁해 (『매일신보』 1922.3.23) 406
566. 상해가정부원으로 강서군수 최응두에게 사직을 권고하였던 김일선씨 출옥 (『동아일보』 1922.3.27) 406
567. 6천원을 가정부로 보낸 광복회사건, 오후 계속 공판 (『매일신보』 1922.3.27) 407
568. 조선인공산당원의 전중대장 저격사건에 대해 가정부는 절대 무관계임을 성명 (『동아일보』 1922.4.7) 408
569. 군자금 3천원을 내놓으라고 육혈포로 위협한 정인옥·김진규·김제락 3명의 강도, 봉화서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2.4.11) 408
570. 자칭 가정부원 3명 체포 (『매일신보』 1922.4.19) 409
571. 상해에서 밀탐 3명을 총살하고 이번 폭탄대로 들어온 구세오는 강서서에 체포 취조 중 (『동아일보』 1922.4.28) 409
572. 상해 가정부의 밀사 최용동, 적화선전을 위해 횡빈에 상륙 (『동아일보』 1922.5.30) 410
573. 가정부밀사 최용동 (『매일신보』 1922.5.30) 410
574. 선원이 중대범인? 총독부의 통지로 하관에서 최희조라는 선원을 조사 중 (『동아일보』 1922.6.1) 411
575. 독립재정수입단, 청양에서 취조 후 가정부 한응식·홍우범 2명은 공주 검사국에 압송 (『동아일보』 1922.6.7) 411
576. 가정부의 밀사 류모가 공채권을 가지고 장기에 (『동아일보』 1922.6.8) 412
577. 8백여원의 군자금을 상해가정부로 송부하고 맹산의 모험단을 원조한 장원보는 덕천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2.6.14) 412
578. 횡빈에 가정부밀사 한모 등 10여명이 잠입하였다고 (『동아일보』 1922.6.25) 413
579. 신호에 가정부밀사 전라남도 출생 박성두 체포 (『동아일보』 1922.7.6) 413
580. 가정부와 연락한 이열호 등 2명에게 징역 (『매일신보』 1922.7.12) 414
581. 조선독립 사상을 선전하고 군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 보낸 김진준은 징역 10년 (『동아일보』 1922.7.17) 414
582. 상해 임시정부로 가서 독립신문사에서 일하며 여러 활동을 한 이원열씨 출옥 (『매일신보』 1922.8.8) 415
583. 상해 가정부 양파 분립 (『매일신보』 1922.8.12) 415
584. 상해 임시정부의 모사건으로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신음하던 안우선·정태영 가출옥 (『동아일보』 1922.8.19) 416
585. 매약상이 상해 가정부원이라 하며 강도, 2명은 공판에 부쳐 (『동아일보』 1922.9.2) 416
586. 상해 임시정부 국민대회는 연기된 듯, 10월 상순경에 개회되리라고 (『동아일보』 1922.9.15) 417
587. 부천의 자칭 가정부원, 재산가를 협박하여 현금 1만원 제공하라고 (『매일신보』 1922.10.1) 418
588. 상해 가정부의 소위 차관사건의 진상(1) (『매일신보』 1922.10.13) 419
589. 상해 가정부의 소위 차관사건의 진상(2) (『매일신보』 1922.10.14) 420
590. 상해 임시정부의 상벌령(일본 관헌과 전사하면 일등상, 싸우다가 달아난 자는 사형) (『동아일보』 1922.10.15) 421
591. 상해 가정부의 소위 차관사건의 진상(3) (『매일신보』 1922.10.15) 421
592. 상해 가정부의 소위 차관사건의 진상(4) (『매일신보』 1922.10.16) 422
593. 임시정부 이전설, 일본군대 탈퇴후 「니」시로 옮겨가기로 하였다는 보도 (『동아일보』 1922.11.2) 422
594. 임시정부 이전설은 풍설, 노백린씨의 말 (『동아일보』 1922.11.8) 423
595.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재필 박사를 국제연맹회 조선대표로 참가하기를 교섭 (『동아일보』 1922.11.22) 423
596. 김익상의 사형에 대하여 외무대신에 상해가정부의 항의 (『동아일보』 1922.11.24) 424
597. 이규형은 액면 약 2만원 독립공채를 가지고 독립자금을 모집하려다가 발각되어 체포 (『조선일보』 1922.12.3) 424
598. 상해 법조계에서 김명주 참사의 원인과 범인은 아직도 불명, 임시정부 경무국에서 염탐 (『조선일보』 1922.12.11) 425
599. 국민대표회의 소식, 회의는 극비밀 (『조선일보』 1922.12.11) 425
600. 국민대표 착착 회집하는 중 (『조선일보』 1922.12.11) 426
601. 독립신문 기본금 모집 (『조선일보』 1922.12.11) 426
602. 최근의 가정부 재정 궁핍 (『매일신보』 1922.12.12) 427
603. 상해가정부 최근 상황, 돈이 없어서 어려운 모양 (『매일신보』 1922.12.13) 427
604. 정치범 4인 가출옥으로 방면: 대한애국부인회사건의 김성심·상해가정부결사대 박봉암·조선독립운동사건의 김윤서·장영수 (『동아일보』 1922.12.18) 428
605. 상해 임시정부에서 해마다 「대한민력」 인쇄하여 해외동포에게 반포 (『조선일보』 1922.12.23) 428
606. 국민대표 속속 상해 도착 (『조선일보』 1922.12.23) 429
607. 고려노동회의 활동, 상해임시정부의 승락을 청하여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조선일보』 1923.1.3) 429
608. 국민대표회의 정식회의를 불원간 개최 (『조선일보』 1923.1.3) 430
609. 임시정부를 절대 옹호, 국민대표 비공식 비밀회의에서 (『조선일보』 1923.1.3) 430
610. 상해의 망년회 (『조선일보』 1923.1.3) 431
611. 임시정부의 신년축하 (『조선일보』 1923.1.3) 431
612. 상해 조선인 임시대회 (『조선일보』 1923.1.3) 432
613. 신년 벽두에 협박, 장교정에서 권총 가진 2명이 상해임시정부원이라고 군자금 요구 (『동아일보』 1923.1.3) 432
614. 임시정부의 협의. 30여 명이 모여 국민대표회의 토론 (『조선일보』 1923.1.8) 433
615. 국민대표 선거를 협의 (『조선일보』 1923.1.8) 433
616. 임시정부의 시국회의, 지나간 6일부터 계속 회의 (『조선일보』 1923.1.17) 434
617. 대표회의의 방청문제, 절대 비밀로 방청 불허 (『조선일보』 1923.1.17) 434
618. 임시대통령령으로 임시정부의 의회 소집 발포. 오는 2월 15일에 제11회 임시 의정원 의회 (『조선일보』 1923.1.17) 435
619. 비밀결사의 적기단의 명칭과 주의는 공산당과 흡사, 실상은 조선독립당의 한 별동대 (『조선일보』 1923.1.20) 435
620. 새로 도착한 국민 각 대표 (『조선일보』 1923.1.20) 436
621. 국민대표 제3회 개최 (『조선일보』 1923.1.20) 436
622. 총관소의 신조직. 임원은 전부 연임되어 (『조선일보』 1923.1.22) 437
623. 임시정부 인구세 징수 (『조선일보』 1923.1.23) 437
624. 국민대표회의의 여비, 조선 내의 부호가 기부 (『조선일보』 1923.1.23) 438
625. 노농정부대표 「요페」씨 상해 「팔네쓰」여관에 체재 중, 여운형씨와 비밀 담화 (『조선일보』 1923.1.29) 438
626. 국민회의의 의장 개선 (『조선일보』 1923.1.29) 439
627. 로령대표의 밀의. 임시정부의 신직원을 추천하려는 예비회의 (『조선일보』 1923.1.30) 439
628. 안창호씨는 사면, 상해 국민대표회의 소식 (『동아일보』 1923.1.31) 440
629. 상해에 개최되는 국민대표회의 규정 (『조선일보』 1923.2.4) 441
630. 국민대표회의(1) (『조선일보』 1923.2.5) 442
631. 국민대표회의(2) (『조선일보』 1923.2.6) 443
632. 국민대표회 정식 개회, 2월 31일 하오 2시 상해 모처에서 (『동아일보』 1923.2.6) 444
633. 국민대표회의(3) (『조선일보』 1923.2.8) 445
634. 임시의회 소집과 모모 유지의 통일운동, 국민대표회안에 2가지 의견 (『동아일보』 1923.2.8) 446
635. 국민대표회의(4) (『조선일보』 1923.2.9) 447
636. 국민회의와 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에서 제1차로 임시정부 개조 문제를 토의 중 (『조선일보』 1923.2.10) 448
637. 여씨의 출마, 국민대표회의에 출석 (『조선일보』 1923.2.10) 448
638. 교회 기부를 강청, 독립을 빙자하고 가정부에 보낸다고 기부 모집 (『동아일보』 1923.2.12) 449
639. 서대문서 중대범인. 사실을 극히 비밀에 부치는 중이나 임시정부의 특파원이라고 (『조선일보』 1923.2.16) 449
640. 독립 공채 모집의 사건.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종결, 강철구 등 7명은 공판에 (『조선일보』 1923.2.16) 450
641. 방청허가 통과, 상해에 개최된 국민대표회에서 (『동아일보』 1923.2.17) 451
642. 해외 각 단체의 경고서. 임시정부를 절대로 옹호하여 독립사업의 대방침을 세워 (『조선일보』 1923.2.19) 451
643. 국민대표회의 (5) (『조선일보』 1923.2.19) 452
644. 평양에 폭탄협박사건. 상해 임시정부 출장원이라고 경찰당국에서는 수색에 노력 (『조선일보』 1923.2.20) 453
645. 이승만 박사의 동정 (『조선일보』 1923.2.20) 453
646. 새로 도착한 국민대표, 백명이나 된다고 (『조선일보』 1923.2.20) 454
647. 임시정부 이전 계획. 각 단체의 수령들이 회의하고 임시정부를 함부로 이전코자 (『조선일보』 1923.2.25) 454
648. 임시의정원의 개원식. 지난 15일 임시정부 정청에서 (『조선일보』 1923.2.26) 455
649. 의정원 대의사, 의장이 공문을 발하여 보결 선거 (『조선일보』 1923.3.6) 455
650. 국민대표회의(6) (『조선일보』 1923.3.7) 456
651. 국민대표회의(7) (『조선일보』 1923.3.8) 457
652. 상해국민회의의 의사 내용, 1월 초순경부터 상해에 열린 국민대표회의 (『동아일보』 1923.3.8) 458
653. 임시정부 신임, 오래 동안 문제되는 일을 최근 대표회의에서 결의 (『동아일보』 1923.3.14) 459
654. 한국로병회의 간부들이 요사이에는 임시정부와 기타 방면에 활동 중 (『조선일보』 1923.3.18) 459
655. 국민대표회의의 새로 도착한 대표 또 10명이 증가 (『조선일보』 1923.3.18) 460
656. 국민대표 총수가 124인 (『조선일보』 1923.3.18) 460
657. 국민대표회의 (8) (『조선일보』 1923.3.18) 461
658. 상해 국민대표회 의사 기록, 각지 사정을 보고 (『동아일보』 1923.3.18) 462
659. 국민대표회의(9) (『조선일보』 1923.3.19) 463
660. 국민대표회의 의사 속보, 각성한 대표 제씨의 열변 (『동아일보』 1923.3.26) 464
661. 자칭 상해가정부 특파원 이원우 음식점에서 잡혀 (『동아일보』 1923.3.27) 465
662. 국민대표회의(10) (『조선일보』 1923.3.28) 466
663. 상해가정부 총리 노백린씨 친일파 박멸을 역설 (『동아일보』 1923.3.29) 467
664. 대한독립공채 모집 사건의 검사 구형 (『조선일보』 1923.3.30) 467
665. 대한독립공채 모집 사건, 강철구 일파의 공판 (『조선일보』 1923.3.30) 468
666. 국민대표회의 일대 난관, 정부를 인정할까 신설할까 (『동아일보』 1923.3.31) 469
667. 국민대표회의(11) (『조선일보』 1923.4.2) 470
668. 임시정부 문제로 휴회된 국민대표회는 비공식으로 개회 (『동아일보』 1923.4.8) 471
669. 각 독립단 수령이 협의하여 군사관계자는 로령이 근거, 상해임시정부에서도 매우 찬동 (『조선일보』 1923.4.13) 471
670. 임시의정원 의장 경질, 한국로병회 교육부장 윤기섭씨로 (『조선일보』 1923.4.17) 472
671. 임시정부의정원 의원 보결 (『조선일보』 1923.4.17) 472
672. 국민대표회의 비공식회 (『조선일보』 1923.4.17) 473
673. 상해에도 비밀출판물, 국민대표회의가 분열되는 책임도 임시정부 옹호자에게 돌려 (『조선일보』 1923.4.17) 473
674. 국민대표회의(12) (『조선일보』 1923.4.18) 474
675. 국민대표회의(13) (『조선일보』 1923.4.19) 475
676. 임시정부 존속 문제. 국민대표회의서 계속 존속시키기로 낙착 (『조선일보』 1923.4.20) 476
677. 시내에 협박장이 유행. 조덕인씨에게 자기는 임시정부 수금 위원이라며 50만원 청구 (『조선일보』 1923.4.21) 476
678. 정부문제는 보류, 국민대표회는 11일부터 계속 (『동아일보』 1923.4.23) 477
679. 상해 임시의정원에서 시국문제 토의 (『조선일보』 1923.4.24) 477
680. 정부 옹호의 삼삼회의. 각 대표의 의견 통일을 위한 문제 해결이 유망 (『조선일보』 1923.4.24) 478
681. 유명무실한 가정부 (『매일신보』 1923.4.26) 478
682. 의정원에서 쇄신안 통과. 국세와 제반 복잡함을 보아 장래 국면을 일신하자고 결의 (『조선일보』 1923.4.27) 479
683. 국민대표회의 분과회의의 군사재정에 관한 토의 (『조선일보』 1923.4.27) 479
684. 임시정부원이라고 군자모집하던 광양군의 3명 청년 체포 (『조선일보』 1923.4.28) 480
685. 임시정부의 건립 기념 행사. 일본에 있는 조선인이 계획 중 (『조선일보』 1923.4.30) 480
686. 협잡 군자모집 폐단 일소를 위한 군사방침 의결 (『동아일보』 1923.5.1) 481
687. 기짜 폭탄으로 위협한 범인 인사동에서 체포, 임시정부원이라고 돈을 청구 (『조선일보』 1923.5.2) 481
688. 상해가정부원이라 자칭하고 가폭탄으로 부호 협박한 범인 경찰부에 잡혀 (『동아일보』 1923.5.2) 482
689. 국민대표 여운형·정광호·김상덕 의정원 의원 겸임 (『조선일보』 1923.5.5) 482
690. 국민대표회의 군사의안 제1조 통과 (『조선일보』 1923.5.5) 483
691. 「태평양잡지」 속간. 임시정부구미위원부에서 발간하는 잡지로 하와이에서 발행 (『조선일보』 1923.5.9) 483
692. 의정원의원 문제. 국민대표회의 석상에서 국민대표로 의원이 된 것이 민의에 위반 여부 (『조선일보』 1923.5.14) 484
693. 의정원 특별위원회에서 대국 쇄신의 실행안 제의 (『조선일보』 1923.5.17) 484
694. 임시정부의 태도, 대표회의에 대하여 원만한 해결을 주장 (『조선일보』 1923.5.17) 485
695. 국민대표회의의 진행, 임시정부 문제가 재기할 터 (『조선일보』 1923.5.17) 485
696. 상해 국민대표회의 군사상 결정, 18세 이상은 다 군대에 (『동아일보』 1923.5.17) 486
697. 국민대표회의(14) (『조선일보』 1923.5.18) 487
698. 국민대표회의(15) (『조선일보』 1923.5.19) 488
699. 상해 임시정부 교통부 관련 인천 중대사건의 전말 (『조선일보』 1923.5.20) 489
700. 인천을 중심으로 한 중대사건의 진상 (『동아일보』 1923.5.20) 490
701. 김봉흡씨의 회갑연,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중국 영사까지 다수 초대 (『조선일보』 1923.5.21) 491
702. 국민대표회의 대방침의 토의 완료 (『조선일보』 1923.5.21) 491
703. 의정원의 권도문제,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와 타협하자는 양보책이 노백린씨의 반대로 무효 (『조선일보』 1923.5.21) 492
704. 노백린씨가 국민대표회의에 포고문을 발표 (『조선일보』 1923.5.22) 492
705. 재미동포도 정부 신임 (『조선일보』 1923.5.22) 493
706. 의정원 의원이 직권을 포기함은 임시헌법에 위반이라는 조완구씨의 경고 (『조선일보』 1923.5.22) 493
707. 각 단체에서 임시정부를 옹호하여야 한다는 간도 동포의 경고 답지, (『조선일보』 1923.5.22) 494
708. 애국부인회 대표 김마리아양 정부파괴주의를 논책 (『조선일보』 1923.5.22) 494
709. 20만원 차관금 문제, 한형권씨가 임시정부에 납입하지 않는다고 일반이 주목 중 (『조선일보』 1923.5.23) 495
710. 김진우씨 출옥, 임시의정원 의원이라고 철창생활 (『조선일보』 1923.5.23) 495
711. 임시정부 옹호파와 파괴파의 타협은 절망이 되고만 모양 (『조선일보』 1923.5.25) 496
712. 상해 국민대표회의에서 생활문제 결의, 민족적 자작자급을 원칙으로 (『동아일보』 1923.5.25) 496
713. 국민대표회의가 파열된 이후에 법통옹호파와 자주 회의 개최 (『조선일보』 1923.5.27) 497
714. 해주형무소 서흥분소의 절식 동맹. 상해임시정부의 창립기념일에 (『조선일보』 1923.5.27) 497
715. 유길정무총감 상해 임시정부 암살단이 잠입했다는 소문에 국경 시찰 중지 (『조선일보』 1923.5.29) 498
716. 대표회의의 재개 유망 (『조선일보』 1923.5.29) 498
717. 임시정부 이전의 전설, 해삼위로 옮기고 고려공산당총부라고 개칭하고자 (『조선일보』 1923.5.30) 499
718. 고려공산당 총부가 로농정부에 제출한 조건, 조선가정부를 해삼위로 이전 승인 요구 (『동아일보』 1923.5.30) 499
719. 임정발씨 출옥, 연통제 사건으로 2년간 철창 생활 (『조선일보』 1923.6.3) 500
720. 임시정부 의정원 상설기관으로 정무연구위원회 신설 (『동아일보』 1923.6.6) 500
721. 고성락일의 가정부 (『매일신보』 1923.6.6) 501
722. 하와이 동포의 격문 상해 도착 (『조선일보』 1923.6.7) 502
723. 국민대표회의의 계속 (『조선일보』 1923.6.7) 502
724. 도주한 가정부감찰원 수배 중, 고려공산당도 침입하였다고 (『매일신보』 1923.6.9) 503
725. 윤해파가 정부를 또 조직 (『조선일보』 1923.6.10) 503
726. 임시정부 이전은 무근, 독립단 측에서는 절대 부인 (『조선일보』 1923.6.10) 504
727. 윤해정부의 해산을 명령하고 윤해에게 사형 선고 (『조선일보』 1923.6.11) 504
728. 임시정부 창조·개조 양파 중요인물회의 (『동아일보』 1923.6.14) 505
729. 토마단의 격고문, 임시정부 반대파를 공격 (『조선일보』 1923.6.16) 505
730. 7반의 암살대를 조직, 상해 임시정부에서 조선에 보내고자 (『조선일보』 1923.6.17) 506
731. 상해임시정부의 돈을 횡령한 한형권은 항주로 (『조선일보』 1923.6.20) 506
732. 서간도 통의부에서 국민대표회에 경고 (『동아일보』 1923.6.21) 507
733. 내무총장 김구씨 명의로 국민대표회 해산 명령 (『조선일보』 1923.6.25) 507
734. 20만원 문제와 풍설 (『조선일보』 1923.6.25) 508
735. 국민대표회 국무위원과 집행위원을 선정하고 창조파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 1923.6.25) 509
736. 대동단결의 실현 가까워, 의정원과 대표회를 해산하고 헌법회의를 조직하자고 (『조선일보』 1923.6.26) 510
737. 헌법회의의 준비회의 (『조선일보』 1923.6.26) 511
738. 윤해·신숙 일파의 죄상을 열거한 국민대표성명서 배포. (『조선일보』 1923.6.26) 512
739. 상해 동포의 대연설회, 시국 문제 해결을 축진 계획 (『조선일보』 1923.6.27) 513
740. 상해 정국과 해외 각국 보도 (『조선일보』 1923.6.27) 513
741. 조화책이 결국 무효 (『조선일보』 1923.6.27) 514
742. 조선내정 조사차 상해 임시정부원 입경설 (『동아일보』 1923.6.27) 514
743. 시국문제를 속히 수습코자 국무원회의 빈번 (『조선일보』 1923.6.30) 515
744. 질서 유지의 회의 (『조선일보』 1923.6.30) 515
745.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윤해 일파를 성토할 목적으로 「상해용언」 간행 (『조선일보』 1923.7.5) 516
746. 독립단 수령의 연서 경고 (『조선일보』 1923.7.5) 516
747. 윤·신 일파의 동정 (『조선일보』 1923.7.5) 517
748. 창조 문제도 낙착, 윤해·신숙이 새로 조직한 정부는 그럭저럭 없어져 (『조선일보』 1923.7.6) 517
749. 여운형씨 상해로 돌아와 (『조선일보』 1923.7.6) 518
750. 가정부파의 아귀화, 그날 그날의 생계가 곤궁하야 (『매일신보』 1923.7.7) 518
751. 임시헌법 수정의 내용, 민의에 맞도록 하고 신진청년만이 선거 (『조선일보』 1923.7.11) 519
752. 임시정부의 헌법 개정, 기초위원 18인을 임명 (『조선일보』 1923.7.13) 519
753. 헌법개정위원회 독립운동단체 대표의 의견을 존중하여 헌법 개정 실행 (『동아일보』 1923.7.15) 520
754. 상해 동포 여론 분분, 내무총장에게 동아일보의 발간 정지 청원 (『조선일보』 1923.7.18) 520
755. 임시정부회의청에 임시헌법 개정위원회를 열고 우선 예비회의로 토의 (『동아일보』 1923.7.20) 521
756. 윤·신 일파는 칠령팔락, 상해 의용청년대에서 암살을 계획 중 (『조선일보』 1923.7.22) 521
757. 시국 표방의 복면강도, 임시정부에서 왔다며 금전 강탈 (『조선일보』 1923.7.23) 522
758. 임시정부 포고문 기초 (『조선일보』 1923.7.27) 522
759. 헌법수정위원회 소식 (『조선일보』 1923.7.27) 523
760. 미국·상해 간에 밀전 빈번, 임시정부 국무원과 이박사 간에 헌법과 후임내각에 대한 일인 듯 (『조선일보』 1923.7.29) 523
761. 의열단장 김원봉의 동정 (『조선일보』 1923.7.29) 524
762. 임시정부의 통신원 신의주에서 체포되어 검사국에 (『조선일보』 1923.7.30) 524
763. 대한의용군의 보고 (『조선일보』 1923.8.3) 525
764. 헌법수정위원회 위원이 전부 출석되면 즉시 복명할 터 (『조선일보』 1923.8.8) 525
765. 광주사건의 후보, 군자금을 모집코자 임시정부로부터 와 있다가 체포 (『조선일보』 1923.8.11) 526
766. 호송 중에 도주한 군자금 모집 임시정부특파원, 4년 만에 서대문서에서 체포, (『조선일보』 1923.8.12) 526
767. 국민협회원의 순회강연에서 동척회사를 찬송을 하고 임시정부를 욕했다고 (『조선일보』 1923.8.14) 527
768. 의열단원 체포와 전설 (『조선일보』 1923.8.15) 527
769. 미국 대통령 하딩씨 서거에 대하여 임시정부에서 미국에 조전 (『조선일보』 1923.8.17) 528
770. 한형권 피살설 (『조선일보』 1923.8.20) 528
771. 임시정부교통부 참사 윤응임, 9월 18일에 공판 (『조선일보』 1923.8.21) 529
772. 미국에서의 공고한 경비 조달로 임시정부 활기 (『조선일보』 1923.8.28) 529
773. 군자모집원 정희택 공소 기각 (『조선일보』 1923.8.28) 530
774. 헌법수정위원의 복명 (『조선일보』 1923.8.28) 530
775. 윤해파 로령에 이거 (『조선일보』 1923.8.28) 531
776. 재미한국인이 상해 임시정부에 매월 5천원씩 경비를 보내게 되었다고 (『동아일보』 1923.8.28) 531
777. 시의정원 헌법수정기초안을 통과하기 위하여 오는 9월 하순경 소집 개회 (『조선일보』 1923.8.29) 532
778. 자칭 임시정부 특파원이 밀양 부호의 집에 들어가서 돈을 달라고 하다가 도망 (『조선일보』 1923.8.29) 532
779. 임정구미위원부에서 조선내 일본인 토지소유 조사 (『조선일보』 1923.9.1) 533
780. 임시정부의 행정기관. 중국령에 완전히 설치 (『조선일보』 1923.9.1) 533
781. 모국 외교에 대한 임시정부 비밀회의 (『조선일보』 1923.9.1) 534
782. 구미원부 정한경 박사의 독립에 관한 연설 (『조선일보』 1923.9.1) 534
783. 외교상 관계로 극비밀리에 남화학원 원장 김규식 로령 출장설 (『조선일보』 1923.9.1) 535
784. 임시정부측에서 중국의원들과 교제하여 독립운동을 선전 (『조선일보』 1923.9.1) 535
785. 상해 임시정부에서 밀정을 체포코자 특별형사를 증모 (『조선일보』 1923.9.1) 536
786. 창조파는 해삼위로 (『조선일보』 1923.9.1) 536
787. 미국 각지에 있는 기관이 다 같이 임시정부를 옹호하여 간다고 (『조선일보』 1923.9.8) 537
788. 임시정부 선전 확장설 (『조선일보』 1923.9.8) 537
789. 손정도씨 밀행. 흥사단 용무를 띠고 상해를 출발 (『조선일보』 1923.9.14) 538
790. 임시정부원이라고 자칭하던 노인, 재판정에서 벌벌 떨며 말도 잘 못해 (『조선일보』 1923.9.18) 538
791. 구미위원부 위원 신형호씨 재미동포를 순회 시찰 (『조선일보』 1923.9.21) 539
792. 마산을 중심으로한 중대음모 발각, 박용만 부하라는 2사람을 종로에서 체포 (『동아일보』 1923.10.2) 539
793. 외교총장 조용은씨의 명의로 산본총리에게 장문의 항의서를 보내어 (『조선일보』 1923.10.4) 540
794. 상해 폭탄사건의 전말 (『조선일보』 1923.10.7) 540
795. 임시정부 교통부원 박기석, 경북경찰부에 피체 (『조선일보』 1923.10.11) 541
796. 간도에 임시정부기관 설비 (『조선일보』 1923.10.21) 541
797. 임시정부에서 인구세 징수 통지서를 발표 (『동아일보』 1923.10.22) 542
798. 상해폭탄사건의 속보 (『조선일보』 1923.10.23) 542
799. 임시정부 지방제 실시(『조선일보』 1923.10.25) 543
800. 이·금 양씨 청진형무소에서 출옥, 연통제사건은 이로 끝나 (『조선일보』 1923.11.9) 543
801. 한형권이 해삼위에서 소비한 곳을 숨기다가 발표하였다는 통신 (『조선일보』 1923.11.14) 544
802. 김구씨의 동정 (『동아일보』 1923.12.21) 544
803. 김구씨 상배 (『동아일보』 1924.1.4) 545
804. 임시의정원 소집, 2월 초순에 소집하기로 예정 (『조선일보』 1924.1.5) 545
805. 임시정부 신년연회 개최 (『조선일보』 1924.1.5) 546
806. 여운형씨의 동정 (『조선일보』 1924.1.5) 546
807. 박용만씨 상해에 오다 (『조선일보』 1924.1.6) 547
808. 어제 새벽 파주에 2명 강도, 자칭 임시정부에서 왔다 표방한 강도로 추측 (『조선일보』 1924.1.12) 547
809. 최여사 장의 (『동아일보』 1924.1.12) 548
810. 가정부원 김모, 시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 (『매일신보』 1924.1.16) 548
811. 상해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을 새로 선정 (『조선일보』 1924.1.17) 549
812. 임시정부 소유의 권총 백정 압수설, 한구에서 천진으로 오는 것을 중국 관헌이 압수 (『동아일보』 1924.1.18) 549
813. 가정부 권총 피탈 (『매일신보』 1924.1.18) 550
814. 임시정부의 엄중 경계, 정청문을 파수하며 모처 밀탐 단속 (『조선일보』 1924.1.20) 550
815. 상해 임시정부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박영석, 중화서에 체포 (『동아일보』 1924.1.20) 551
816. 상해임시의정원 소집, 2월 19일 대통령의 교령으로 (『동아일보』 1924.2.28) 551
817. 이박사는 워싱턴에 무슨 필요한 사무가 있는 듯 (『동아일보』 1924.3.5) 552
818. 각처에 속출하는 강자는 가정부원인가 (『매일신보』 1924.3.6) 552
819. 임시의정원 개막, 2월 29일 상해 법조계에서 (『동아일보』 1924.3.8) 553
820. 상해와 3월1일, 거류 동포들과 임시정부에서 기념식 거행 (『동아일보』 1924.3.10) 554
821. 의원 7명으로 개막한 가정부 의정원 (『매일신보』 1924.3.16) 555
822. 임시의원 경기도대의사에 조완구·엄○○씨로 (『조선일보』 1924.4.2) 555
823. 여운형씨의 활동, 중로회의를 알선코자 북경에 왔다. (『조선일보』 1924.4.2) 556
824. 의정원장 경질, 윤기섭씨가 사직하고 조상섭씨가 피선 (『조선일보』 1924.4.4) 556
825. 임시헌법 초안을 다시 수정한 후에 제출 (『조선일보』 1924.4.4) 557
826. 상해의정원 분과회는 1개월후 (『동아일보』 1924.4.4) 557
827. 헌법문제 비공식으로 토의 후 의정원에 상정할 터 (『조선일보』 1924.4.6) 558
828. 이승만 박사 영국으로 건너갈 계획, 노동당 내각과 악수코자 (『동아일보』 1924.4.6) 558
829. 비도 독립 수령 상해에서 환영회 (『조선일보』 1924.4.14) 559
830. 이동녕씨 내각조직 계획 (『조선일보』 1924.4.18) 559
831. 민정식씨 일행 중 이완, 상해 임시정부에서 퇴거 명령 (『조선일보』 1924.4.22) 560
832. 임시정부에서 내무부령으로 각파 연맹을 토죄 (『조선일보』 1924.4.23) 560
833. 독립군 3명 피살에 대하여 임시정부는 중국에 항의 제출 (『시대일보』 1924.4.24) 561
834.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여 조선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이재연씨 출옥 (『동아일보』 1924.4.30) 562
835. 이동녕씨 총리로 국무원에서 투표 가결, 노백린씨는 군무총장으로 (『동아일보』 1924.4.30) 562
836. 이동녕씨 조각은 불일내에 완성될 듯 (『동아일보』 1924.5.1) 563
837. 임시정부 신내각 조직 (『조선일보』 1924.5.5) 563
838. 이승만씨 도구설, 독일에 체재 (『시대일보』 1924.5.11) 564
839. 임시정부 신내각, 인선을 마치고 불일간 발표될 터 (『조선일보』 1924.5.12) 564
840. 민정식씨 감시설 유행, 임시정부에 자금을 공급할까하는 의심이 있어서 (『조선일보』 1924.5.14) 565
841. 임시의정원의 근황, 헌법개정과 신각원 조직을 토의 (『조선일보』 1924.5.17) 565
842. 임시정부 경무국에 군인 채용 (『시대일보』 1924.5.18) 566
843. 만주 독립군의 선언, 임시정부 기치 하에 대업을 완성하기로 결심하고 대활동 (『조선일보』 1924.5.21) 566
844. 남만독립군은 임시정부의 깃발 아래 대동 단합하기를 선언 (『시대일보』 1924.5.21) 567
845. 임시정부청사 이전 (『조선일보』 1924.5.25) 567
846. 임시정부의 신계획, 독립자금 원조를 로국정부에 교섭 (『동아일보』 1924.5.27) 568
847. 임시정부에서 중국기자 초대, 임시정부 사정을 잘못 보도되지 않게 직접 교제 (『시대일보』 1924.6.4) 568
848. 임시정부 국면 일신, 노백린씨를 군사참모총장에 (『동아일보』 1924.6.6) 569
849. 3백명이 평북지방 각 군에서 임시정부와 의열단과 연락하여 의용군 대출동 (『조선일보』 1924.6.12) 569
850. 의용군 무기 장비 확장, 임시정부도 무기를 보조하고 군자모집원이 270명 파견 (『시대일보』 1924.6.12) 570
851. 임시정부 각원 겸임 (『시대일보』 1924.6.16) 570
852. 민정식씨는 임시정부에 헌신, 돈 90여만원까지 제공 (『시대일보』 1924.6.17) 571
853. 임시정부의 대동단결을 기약한 간곡한 뜻의 포고문 (『동아일보』 1924.6.18) 571
854. 수원 관공리에게 임시정부 특파원이 서명한 사형선고 전달 (『조선일보』 1924.6.19) 572
855. 청성진주재소 습격범 임시정부특파원 김용복 체포 (『동아일보』 1924.6.20) 572
856. 로국 대표가 상해로 오면 임시정부와 교섭 밀접 (『조선일보』 1924.6.23) 573
857. 미국 배척 책임을 조선인에게 전가, 임시정부구미위원부 반박 성명 (『동아일보』 1924.6.25) 573
858. 천진 흥사단에서 군자 모집 (『시대일보』 1924.6.27) 574
859. 임시의정원 비밀회의 진행 (『조선일보』 1924.6.29) 574
860. 임시정부의 검사원 위원 김철·정광호 임명 (『조선일보』 1924.6.30) 575
861. 임시 대통령 귀임 최촉, 임시헌법 개정 결의 (『조선일보』 1924.7.14) 575
862. 임시정부의 직원 위안회 (『조선일보』 1924.7.20) 576
863. 상해임시정부의 단원으로 수상한 남녀, 신의주경찰서에서 취조 (『동아일보』 1924.7.21) 576
864. 임시정부원이라고 대구 시내에서 군자를 모집 (『조선일보』 1924.8.21) 577
865. 대구에 나타났던 자칭 임시정부원 조치원에서 잡혔다. (『조선일보』 1924.8.25) 577
866. 상해임시정부 의경단원 장덕진군 서거 (『동아일보』 1924.8.28) 578
867. 시카고시에 한인동지회 조직 (『시대일보』 1924.9.9) 579
868. 미국에 있는 이대통령에게 임시정부에서 귀임하라고 전보 (『동아일보』 1924.9.10) 579
869. 이동녕씨가 임시처리. 이승만 박사가 돌아오기를 재촉 (『조선일보』 1924.9.11) 580
870. 임시정부의 독립단대표회의, 금년 12월 안으로 소집 결정 (『동아일보』 1924.9.14) 581
871. 광복군 진흥계획, 군대 모집과 훈련에 노력하여 오패부와 후원대를 조직해 (『시대일보』 1924.9.20) 581
872. 강계에서 체포된 가정부원의 호언 (『매일신보』 1924.9.27) 582
873. 임시정부의 특파원 경성에 잠입 (『조선일보』 1924.9.27) 582
874. 상해의 임시정부 군무총장 대리를 새로 선정 (『조선일보』 1924.10.3) 583
875. 광주서의 돌연 활동, 밤중에 가택을 수색하여 이승호 등 3명을 검거 (『조선일보』 1924.10.7) 583
876. 진주경찰서에서 정준교·이상태씨 검거, 이승호 관련 광주사건 관계인 듯 (『조선일보』 1924.10.8) 584
877. 대관 암살은 허언, 부호를 협박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돈을 보내고자 (『시대일보』 1924.10.9) 584
878. 모스크바에서 상해로 돌아온 이희경·안공근, 로국정부에서는 우리 운동에 극력 응원하겠다고 성명 (『조선일보』 1924.10.10) 585
879. 상해가정부원이라 하며 대동군의 부호에 사형 집행한다고 을러대고 금품을 강탈 (『동아일보』 1924.10.22) 585
880. 상해임시정부의 영수증이 노출돼 (『시대일보』 1924.10.22) 586
881. 임시정부 공채권 백수십장을 진남포에서 발견 (『동아일보』 1924.10.25) 586
882. 상해임시정부 공채증권을 사라고 한 이승호 등은 검사국에 (『조선일보』 1924.10.25) 587
883. 진남포의 중대사건은 임시정부의 채권 (『시대일보』 1924.10.25) 587
884. 비밀결사의 비용에 쓰고자 애처를 창기로 팔은 내집당 사건 (『시대일보』 1924.10.29) 588
885. 통의부원과 임시정부원 입경설 (『조선일보』 1924.10.31) 589
886. 임시정부원이라는 2명이 면장을 협박한 사건, 장성서 철야 활동. (『조선일보』 1924.11.2) 589
887. 미국에 있는 구미부의 위원장에 남궁렴, 신형호와 허정을 새 위원으로, 서재필씨는 고문으로 (『조선일보』 1924.11.8) 590
888. 간도에서 체포된 상해임시정부원 전태임, 1심 7년을 불복 공소 (『동아일보』 1924.12.1) 590
889. 상해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활동 정보를 들은 경무당국 경계 (『동아일보』 1924.12.6) 591
890. 상해의 독립신문, 신임 사장 박은식 피임 (『동아일보』 1924.12.6) 591
891. 상해에 있는 의정원 선거에서 대통령 대리로 박은식씨 피선 (『조선일보』 1924.12.14) 592
892. 상해 임시정부 자금모집원이라 자처한 청년 2명이 안성에서 현금 19원을 강탈하여 (『조선일보』 1924.12.18) 592
893. 구미위원부의 호외로 경찰 긴장, 압수에 노력하고 우편통신에도 경계 엄중 (『시대일보』 1924.12.23) 593
894. 임사정부의 대통령대리 사직으로 박은식 취임 (『시대일보』 1924.12.24) 593
895. 상해임시정부 국무원 신조직, 제1착으로 임시헌법을 개정 (『동아일보』 1925.1.3) 594
896. 국무원 변경 후에 임시정부헌법 개정 (『동아일보』 1925.1.4) 594
897. 임시정부 특파 5만원 군자모집사건, 샛빨간 거짓말 (『동아일보』 1925.1.7) 595
898. 시내 모 여관을 근거로 전조선에 걸친 군자금 모집 (『시대일보』 1925.1.7) 596
899. 경기도 경찰부 동과장, ○○용무를 띠고서 일본 문사에 출장 (『시대일보』 1925.1.8) 597
900. 단말마에 임한 상해가정부의 운명 (『매일신보』 1925.1.10) 597
901. 일본에서 모 자금조달, 독립단원이 일본 기차 속에서 5만여원을 모아 경성에 보내 (『시대일보』 1925.1.13) 598
902. 일본 회목에서 잡힌 손광진 등 22명,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여 5만여원의 자금을 만들어 (『시대일보』 1925.1.15) 598
903. 정치운동의 유행과 임시정부의 특파 감시 (『동아일보』 1925.1.15) 599
904. 상해의 신년축하 (『조선일보』 1925.1.18) 600
905. 상해 의정원 소집 (『조선일보』 1925.1.24) 600
906. 이광수사건 확대 (『조선일보』 1925.1.29) 601
907. 공채 모집은 중지, 상해 임시정부의 새 방침 (『조선일보』 1925.1.31) 601
908. 임시정부의 새 방침, 헌법개정 외 몇 가지를 의론 (『동아일보』 1925.1.31) 602
909. 이광수사건과 연결된 서문서 중대사건 (『조선일보』 1925.2.5) 602
910. 오직 단결과 각오, 상해에서 석오 이동녕씨의 담화 (『동아일보』 1925.2.7) 603
911. 임시정부와 연락하여 모계획을 하려던 서문서 모사건 (『조선일보』 1925.2.8) 604
912. 3주간 끌던 이광수사건, 사실이 없어서 방면된다고 (『조선일보』 1925.2.10) 604
913. 자칭 정부원 금품을 강탈 도주 (『조선일보』 1925.2.19) 605
914. 용인 시국범 사건, 군자금 모집하던 4명은 임시정부 파견원 (『조선일보』 1925.2.25) 605
915. 독립신문특파원 아직도 경성에 있다고 (『조선일보』 1925.2.25) 606
916. 임시의정원 개원식 (『동아일보』 1925.3.1) 606
917. 3월 1일의 상해, 임시정부와 인성학교의 기념식 및 청년동맹회의 선열추도식 거행 (『동아일보』 1925.3.2) 607
918. 임시정부개조안, 11일 선후회의에 제출 (『동아일보』 1925.3.13) 607
919. 임시정부원, 안주에 잠입하여 군자금 강청했다고 (『동아일보』 1925.3.28) 608
920. 임시정부 정탐원 최환·전창석 등 7명이 상해를 떠나 (『동아일보』 1925.3.29) 608
921. 상해임시정부에 공산주의자 무기 밀수하다 대판에서 잡혀 (『동아일보』 1925.3.31) 609
922. 임시정부의 자금으로 모운동을 하려던 전선동맹원 취조 중 (『조선일보』 1925.4.3) 609
923. 상해임시정부의 의뢰로 일본 적화계획 (『동아일보』 1925.4.3) 610
924. 가정부의 의뢰로 적화운동 중 체포 (『매일신보』 1925.4.3) 610
925. 가정부의 내분, 이대통령을 면직 (『매일신보』 1925.4.9) 611
926. 독립운동에 분투하다가 체포되어 12년 언도받은 이홍래·강승경 불복 공소 (『시대일보』 1925.4.24) 612
927. 공채사건의 이승호는 3년 구형 (『조선일보』 1925.5.4) 613
928. 재만독립단의 중견 대한통의부·진동도독부 합동 (『동아일보』 1925.5.6) 614
929. 박제웅씨 5년의 형을 마치고 출옥 (『조선일보』 1925.5.14) 615
930. 대동단결을 역설한 임시정부의 교서 (『동아일보』 1925.5.14) 615
931. 임시정부는 각 단체로부터 경비를 모집, 정부를 북경에 이전키로 결의 (『시대일보』 1925.5.17) 616
932. 「독립신문」 자매지 「상해순보」 발간 (『시대일보』 1925.5.17) 616
933. 사칭 상해임정부원, 징역 5년 불복 공소 (『시대일보』 1925.5.21) 617
934. 상해임시정부 외교부원, 천안 부호집에서 군자금 강청하고 서울로 왔다고 (『시대일보』 1925.5.27) 617
935. 상해임시정부원인 이륭양행의 김승빈씨, 모모 사명으로 입경 (『동아일보』 1925.5.28) 618
936. 상해와 만주의 독립운동자, 장래 방침을 위해 연락 (『조선일보』 1925.5.29) 618
937. 제14회 임시의회. 상해에서 또 소집 (『조선일보』 1925.5.29) 619
938. 정의부 간부 임명 (『시대일보』 1925.5.31) 619
939. 정의, 신민의 갈등과 내무총장의 조정 (『시대일보』 1925.6.4) 620
940. 풍설이 전하는 임시정부 북경 이전비 모집 (『동아일보』 1925.6.7) 620
941. 상해임시정부와 연락코자 각 단체 대표 회합 (『시대일보』 1925.6.7) 621
942. 종로서 아연 긴장, 해외에서 온 청년 2명 검거 (『시대일보』 1925.6.8) 621
943. 밀정과 친일파의 표를 만들어 보내는 사명을 가진 임시정부의 특사 수색 중 (『조선일보』 1925.6.12) 622
944. 해주 모 부호에게서 군자금 3천원 모집한 자, 용산 방면에 잠복했는 듯 (『시대일보』 1925.6.27) 622
945. 임시의회 개원식 (『동아일보』 1925.7.1) 623
946. 상해독립신문 사원 3명이 각지로 다니며 독립사상 선전 (『시대일보』 1925.7.4) 623
947. 상해임시정부로부터 온 청년 3명, 부산서 대수색 (『동아일보』 1925.7.7) 624
948. 신헌법 시행, 이상용이 국무령으로 (『동아일보』 1925.7.13) 624
949. 동포 고혈로 축재한 상해가정부원, 만주 방면에 숨어 (『매일신보』 1925.7.31) 625
950. 가정부와도 연락하며 수원·양주 방면에서 군자금 모집 (『매일신보』 1925.8.10) 625
951. 여운홍씨 소환 취조, 내용은 비밀이나 임시정부에 관계된 사건인 듯 (『동아일보』 1925.8.15) 626
952. 임시정부 대의사 평양서에서 체포 (『시대일보』 1925.8.25) 626
953. 의문의 괴청년, 자칭 가정부원으로 군자금 모집 (『동아일보』 1925.9.10) 627
954. 군자를 모집해 가지고 간 곡산의 가정부원, 수색 중 (『동아일보』 1925.9.30) 627
955. 각종 단체를 통일하려고 상해임시정부 의정원회의 소집 (『조선일보』 1925.10.20) 628
956. 상해가정부회의, 각 단체 통일을 위해 통지서 발송 (『동아일보』 1925.10.20) 628
957. 상해가정부 노동총판 김갑씨, 경고문 만여 장 배포 (『동아일보』 1925.11.4) 629
958. 박은식씨 서거 (『동아일보』 1925.11.4) 629
959. 곡 백암 박부자 (『동아일보』 1925.11.5) 630
960. 박은식씨 서거, 정년 67세를 최후로 (『시대일보』 1925.11.5) 631
961. 죽어도 고국강산, 상해 객창의 김구씨 모친 (『동아일보』 1925.11.6) 632
962. 상해임시정부를 팔고 군자 강청하다 피체 (『동아일보』 1925.12.16) 633
963. 군자금 모집 범인은 임시정부 군영 내지부원 (『조선일보』 1925.12.22) 633
964. 임시정부 군영 내지파견원 통의부원 김상철·유봉로·류제흥 등 사건 (『동아일보』 1925.12.22) 634
965. 피체된 통의부원은 가정부의 파견원 (『시대일보』 1925.12.22) 635
966. 상해임시정부 군자모집원 이인서, 개천서에 피체 (『동아일보』 1925.12.24) 636
967. 상해 임시정부 통신원 체포, 폭파대장을 은닉하여 두고 군자금을 모집 (『조선일보』 1925.12.26) 636
968. 권총 휴대한 상해임시정부원 이화천(일명이종훈) 동경으로 암행 (『동아일보』 1925.12.26) 637
969. 한권능 등과 함께 산중에서 모모 계획을 밀의하던 참의부원 피체 (『시대일보』 1925.12.27) 637
970. 임시정부 법무국장 김구 모친인 곽씨가 귀국 (『시대일보』 1925.12.29) 638
971. 경북경찰서에서 임시정부특파원을 재워 준 신씨 검거 (『시대일보』 1926.1.7) 638
972. 여주군에 철봉강도. 자칭 상해에서 온 특파원이라고 군자금 강요 (『조선일보』 1926.1.13) 639
973. 혜산진에 큰 총성, 광정단원인지 대한통의부원인지 (『시대일보』 1926.1.19) 639
974. 노백린씨 별세, 상해에서 22일 오전 11시에 (『시대일보』 1926.1.23) 640
975. 노백린씨를 애도함. (『시대일보』 1926.1.24) 641
976. 오는 3일 오후 4시에 중앙청년회관에서 노백린씨 추도회 (『시대일보』 1926.2.1) 642
977. 노씨 추도회 금지 (『시대일보』 1926.2.2) 642
978. 안성 삼죽면에 권총범인 2명이 가정부원이라고 군자금모집 (『동아일보』 1926.2.3) 643
979. 경북사건 공판. 군자금 모집 관련 서동일은 거침없이 사실을 부인 (『조선일보』 1926.2.7) 644
980. 임시정부와 정의부, 제휴 협동에 주력한 주요한 인물들의 활약 (『동아일보』 1926.2.28) 644
981. 임시정부 국무령 이동, 이상용씨 해임 양기탁씨 신임 (『동아일보』 1926.2.28) 645
982. 전 의병대장 5년 구형. 백발성성한 피고는 왕성한 원기로 답변 (『조선일보』 1926.3.10) 645
983. 임시정부 명령으로 군자 모집하던 7명의 군자모집원 공판 (『조선일보』 1926.3.26) 646
984. 엄·황 2인의 종적 묘연. 아무리 찾으려하나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조선일보』 1926.3.28) 646
985. 가정부원으로 탈옥한 엄태섭을 은익하였다고 벌금 100원에 처해 (『동아일보』 1926.4.22) 647
986. 5만여원 군자금 모집한 유림단 검거 취조 중 (『시대일보』 1926.4.23) 647
987. 박열과 연락 활동한 가정부의 청년, 상해서 장기로 호송 (『시대일보』 1926.4.25) 648
988. 자칭 상해가정부원 신계사 강도 (『시대일보』 1926.4.30) 648
989. 강탈 일삼던 자칭 가정부원 김관섭 체포 (『동아일보』 1926.5.1) 649
990. 자칭 임시정부원 현금 강탈도주 (『조선일보』 1926.5.2) 649
991. 극동공산당대회에 조선대표 출석 (『시대일보』 1926.5.3) 650
992. 중·로 주의자의 후원으로 가정부 비밀계획 (『동아일보』 1926.5.9) 650
993. 경성역 공금으로 가정부를 원조 (『매일신보』 1926.5.14) 651
994. 봉천표를 조선은행권으로 바꾸어 모사건을 계획중이던 임시정부원 검거 (『조선일보』 1926.5.19) 652
995. 가정부 국회서기의 경성 잠입설 (『시대일보』 1926.5.20) 653
996. 상해 가정부 모 대의사, 시내에 잠입 (『시대일보』 1926.5.24) 653
997. 세계혁명자구제회 현황 (『시대일보』 1926.5.30) 654
998. 경성역 횡령금 만여원 가정부에 기부 (『동아일보』 1926.6.17) 654
999. 상해가정부 광동 이전설 (『동아일보』 1926.6.18) 655
1000. 상해가정부 간부와 의열단·정의부 수령이 출석한 극동공산당대회 (『동아일보』 1926.6.19) 655
1001. 감우의 팔면관, 「휘루참마직」, 대답 못할 질문(상해가정부) (『동아일보』 1926.7.5) 656
1002. 다수의 문서와 권총을 가진 가정부원 김일두와 개벽 사원, 김제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동아일보』 1926.7.10) 657
1003. 병인의남대원 취조 종료, 순종 인산 때에 모 운동을 (『시대일보』 1926.7.14) 657
1004. 김제 권총청년 속보, 부호의 기부 받아 지리산에 둔병 (『동아일보』 1926.7.15) 658
1005. 시내에서 잡힌 병인의용대 자백으로 신의주서 형사 경성에 출장 활동 (『시대일보』 1926.7.16) 659
1006. 동대문 범인도 병인의용대원 (『시대일보』 1926.7.16) 659
1007. 길임조의 김상모, 각 서에서 잡고자 노력 (『시대일보』 1926.7.17) 660
1008. 가정부의 나석주 외 12명 모 계책으로 입경한다는 정보 (『동아일보』 1926.7.20) 660
1009. 상해가정부 경제후원회, 지난 19일에 창립총회 (『동아일보』 1926.7.28) 661
1010. 자칭 상해가정부원으로 평북지방으로 횡행한 강도, 격투 후 체포 (『동아일보』 1926.8.27) 661
1011. 탈옥한 원산 중대범 가정부원 엄태섭, 이천에서 권총살인 (『동아일보』 1926.9.3) 662
1012. 인산 때 잡힌 이보만·장신국 공판, 가정부원으로 상해에서 활동 사실 시인 (『동아일보』 1926.9.22) 663
1013. '상해가정부 출장군'이라 쓴 두루막이를 입은 조선청년, 목제권총을 들고 부녀에 군자 청구 (『동아일보』 1926.10.11) 664
1014. 상해가정부와 연락 있던 부녀집 수색하여 문서와 사진을 압수, 부녀 이자경·정소군 검거 (『동아일보』 1926.10.20) 665
1015. 상해가정부의 판결문을 전달하고 총살한 이천군사건의 주범을 엄태섭으로 짐작 (『동아일보』 1926.10.30) 665
1016. 수은동사건과 대한민국임시정부라 쓴 협박장 사건의 이 모 외 1명을 검속하여 취조 (『동아일보』 1926.10.30) 666
1017. 경성역 공금횡령사건 공판, 가정부에 9천원 바친 것을 시인한 박인환, 징역3년 구형 (『동아일보』 1926.11.2) 667
1018. 모종 사상 선전 건의 두 청년 피체, 비밀 중에 취조를 진행 (『중외일보』 1926.12.6) 668
1019. 구미위원부의 활동, 새집으로 옮기고 영문잡지 발행 (『조선일보』 1926.12.21) 668
1020. 상해가정부 여론에 따라 일부를 개조 (『조선일보』 1926.12.23) 669
1021. 상해 ○○정부 내각 개조설, 총선거 결과 재야당 승리 (『중외일보』 1926.12.23) 669
1022. 상해가정부 통령으로 양기탁씨 추대설 (『조선일보』 1926.12.25) 670
1023. 상해 내각 개조와 양기탁 통령설 (『중외일보』 1926.12.25) 670
1024. 조선과 연락기관 확장. 워싱톤에 한인촌 신설 (『조선일보』 1927.1.22) 671
1025. 상해가정부의 최근 소식, 헌법 직제 로농식위원제 개정·집행위원장은 김구씨(『동아일보』 1927.1.23) 671
1026. 가정부와 정의부 신정책 수립. 내부조직 변경하고 구미위원부와 연락 (『조선일보』 1927.1.28) 672
1027. 상해 가정부원이 전주 고무구두점에 들어가서 4천원을 강탈 (『동아일보』 1927.2.5) 672
1028. 상해가정부 소식, 법제를 새로 개정 (『동아일보』 1927.2.19) 673
1029. 상해가정부원 군위에 잠입 (『동아일보』 1927.3.18) 673
1030. 상해가정부 50여조의 약헌을 발표 (『조선일보』 1927.4.2) 674
1031. 가정부헌법 개정, 3월 5일 공포 (『동아일보』 1927.4.2) 674
1032. 용인의 시국표방 강도 검사국에 송치, 가정부에 군법 배우러 가는 여비 요구 (『동아일보』 1927.4.9) 675
1033. 황종율은 형무소 문을 열고 엄태섭 내어 보낸 후 자신도 탈주 (『중외일보』 1927.7.17) 676
1034. 순종 인산 당시 중대 계획한 고준택 등 공판 (『중외일보』 1927.7.17) 677
1035. 편의대와 연락한 조선인 활동, 상해가정부 측의 사자인 듯 (『동아일보』 1927.7.21) 677
1036. 상해가정부 가려고 자금을 밀모한 이우석씨 집 수색 (『동아일보』 1927.9.12) 678
1037. 만여원 적행랑을 가정부에 제공한 피고 채리용, 4년 징역 받고 공소 (『동아일보』 1927.10.16) 678
1038. 상해가정부원 신호에서 피체, 수만원의 현금을 가져와 동지 모집한 사실 판명 (『동아일보』 1927.11.13) 679
1039. 군자금 모집사건 지영규씨 8년만에 출옥 (『동아일보』 1927.11.21) 679
1040. 연통제사건 손봉선씨 가출옥 (『조선일보』 1927.11.28) 680
1041. 밀정을 사살한 혐의의 상해가정부원 장진원, 장기에서 무기 언도 (『매일신보』 1927.12.2) 680
1042. 상해가정부 집행위원 의정원비서 장의주 국경서 피체 (『동아일보』 1927.12.26) 681
1043. 김천 부호에 상해가정부원이라 자칭하고 현금을 강탈 도주 (『동아일보』 1927.12.27) 681
1044. 국경을 넘고자 계획하던 의정원 총리 안동현에서 피체 (『중외일보』 1927.12.27) 682
1045. 내외 각지의 재만동포옹호운동, 교민대회 개최 결과 상해에서 옹호운동 구체화 (『중외일보』 1928.1.4) 683
1046. 상해가정부 거두 이동녕 체포 호송, 신의주서에서 취조 중 (『동아일보』 1928.1.5) 684
1047. 부하의 체포로 와전된 상해가정부 국무총리 이동녕씨 호송설, 소지품에 이씨 이름이 있는 탓으로 (『동아일보』 1928.1.8) 685
1048. 대동군에 권총 청년 김선오, 상해가정부 청년당원이라고 평남 경찰 엄히 수사 (『조선일보』 1928.1.18) 686
1049. 중앙간부 피체후 신민부, 해임을 중심한 중동연선에 일본 관헌 수색도 더욱 심해져 (『중외일보』 1928.2.16) 687
1050. 집안현에 무장단이 순회하며 지방 정황을 조사한다고 (『중외일보』 1928.2.16) 688
1051. 상해가정부원 사칭 대금편취 중 발각 (『동아일보』 1928.3.2) 688
1052. 장검 든 상해가정부원이라 자칭하는 시국범 수색 중 (『동아일보』 1928.3.13) 689
1053. 상해 ○○단 수뇌 하문서 체포 호송. 그중의 이강은 사내총독 암살사건 관련 (『조선일보』 1928.3.30) 690
1054. 사내 전총독 모살범 상해가정부원 이강, 중국 하문에서 잡히어 호송 (『동아일보』 1928.3.30) 691
1055. 안성에 괴청년 부호 습격 군자금 모집, 자칭 상해가정부원이라고 250원 뺏고 자취를 감추어 (『동아일보』 1928.4.7) 692
1056. 상해가정부원 이강 필경 송국 (『동아일보』 1928.4.19) 693
1057. 논산본정에 자칭 가정부원 3명이 나타나서 금품 강탈 (『동아일보』 1928.4.23) 693
1058. 대련 수상서, 상해 가정부원 배에서 내리는 것을 잡아 (『중외일보』 1928.5.2) 694
1059. 고양 출생의 가정부원 권녕해, ○○계획하고 대련와서 피체 (『동아일보』 1928.5.4) 695
1060. 이강의 공판은 15일 평양에서 (『중외일보』 1928.5.11) 696
1061. 귀국하자 철창 법정에선 이강, 검사는 6년에 구형 (『동아일보』 1928.5.17) 697
1062. 구례 박부호에 자칭 상해가정부 군모원 현금 70원을 탈거 (『동아일보』 1928.5.23) 698
1063.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장 이강 3년 언도에 불복 공소할 듯 (『동아일보』 1928.5.24) 698
1064. 전 가정부 의정원의장, 징역 3년에 불복 공소하기로 (『중외일보』 1928.5.24) 699
1065. 상해 가정부의 부진 만회코자 군자금 주선 중 발각, 유범규가 주동 (『중외일보』 1928.6.16) 700
1066. 고량 우거진 간도에 이주한 일가의 용아, 조선에서 거사하려다 피체 (『중외일보』 1928.6.16) 701
1067. 단양에 권총 청년, 상해가정부원이라 하고 현금 46원을 뺏아 가 (『중외일보』 1928.6.19) 702
1068. 상해가정부 의정원의장 이강, 6년 구형에 변호사는 가벼운 형을 주장 (『중외일보』 1928.6.30) 702
1069. 이강의 판결, 3년 징역 언도 (『중외일보』 1928.7.5) 703
1070. 무관학교 설치 자금을 모집, 상해가정부 북만지부 각지에서 위원 활동 (『동아일보』 1928.7.16) 703
1071. 장총 가진 가정부원 오문봉, 대담하게 군자금을 요구하다 경관에게 잡히어 (『동아일보』 1928.7.23) 704
1072. 로령정청 승낙을 얻어 상해임시정부 활약 (『중외일보』 1928.8.27) 705
1073. 봉천중대사건, 다수의 폭탄 압수와 관계인물 총검거한 상세 내용은 비밀 (『중외일보』 1928.10.3) 706
1074. 경북일대 부호협박 빈번, 상해가정부 명의로 안동 김부호 미망인 협박범은 경찰에 피체 (『중외일보』 1928.10.5) 707
1075. 시국을 표방하고 과부부호를 협박, 상해 가정부 파견원인 범인은 안동서에 피체 (『동아일보』 1928.10.6) 708
1076. 수원 협박범 인천에서 피체, 상해가정부원이라 하며 군자금 5만원 청구 (『동아일보』 1928.10.12) 709
1077. 〈정정기사〉 인천에서 피체된 수원 협박범 윤영수는 협박을 한 자가 아닌 받은 인물 (『동아일보』 1928.10.15) 709
1078. 유임단 김창숙 사건 공판, 돌연 개정 즉시 방청금지 (『중외일보』 1928.10.30) 710
1079. 유임단 김창숙 사건 공판, 법정 내의 극적광경 (『중외일보』 1928.10.30) 711
1080. 동척 대구지점원 4만원 대금 횡령, ○○운동에 제공설 (『중외일보』 1929.3.2) 712
1081. 유범규 사건 공판 (『중외일보』 1929.4.2) 713
1082. 주재소 습격·밀정사살·군자모집 이용담 복심공판, 1심에서는 무기징역 (『중외일보』 1929.4.6) 714
1083. 유범규 공판 개정, 제령위반·강도예비·지폐위조·사기취재로 김성만과 백순화 (『중외일보』 1929.4.6) 715
1084. 가정부 공채발행사건 유범규 등 판결, 최고 5년 언도 (『동아일보』 1929.4.13) 716
1085. 가정부 북만 이전설에 민심수습 주력, 구축은 절대불가 (『중외일보』 1929.4.13) 717
1086. 유범규 판결 언도, 김성만과 같이 징역 5년, 백순화는 4년 (『중외일보』 1929.4.14) 718
1087. 마치령에 자칭 가정부 공명단원 3명, 통과 중인 자동차 습격 후 천마산으로 잠적 (『중외일보』 1929.4.20) 719
1088. 괴청년 금번엔 안성에 출현, 상해 가정부에서 왔다며 군자금으로 현금 백원을 가져가 (『동아일보』 1929.4.29) 720
1089. 안성군 일죽면에 군자모집원 출현, 현금을 받은 다음 하루저녁 묵기까지 하고서 잠적 (『중외일보』 1929.4.29) 721
1090. 상해가정부특파원 5월 1일 모 중대운동 계획, 동경경시청에 포착 (『중외일보』 1929.5.3) 722
1091. 가정부원에게 현금을 강탈당했다고 했으나, 가정부란 전혀 무고 (『중외일보』 1929.5.4) 723
1092. 평양서에 잡힌 도기형, 가정부 군무총장의 아들 (『동아일보』 1929.7.1) 724
1093. 상해에서 온 도기형 청년을 2주일간 구류 (『조선일보』 1929.7.3) 724
1094. 상해가정부에서 다년간 활동한 진수린 사건은 의렬단 관계, 공주법원서 예심종결 (『동아일보』 1929.7.5) 725
1095. 상해 일본경찰에 여운형 피체 확실, 그가 잡힐 때에 청년 40명도 체포 (『중외일보』 1929.7.13) 726
1096. 여운형 동생 여운홍씨의 말 (『중외일보』 1929.7.13) 727
1097. 여운형씨 체포로 중국이 일본에 항의 (『중외일보』 1929.7.14) 728
1098. 상해 여운형, 합시 백운봉에서 불원간 신의주서로 호송 (『중외일보』 1929.7.15) 729
1099. 가정부원 진수린 공판, 치안유지법 1조로 5년 징역 구형 (『동아일보』 1929.7.21) 730
1100. ○○운동 청년 상해에서 체포 압송, ○○정부와도 관계가 있는 오한수 (『조선일보』 1929.8.4) 730
1101. 가정부원 이교남 경성 내에 잠입, 각 경찰서는 거처 엄탐 중 (『동아일보』 1929.9.9) 731
1102. 가정부의 밀령을 받고 내정 탐사차 잠입 활동하다가 수원에서 피체된 윤모 (『동아일보』 1929.9.16) 732
1103. 고공 밀사 이동휘 등, 상해 잠입 활동설 (『중외일보』 1929.10.22) 733
1104. 총기를 가정부에 밀수 공급한 형적이 있다고 이진여를 대련서에서 검거 취조 (『중외일보』 1929.10.25) 734
1105. 여운형사건을 위시한 제반 중대사건 예심, 금년 내로 전부 종결 (『중외일보』 1929.11.2) 735
1106. 상해 일본영사관에 가정부에서 활동하던 김기진 피체, 신의주로 호송 (『동아일보』 1929.11.25) 736
1930년대 737
1107. 제령 위반으로 여운형 예심결정 (『동아일보』 1930.3.12) 737
1108. 구미위원부는 「조선사정」을 인쇄하여 널리 각국에 소개코자 노력해 (『중외일보』 1930.3.22) 738
1109. 명일로 임박한 여운형 공판, 방청은 가족 친지로 제한 (『중외일보』 1930.4.9) 738
1110. 제령 7호만 적용하여 여운형에게 3년 언도, 공소권은 포기 (『중외일보』 1930.4.27) 739
1111. 여운형 사건 검사도 공소 않을 듯 (『중외일보』 1930.4.27) 740
1112. 검사공소로 주목되는 여운형 판결 내용(1) (『중외일보』 1930.5.4) 741
1113. 검사공소로 주목되는 여운형 판결내용(2) (『중외일보』 1930.5.4) 742
1114. 가정부란 전혀 무고, 차천자 부하의 소행이라는 것이 피해자 허위고발로 판명 (『중외일보』 1930.5.4) 743
1115. 자칭 상해가정부원 권총 협박하고 현금 강탈 (『매일신보』 1930.7.10) 744
1116. 박응칠 경성복심에서 3년 징역 언도 (『중외일보』 1930.9.12) 744
1117. 금품을 강탈한 자칭 가정부원 박춘방 체포 (『매일신보』 1931.1.28) 745
1118. 강서 권총범 속보, 가정부 문서 발견되어 체포하려하자 달아나 (『동아일보』 1931.2.2) 746
1119. 영주서에서 금품을 모집해 상해가정부로 밀송하려던 6인을 검거 취조 (『동아일보』 1931.4.10) 746
1120. 상해에 있는 선배들의 인상(1) ; 부동암인 김구 (『조선일보』 1931.6.5) 747
1121. 상해에 있는 선배들의 인상(2) ; 모던 장군 김철 (『조선일보』 1931.6.6) 748
1122. 상해에 있는 선배들의 인상(3) ; 기고한 이동녕 (『조선일보』 1931.6.7) 749
1123. 상해에 있는 선배들의 인상(4) ; 호현한 안창호 (『조선일보』 1931.6.9) 750
1124. 상해에 있는 선배들의 인상(5) ; 재변의 조완구 (『조선일보』 1931.6.11) 751
1125. 군위에서 가정부원을 사칭하고 돈을 뺏은 혐의자 수명을 검거 취조 (『동아일보』 1931.10.5) 752
1126. 대구 권총범, 범인이 상해가정부원인지 시국표방 강도인지 (『동아일보』 1931.11.11) 752
1127. 전남 고흥에 3인 권총단, 자칭 상해가정부원이라며 현금 2백여원 탈거 (『동아일보』 1931.12.14) 753
1128. 이시영의 장자 이규봉, 종로서에 피검 (『중앙일보』 1932.2.21) 753
1129. 평남 숙천 곡물상에 권총 청년이 가정부원이라 하고 금품 강탈 (『중앙일보』 1932.4.7) 754
1130. 상해수류탄사건 상보 (『동아일보』 1932.5.8) 755
1131. 가정부원의 군자모집에 경북 경찰 일대소동 (『동아일보』 1932.6.5) 756
1132. 상해가정부원 남형우 농부로 변장 잠입 (『매일신보』 1932.6.6) 757
1133. 해외운동의 거두 김구가 경성에 잠입했다는 전보에 경찰 대긴장 (『매일신보』 1932.9.10) 758
1134. 상해가정부 외교부장 조소묘 위독 (『동아일보』 1932.9.29) 759
1135. 상해○○당 단속하기 위해 특고경헌중요회의, 불조계 당국과도 교섭 (『동아일보』 1932.10.22) 759
1136. 민족자결에 충동 받아 상해가정부 수립, 안창호 내무총장 취임 (『매일신보』 1932.10.26) 760
1137. 유길주중공사의 암살계획수 탄로, 상해령 경찰에 주원훈·백구파·이홍훈 체포 (『조선중앙일보』 1933.3.21) 761
1138. 이경호 예심종결결정서 전문 (『조선중앙일보』 1933.7.21) 762
1139. 김구 일파 활동 개시, 만주에 변장대 잠입하여 제간단·○○의용동맹군 조직 중 (『동아일보』 1933.9.3) 763
1140. 덕천군에 또 시국표방 강도 (『조선중앙일보』 1933.9.22) 764
1141. 김구 양서봉 일파, 만주 잠입하여 모종 책모 (『동아일보』 1934.3.1) 765
1142. 자칭 가정부원은 금융조합 서기 김직필, 돈을 뺏으려다 체포 (『조선중앙일보』 1934.4.5) 766
1143. 김구의 ○○대원, 만주 잠입의 정보에 일·만 관헌 활동 개시 (『조선중앙일보』 1934.5.30) 767
1144. 상해○○정부를 원조하려고 인물파견 여비 조달 중이던 3명 동경에서 체포 (『조선중앙일보』 1934.6.18) 768
1145. 상해의 김구 일파, 대일·만테러 획책 (『조선중앙일보』 1934.11.27) 769
1146. 국민부 김구 일파와 연락 조선·만주에 잠입 계획 (『동아일보』 1935.1.20) 770
1147. 시국 표방한 강도 3명 피체, 귀성서에서 엄히 취조 중 (『조선중앙일보』 1935.1.25) 771
1148. 대동단결을 목표로 해외 각파가 청산운동 개시(김원봉 김구 악수설) (『매일신보』 1935.3.2) 772
1149. 상해에서 압래한 김구 부하 이광복 (『매일신보』 1935.6.22) 773
1150. 인천에 잠입한 상해 청년은 김구 밀사로 판명 (『매일신보』 1935.11.23) 774
1151. 인천항에서 체포된 김구 부하 검사국에 송치 (『매일신보』 1935.12.4) 775
1152. 군관학교 출신 엄창복의 공판, 24일에 개정 (『조선중앙일보』 1936.1.15) 776
1153. 월경한 ○○단원은 군관교생으로 동지 규합과 자금 모집 활동 (『조선중앙일보』 1936.1.15) 776
1154. 일본요인 암살을 위해 ○○당원이 암약, 군관교 조선인학생 다수 밀파에 상해령 경찰 비상활동 (『조선중앙일보』 1936.1.24) 777
1155. 해외서 잠입한 군관학교 출신 청년 징역 2년을 구형 (『조선중앙일보』 1936.1.25) 778
1156. 김구를 수령으로 ○○당 조직 강화, 각국의 동지를 규합하여 국제적 통일당 완성 (『조선중앙일보』 1936.2.1) 779
1157. 김구의 밀사 엄창복 징역 2년 판결 (『조선중앙일보』 1936.2.1) 780
1158. 김구 등의 최근 활동, 재중국 ○○단체 등 조직혁신을 획책 (『조선중앙일보』 1936.2.23) 781
1159. 김구 부하로 활약한 청년 2명, 상해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24일 인천 상륙 (『조선중앙일보』 1936.3.25) 782
1160. 김구 부하로 활약한 최룡국에 4년 구형, 해주에서 공판개정 (『조선중앙일보』 1936.4.22) 783
1161. 김구 부하 2명을 상해에서 압래 (『매일신보』 1936.5.24) 784
1162. 김구 부하로 19로군 관계자인 중대범 오황식, 해주로 호송 (『매일신보』 1936.5.28) 784
1163. 안재홍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 탄로로 송국이 지연될 듯 (『조선중앙일보』 1936.6.13) 785
1164. 주요인물 암살에 가담한 김구 부하 2명 상해에서 압래 (『매일신보』 1936.7.1) 786
1165. 남경정부 지휘로 제1선에 김구 등 3명을 내세워 만주국 교란 (『조선중앙일보』 1936.7.5) 787
1166. 군관학교생사건은 김구 일파의 책동 (『매일신보』 1936.8.29) 788
1167. 상해에서 김구 일파 이면식 등과 활동하던 무정부주의자 김성수 송국 (『동아일보』 1937.8.14) 789
1168. 후방 교란을 기도한 천진 항일파의 두령 김구 부하를 체포, 조선에 압송 (『매일신보』 1939.1.29) 790
해제 / 한상도
중국보도기사 I 830
1910년대 말 832
1) 한인의 임시정부 설립에 관한 외국신문의 보도(『신보』, 1919.4.11) 832
2) 한인 임시정부 조직(『민국일보』, 1919.4.11) 832
3) 한인 임시정부 조직(『시사신보』, 1919.4.11) 833
4) 대한민국 출현(『시사신보』, 1919.4.11) 833
5) 고려의 독립선포(『신보』, 1919.4.11) 835
6) 고려 각지의 독립운동(『신보』, 1919.4.11) 835
7) 고려임시정부(천진 『대공보』, 1919.4.11) 838
8) 한인대표 독립청원서 제출 예정(『민국일보』, 1919.4.12) 839
9) 고려정부 요인들 유럽에서 활동(『신보』, 1919.4.14) 839
10) 고려 각지의 독립운동(『신보』, 1919.4.14) 839
11) 고려의 총통과 각료(천진 『대공보』, 1919.4.14) 840
12) 고려의 독립선포(장사 『대공보』, 1919.4.15) 840
13) 일본신문의 조선임시정부 관련 보도(『민국일보』, 1919.4.16) 841
14) 고려임시정부의 선언(『신보』, 1919.4.21) 841
15) 조선임시정부의 선고(『민국일보』, 1919.4.22) 842
16) 한인의 청원서 이미 파리에 도착(『신보』, 1919.4.23) 843
17) 한인의회 임시정부 승인 청원(천진 『대공보』, 1919.4.23) 843
18) 재미 고려인의 선언(『신보』, 1919.4.25) 843
19) 조선임시정부의 선포문(장사 『대공보』, 1919.4.25) 844
20) 미국인들이 밝힌 한국사건의 진상(『민국일보』, 1919.4.30) 845
21) 고려독립당의 원대한 계획(『신보』, 1919.4.30) 848
22) 한국임시정부 임시약법 제정(천진 『대공보』, 1919.4.30) 850
23) 고려 신정부의 주의(천진 『대공보』, 1919.4.30) 850
24) 고려 임시정부의 조직(『신보』, 1919.5.2) 851
25) 고려임시정부 출범(『민국일보』, 1919.5.2) 852
26) 고려임시정부의 선서문(『신보』, 1919.5.2) 854
27) 고려의 참극에 관한 미국선교사의 보고(『신보』, 1919.5.2) 855
28) 고려임시정부의 선언(천진 『대공보』, 1919.5.2) 858
29) 대한민국에 새 신문 출현(『신보』, 1919.5.4) 858
30) 여전히 식지 않은 고려의 독립열기(『신보』, 1919.5.4) 859
31) 대한민국의 출현을 보라(장사 『대공보』, 1919.5.4) 860
32) 조선인들의 움직임(천진 『대공보』, 1919.5.5) 861
33) 고려와 중국의 비교(『신보』, 1919.5.6) 862
34) 서양언론에 소개된 대한민국 신문의 사설(『민국일보』, 1919.5.6) 866
35) 일본경찰이 프랑스 조계에서 한인 체포(『시사신보』, 1919.5.16) 867
36) 일본경찰이 프랑스 조계에서 한인을 체포한 사건의 후속보도(『시사신보』, 1919.5.17) 868
37) 고려대표 독립청원서 제출(『신보』, 1919.5.21) 869
38) 고려의 독립청원(천진 『대공보』, 1919.5.21) 869
39) 강화회의에 제출된 조선독립청원서의 내용(『민국일보』, 1919.5.30) 870
40) 고려대표, 강화회의에 일한합병조약 취소를 청원(『신보』, 1919.5.31) 870
41) 한국독립운동과 파리강화회의(『민국일보』, 1919.6.5) 871
42) 신한청년당이 평화회의에 제출한 청원서(『민국일보』, 1919.6.5) 873
43) 한국독립운동과 파리강화회의(『시사신보』, 1919.6.5) 875
44) 한국독립운동과 평화회의(『신보』, 1919.6.5) 880
45) 한국혁명영수, 귀국 도중 상해에 들러(장사 『대공보』, 1919.6.25) 885
46)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려대표의 재청원(『신보』, 1919.6.27) 886
47) 동삼성 한교, 눈물 어린 '중국동포에게 고하는 글' 발표(『신보』, 1919.6.27) 886
48) 평화회의에 이첩한 고려대표의 청원서(『신보』, 1919.7.24) 888
49) 한국임시국회 조사령 하달(『민국일보』, 1919.7.24) 892
50) 한인의 임시국회 조직 움직임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령이 내려져(『시사신보』, 1919.7.24) 892
51) 중국은 제2의 조선(『신보』, 1919.8.7) 893
52) 파리에 파견된 한국대표의 활동상(『민국일보』, 1919.8.14) 897
53) 한인이 발표한 대일선언(『신보』, 1919.8.29) 901
54) 파리에 거주하는 한인의 목소리(천진 『대공보』, 1919.8.29) 902
55) 파리 거주 한인들 일본에 대한 불만 표시(장사 『대공보』, 1919.9.1) 902
56) 한인독립운동의 진보(『신보』, 1919.9.5) 902
57) 한인독립운동의 진보(장사 『대공보』, 1919.9.9) 903
58) 조선임시정부 조직의 내용(『신보』, 1919.9.10) 904
59) 프랑스에서 선포된 고려독립선언(『민국일보』, 1919.9.10) 905
60) 고려인의 독립주장(『민국일보』, 1919.9.11) 905
61) 조선임시정부의 조직 내용(장사 『대공보』, 1919.9.14) 905
62) 고려민국 총통의 선언(장사 『대공보』, 1919.9.14) 906
63) 고려공화국 총통의 담화(『민국일보』, 1919.9.23) 907
64) 서양언론에 보도된 한국총리의 상해 도착소식(『민국일보』, 1919.9.23) 908
65) 상해에서 고려임시정부 성립(『신보』, 1919.9.26) 908
66) 상해에 조직된 한인의 임시정부(『신보』, 1919.9.29) 909
67) 고려공화국 총통의 담화(장사 『대공보』, 1919.10.3) 909
68) 고려인의 연설(『신보』, 1919.10.16) 910
69) 조선 임시정부 청사의 이전(『신보』, 1919.10.22) 911
70) 한국임시정부 봉쇄(『민국일보』, 1919.10.22) 912
71) 한국임시정부 폐쇄(천진 『대공보』, 1919.10.23) 912
72) 한국독립정부, 상해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을 듯(『신보』, 1919.10.24) 913
73) 프랑스 조계당국 한국독립정부 봉쇄(장사 『대공보』, 1919.10.28) 913
74) 조선에서 행해지고 있는 혹형들(『시사신보』, 1919.11.14) 914
75) 한국귀족 상해로 망명(장사 『대공보』, 1919.11.15) 917
76) 한국의 황자와 유신(『시사신보』, 1919.11.16) 917
77) 한국의 모 남작이 위험을 무릅쓰고 상해로 망명(『시사신보』, 1919.11.19) 919
78) 한국귀족 상해로 망명(천진 『대공보』, 1919.11.20) 920
79) 한국의 자치허용 가능성을 언급한 일황의 조서에 대한 한국대표의 비평(『신보』, 1919.11.25) 920
80) 자치허용 가능성을 언급한 일황의 조서에 대한 한국대표의 비판(『민국일보』, 1919.11.27) 923
81) 자치허용 가능성을 언급한 일황의 조서에 대한 한국대표의 반응(『시사신보』, 1919.11.27) 925
82) 한국사회당 대대적 활동(『신보』, 1919.11.27) 926
83) 한국의 제2차 독립운동(『신보』, 1919.11.28) 926
84) 조선 전 황제의 아들 탈출과정에서 피포(『시사신보』, 1919.11.29) 926
85) 미주 한교의 호소(『민국일보』, 1919.11.29) 927
86) 미주 한교의 호소(『시사신보』, 1919.11.30) 928
87) 한국 전 황제의 아들 상해로 탈출하려다 실패(『시사신보』, 1919.12.4) 929
88) 조선독립운동과 이강 공(『신보』, 1919.12.9) 930
89) 한국문제에 대한 서양인의 관찰(『민국일보』, 1919.12.11) 933
90) 한국임시정부 봉쇄설은 잘못된 정보(『민국일보』, 1919.12.13) 936
91) 한국의 독립운동(『시사신보』, 1919.12.13) 936
92) 고려인의 독립권리(『시사신보』, 1919.12.21) 937
93) 한인들 여전히 적극적으로 독립운동 진행(『민국일보』, 1919.12.29) 937
1920년대 939
94) 한국임시정부의 신년축하회(『민국일보』, 1920.1.6) 939
95) 일본당국의 한국통치방침(『시사신보』, 1920.1.15) 939
96) 일본군영을 폭파하려던 한인의 계획 실패(『시사신보』, 1920.1.21) 943
97) 러시아의 한국독립 원조에 관한 소문(『민국일보』, 1920.2.6) 943
98) 고려임시정부 대표의 담화(『신보』, 1920.2.12) 944
99) 서양언론에 소개된 한인의 복국운동(『민국일보』, 1920.2.15) 948
100) 미국 신문 상해체류 한국인 대회 보도(『신보』, 1920.3.3) 949
101) 한국독립선언 1주년 기념대회 거행(『민국일보』, 1920.3.3) 950
102) 상해 거주 한인들의 독립절 기념행사(『신보』, 1920.3.6) 952
103) 한인의 건국가(『민국일보』, 1920.3.9) 954
104) 블라디보스토크 한교의 독립기념절 행사(『민국일보』, 1920.3.15) 955
105) 한국독립운동 소식(『민국일보』, 1920.3.28) 955
106) 한국임시정부, 독립운동 관련 포고문 발표(천진 『대공보』, 1920.4.10) 956
107) 한국과 러시아 대표의 협상(『민국일보』, 1920.5.18) 958
108) 미국상원의 한국독립승인안 논의(『민국일보』, 1920.6.9) 958
109) 한국독립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정(『민국일보』, 1920.6.15) 959
110) 한국임시정부가 세운 군관학교의 성적(『민국일보』, 1920.6.18) 959
111) 한국임시정부, 강항호를 위해 공식적인 연회 베풀어(『민국일보』, 1920.8.2) 960
112) 고려 노동자들의 독립열기(『신보』, 1920.8.29) 961
113) 고려의 독립운동 점점 체계적으로 진행(장사 『대공보』, 1920.9.10) 962
114) 조선독립의 원대한 계획(장사 『대공보』, 1920.10.2) 963
115) 한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 회의에 제출할 청원서의 내용(천진 『대공보』, 1920.10.2) 964
116) 대한민국의 조직(장사 『대공보』, 1920.11.3) 964
117) 조선독립단, 일본군과 결전 계획(장사 『대공보』, 1920.11.6) 966
118) 일본 한인통치정책의 변화(장사 『대공보』, 1920.12.13) 967
119) 일본군의 한인참살에 관한 보고서(속)(장사 『대공보』, 1920.12.18) 969
120) 일본군의 한인참살에 관한 보고서(속)(장사 『대공보』, 1920.12.20) 970
121) 일본군의 한인참살에 관한 보고서(속)(장사 『대공보』, 1920.12.21) 971
122) 조선임시정부 적탑으로 이전 계획(장사 『대공보』, 1920.12.26) 972
123) 한국독립당 대일선전포고(장사 『대공보』, 1921.1.1) 973
124) 한국독립에 대한 각국의 견해(장사 『대공보』, 1921.1.15) 973
125) 한국독립당의 독립투쟁(장사 『대공보』, 1921.1.29) 974
126) 한국임시정부의 최근 소식(『신보』, 1921.2.24) 975
127) 한국임시정부의 근황(장사 『대공보』, 1921.2.28) 975
128) 한국독립당 임시정부의 신내각(장사 『대공보』, 1921.3.4) 976
129) 상해에 거주하는 한교들 독립운동기념대회 거행(장사 『대공보』, 1921.3.7) 976
130) 조선대표 호남성에 도착(장사 『대공보』, 1921.3.14) 977
131) 최근 한국독립당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이모저모(장사 『대공보』, 1921.3.17) 978
132) 한국독립당 임시정부의 부활(『신보』, 1921.5.4) 979
133) 일본의 한인자위단 개조 강요(『신보』, 1921.5.4) 979
134) 한국임시정부 대통령의 행적(『신보』, 1921.6.18) 980
135) 한국임시정부 외무부, 호남성 각 단체에 서한 보내(장사 『대공보』, 1921.8.19) 980
136) 태평양회의와 한국문제(『신보』, 1921.10.5) 980
137) 상해 한국임시정부 미국에 대표 파견(『신보』, 1921.10.7) 981
138) 한국독립정부 태평양회의 파견대표 경비 모금(『신보』, 1921.10.12) 981
139) 상해 거주 한인들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 모색 (『신보』, 1921.10.25) 982
140) 한국독립당, 미국의 통치 받기를 원해(장사 『대공보』, 1921.11.14) 982
141) 한국 독립정부 조선은행권 위폐발행(『신보』, 1921.11.28) 983
142) 광주중한협회의 선언(『신보』, 1921.12.1) 984
143) 태평양회의 기간 조선문제에 대한 상해 소식(『신보』, 1921.12.23) 987
144) 한국대표 워싱턴 회의에 청원서 전달(『신보』, 1922.1.3) 987
145) 워싱턴 회의 조선문제 속편(『신보』, 1922.1.5) 987
146) 봉천지역 한교의 상황(『신보』, 1922.3.22) 987
147) 봉천지역 한교의 상황(속)(『신보』, 1922.3.23) 991
148) 고려임시정부, 전중 암살사건 관련설을 부인(『신보』, 1922.4.4) 993
149) 서방신문 한국인 교회당 집회보도(『신보』, 1922.6.10) 993
150) 한국동포 연합회 대회실기(『신보』, 1922.9.12) 994
151) 한국 지사 신규식 상해에서 작고(『신보』, 1922.9.27) 994
152) 상해 한국인 정부 개각(『신보』, 1922.10.10) 995
153) 서방신문 한국인 활동 보도(『신보』, 1922.11.4) 995
154) 대한민국임시정부 김익상에 대한 사형언도에 항의(『신보』, 1922.11.17) 996
155) 한성에서 분투하는 한국당인들에 대한 상해소식(『신보』, 1923.2.7) 997
156) 상해 체류 한국인 독립기념 경축(『신보』, 1923.3.2) 998
157) 연길지역 30만 한인의 입적 청구(『신보』, 1923.3.13) 998
158) 한국의열단에 닥친 대재난(『신보』, 1923.4.15) 999
159) 고유균을 힐난한 고려민당의 편지(『광주민국일보』, 1923.8.11) 1001
160) 중한국민호조사 제3기 연례회(『신보』, 1923.9.2) 1002
161) 한인대회 상황 약술(『신보』, 1923.10.8) 1003
162) 중한국민호조사 이사회 실기(『신보』, 1923.10.29) 1003
163) 중한국민호조사의 선언(『신보』, 1923.11.4) 1004
164) 한국 적십자회의 성명(『신보』, 1923.11.4) 1005
165) 한국 교포 음악회 진행(『신보』, 1924.1.8) 1006
166) 한인들의 독립기념절 행사(『광주민국일보』, 1924.3.1) 1006
167) 어제 한국인 독립선포 기념회 거행(『신보』, 1924.3.2) 1006
168) 안중근 자녀 학비 면제(『신보』, 1924.3.7) 1007
169) 급진적인 한인의 배일운동(『광주민국일보』, 1924.6.8) 1007
170) 미래의 조선공화국(『광주민국일보』, 1924.8.5) 1008
171) 세계 약소민족해방운동의 근황(이) (『광주민국일보』, 1924.9.22) 1008
172) 한국인 독립기념일 집회(『신보』, 1925.2.28) 1010
173) 사기참안에 대한 약소민족대표의 선언(『광주민국일보』, 1925.7.3) 1011
174) 피압박민족연합회 회의기록(『광주민국일보』, 1925.7.11) 1011
175) 피압박민족연합회 선언(『광주민국일보』, 1925.7.20) 1013
176) 아시아민족대동맹 북경에서 개회(『광주민국일보』, 1925.8.18) 1015
177) 피압박민족연합회 개조(『광주민국일보』, 1926.2.23) 1015
178) 한인들의 독립기념절 7주년 기념행사(『광주민국일보』, 1926.3.4) 1017
179) 조선의 매국노, 일본의 충실한 사냥개 이완용의 사망(『광주민국일보』, 1926.3.6) 1018
180) 조선독립당의 의분(『광주민국일보』, 1926.3.15) 1019
181) 한국혁명당원 상해에서 적극 활동(『민국일보』, 1926.5.9) 1020
182) 한국임시정부 대통령 상해 도착(『민국일보』, 1926.5.26) 1020
183) 한국임시정부 영수 상해를 떠나 북상(『민국일보』, 1926.6.5) 1020
184)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동삼성 이민정책(『광주민국일보』, 1926.6.14) 1020
185) 한국임시정부 광동으로 이전할 듯(『신보』, 1926.6.16) 1021
186) 한국독립정부 광주로 이전 예정(『광주민국일보』, 1926.6.23) 1022
187) 대한민국임시정부 모금회의(『신보』, 1926.7.10) 1022
188) 상해 한국혁명당의 활동(『민국일보』, 1926.7.19) 1023
189) 한국임시정부 잠시 광주로 이전 계획(『민국일보』, 1926.8.2) 1023
190)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주로의 이전 잠정적 포기(『신보』, 1926.8.2) 1024
191) 한국임시정부 요인 방문기(『민국일보』, 1926.8.6) 1024
192) 북경총공회의 조선독립운동 원조(『광주민국일보』, 1926.8.10) 1026
193) 중·한 청년들이 발표한 아시아민족대회 반대선언(『광주민국일보』, 1926.8.19) 1027
194) 한인 각 단체, 다투어 국민혁명군에 축전 보내(『민국일보』, 1926.8.31) 1030
195) 한인들도 만현참안에 분개(『광주민국일보』, 1926.10.19) 1031
196) 만현참안 성토와 조선 민중 원조를 위한 각계 대표회의 개최(『광주민국일보』, 1926.10.20) 1032
197) 일본인의 학대를 받고 있는 한인의 참상(『광주민국일보』, 1926.10.20) 1034
198) 만현참안 원조대회 주비회의개최(『광주민국일보』, 1926.10.25) 1035
199) 동삼성에 교거하고 있는 한인의 상황(『광주민국일보』, 1926.11.9) 1036
200) 조선독립당 동북에서 활발한 활동전개(『광주민국일보』, 1927.2.21) 1037
201) 한국교포 어제 독립운동을 기념(『신보』, 1927.3.2) 1038
202) 고려의 혁명운동관(『광주민국일보』, 1927.7.12) 1038
203) 낙관적인 고려독립운동의 전도(『광주민국일보』, 1927.11.18) 1039
204) 조선화교의 개황(『광주민국일보』, 1927.11.26) 1040
205) 한인들은 왜 화인을 적대시하는가(『광주민국일보』, 1927.12.23) 1041
206) 한인의 화인배척사건에 대한 외교후원회의 항의(『광주민국일보』, 1928.1.5) 1042
207) 한국에서 벌어진 화교배척사건에 관한 한국혁명당 영수 안창호 씨의 담화(『광주민국일보』, 1928.1.9) 1043
208) 한국에서 벌어진 화교배척사건에 관한 한국혁명당 영수 안창호 씨의 담화(속)(『광주민국일보』, 1928.1.10) 1044
209) 한인의 화교배척운동 점차 진정세로 접어들어(『광주민국일보』, 1928.1.27) 1045
210) 한인의 화교배척사건 관련 교섭(『광주민국일보』, 1928.2.7) 1048
211) 조선에서 발생한 화교참안의 진상(『중앙일보』, 1928.2.11) 1051
212) 한국지사들, 내일 독립기념대회 개최 예정(『중앙일보』, 1928.2.29) 1053
213) 상해 한국인 어제 독립선언 기념대회 개최(『신보』, 1928.3.2) 1054
214) 몇몇 한국 혁명청년과의 대화(『중앙일보』, 1928.3.15) 1054
215) 망국의 눈물-심산밀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한인의 조국광복운동(『신보』, 1928.3.21) 1056
216) 한국유일독립당 남경촉성회가 수도민중반일구국운동대회에 보낸 공함 (『중앙일보』, 1928.5.13) 1058
217) 원동피압박민족 간담회 개최(『광주민국일보』, 1928.5.19) 1058
218) 상해에 교거하고 있는 조선인도 반일대열에 동참(『중앙일보』, 1928.5.28) 1059
219) 한국의 각 신문 다투어 국민혁명 성공을 축원(『중앙일보』, 1928.6.20) 1060
220) 동삼성 한국교민의 민족운동(『중앙일보』, 1928.6.30) 1061
221) 일본통치 하의 식민지(『중앙일보』, 1928.7.27) 1064
222) 일본통치 하의 식민지(속)(『중앙일보』, 1928.8.3) 1068
223) 일본통치 하의 식민지(속)(『중앙일보』, 1928.8.10) 1072
224) 한교들의 국치기념일 행사(『중앙일보』, 1928.8.30) 1080
225) 한족의 독립운동 홀연 격렬해지기 시작(『중앙일보』, 1928.10.29) 1081
226) 조선에 독립운동 재발(『광주민국일보』, 1928.11.5) 1083
227) 중일외교관계에 대한 한국 동아일보의 논평(『광주민국일보』, 1928.11.19) 1084
228) 한인, 민족단일당 조직(『광주민국일보』, 1929.2.26) 1085
229) 한국인 어제 독립선언 10주년 기념(『신보』, 1929.3.2) 1086
230) 민족해방을 위한 불교계의 대계획, 불행하게도 일본인들에게 발각(『중앙일보』, 1929.3.14) 1087
231) 중국의 시국에 대한 한국 신문의 관측(『광주민국일보』, 1929.4.11) 1087
232) 일본통치 하 한인의 고통(『광주민국일보』, 1929.4.15) 1088
233) 한국혁명영수 안창호 필리핀에서 혁명문제에 대해 언급(『광주민국일보』, 1929.4.16) 1089
234) 최근 중국시국에 관한 한국 신문의 논평(『광주민국일보』, 1929.6.4) 1093
235) 만몽을 차지하려는 일본의 절박함이 갈수록 도를 더해(『광주민국일보』, 1929.6.12) 1094
236) 총리 봉안식에 참석한 한국대표 안창호 씨, 한국혁명의 근황에 대해 언급(『광주민국일보』, 1929.6.15) 1096
237) '만선일관'의 신정책에 대한 만철사장의 담화(『광주민국일보』, 1929.6.27) 1097
238) 한인을 이용한 일본의 동삼성 침략계획(『중앙일보』, 1929.7.3) 1099
239) 제국주의 압제 하의 조선(『광주민국일보』, 1929.7.17) 1100
240) 교육부가 마련한 귀화한인 자제에 대한 교육법(『중앙일보』, 1929.9.26) 1101
241) 일본의 압박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일)(『중앙일보』, 1929.10.?) 1103
242) 태평양회의에 출석하는 도중에(『민국일보』, 1929.11.2) 1107
243) 상해 한국인 국경절 경축(『신보』, 1929.11.3) 1113
244) 태평양회의 취재기자의 보고(오)(『광주민국일보』, 1929.11.28) 1113
245) 중국국민당 조선지부(『중앙일보』, 1929.12.20) 1114
246) 한국 학생의 반일운동 확대(『광주민국일보』, 1929.12.29) 1116
247) 한국 학생 반일폭동의 진상(『광주민국일보』, 1929.12.30) 1117
1930년대 초 1119
248) 점차 성숙되어가는 한인의 민족운동(『중앙일보』, 1930.1.13) 1119
249) 한국독립운동의 바른길(『민국일보』, 1930.1.14) 1120
250) 한국 인민의 피눈물(『민국일보』, 1930.1.14) 1123
251) 시론-한국민족해방과 혁명운동의 경과(『민국일보』, 1930.1.21) 1125
252) 시론-한국민족해방과 혁명운동의 경과(속)(『민국일보』, 1930.1.25) 1127
253) 동방 약소민족의 독립운동 열기(『중앙일보』, 1930.2.2) 1136
254) 절강성 집행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을 성원하고 위로하는 전보 발송(『민국일보』, 1930.2.5) 1139
255) 상해 거주 한교의 연합항일(『중앙일보』, 1930.2.6) 1139
256) 하북성·천진시당무정리위원회, 한국독립운동 원조 약속(『민국일보』, 1930.2.8) 1141
257) 조선민족혁명의 과거와 현재(『중앙일보』, 1930.2.9) 1142
258) 강소성당부, 한국국민당에 동정의 뜻을 전하는 전보 발송(『민국일보』, 1930.2.10) 1147
259) 상해시 학생연합회, 한국독립운동 원조의 뜻을 담은 전보 발송(『민국일보』, 1930.2.11) 1147
260) 동포들이여, 한인들의 외침을 들어보라!(『민국일보』, 1930.2.11) 1148
261) 조선민족혁명의 과거와 현재(속)(『중앙일보』, 1930.2.11) 1150
262) 강소성당부 한국국민당에 보낸 전보(『신보』, 1930.2.12) 1157
263) 상해시 총공회, 한국혁명운동에 대한 원조를 호소(『민국일보』, 1930.2.12) 1157
264) 중국국민당 상해시 제6구당부, 조선혁명을 성원하는 '민중에게 고하는 글' 발표(『민국일보』, 1930.2.13) 1158
265) 중국국민당 각급 당부 다투어 조선혁명 성원을 표시(『민국일보』, 1930.2.15) 1159
266) 조선총독부가 선포한 한국 통치방침(『중앙일보』, 1930.2.16) 1161
267) 한족동맹회 '중국동지들에게 고하는 글' 발표(『중앙일보』, 1930.2.16) 1162
268) 한국혁명운동을 성원하는 상해시 각급 당부의 통전(『민국일보』, 1930.2.20) 1163
269) 상해시 각급 당부, 약소민족혁명운동에 대한 원조를 호소(『민국일보』, 1930.2.22) 1165
270) 강서성 남창시집행위원회, 한국독립운동 원조의 뜻을 담은 통전 발표(『중앙일보』, 1930.2.24) 1167
271) 인도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원조를 호소하는 각지 당부의 통전(『민국일보』, 1930.2.28) 1167
272) 어제 한국 독립을 기념(『신보』, 1930.3.2) 1170
273) 한국인 안창호가 오매를 위해 환송만찬을 준비(『신보』, 1930.3.9) 1170
274) 중앙정치학교 국민당지부, 한국혁명 성원을 청하는 선언 발표(『중앙일보』, 1930.3.15) 1171
275) 중국국민당 중앙정치학교당부, 한국혁명 원조를 호소하는 통전 발표(『민국일보』, 1930.3.18) 1172
276) 동삼성 한인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중앙일보』, 1930.5.1) 1173
277) 한국민족독립운동을 원조하자! 매국적 군벌 염석산 타도를 위해 노력하자!(『중앙일보』, 1930.5.17) 1174
278) 한국혁명당 동북에서 폭동 일으켜(『중앙일보』, 1930.8.11) 1176
279) 한국독립운동의 개황(『중앙일보』, 1930.8.29) 1179
280) 한국독립운동의 개황(속)(『중앙일보』, 1930.8.30) 1181
281) 일본통치 하의 조선(『중앙일보』, 1931.4.1) 1183
282) 한국당인 남경에 대표 파견(『신보』, 1931.5.14) 1185
283) 조선사건의 대처방법(『중앙일보』, 1931.7.19) 1185
284) 사설-조선의 비애(『중앙일보』, 1931.7.31) 1186
285) 어느 조선인(『중앙일보』, 1931.8.22) 1188
286) 한국교포 국치기념 모임(『신보』, 1931.8.30) 1190
287) 1930년의 세계민족운동(속)(『중앙일보』, 1931.9.1) 1191
288) 1930년의 세계민족운동(속)(『중앙일보』, 1931.9.2) 1192
289) 1930년의 세계민족운동(속)(『중앙일보』, 1931.9.4) 1193
290) 1930년의 세계민족운동(속)(『중앙일보』, 1931.9.8) 1195
291) 1930년의 세계민족운동(속)(『중앙일보』, 1931.9.9) 1196
292) 한국 교포 어제 전체회의에서 6가지 사항을 결의(『신보』, 1931.9.27) 1197
293) 조선 교민 기자간담회 조직 후 중·한 민족의 연합을 호소(『신보』, 1931.10.23) 1198
294) 한국 지사 이봉창 약력(『신보』, 1932.1.12) 1198
295) 삼한 혁명운동 민족주의파 대독립당 조직(『신보』, 1932.1.16) 1199
296) 중국·한국·대만 등 3단체 일본군에게 자성을 촉구(『신보』, 1932.2.28) 1199
297) 홍구공원 폭탄 폭발사건 제2편(『신보』, 1932.5.3) 1200
298) 일본 각 요인의 부상 상황(『신보』, 1932.5.3) 1200
299) 외국인 안창호 체포를 논함(『신보』, 1932.5.3) 1202
300) 중광 형제의 재회(『신보』, 1932.5.4) 1204
301) 중광 오른쪽 다리 절단(『신보』, 1932.5.6) 1205
302) 한국 중요인물 상해 떠남(『신보』, 1932.5.15) 1206
303) 외교부 프랑스에 항의제출(『신보』, 1932.5.24) 1206
304) 일본군사령관 백천 어제 병원에서 사망(『신보』, 1932.5.27) 1206
305) 안창호 조선으로 압송(『신보』, 1932.6.4) 1208
306) 한인애국단 일본 요인 폭사 모의(『신보』, 1932.7.14) 1209
307) 한인애국단 대련사건에 대하여 변호(『신보』, 1932.8.13) 1210
308) 주미 한국위원단 주석 한국인의 항일결심을 표시(『신보』, 1932.10.24) 1212
309) 홍구공원 폭탄안 윤봉길 일본으로 압송(『신보』, 1932.11.26) 1212
310) 중·한 연합군 첩보(사평가 수복·이도구 대전)(『신보』, 1932.11.29) 1212
311) 시정부 어제 프랑스·일본에 항의 제출(『신보』, 1932.12.4) 1214
312) 일본이 김철을 체포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신보』, 1932.12.6) 1217
색인 1220
원문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39 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