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지
판권기
간행사 / 이태진
해제
일러두기
목차
김창록 33
1. 일본에서의 생활 35
2. 해방 직후의 상황 38
3. 순경 공채로 경찰에 들어가다 40
4. 좌익의 야산대 활동 43
5. 전쟁 발발과 국민보도연맹 47
6. 토벌작전 참가 50
7. 경찰의 전투력 56
8. 동래경찰서에서의 활동 57
9. 4·19혁명 후 경찰에 대한 공격 59
10. 친일 경찰서장 축출 61
11. 경찰관의 자세 63
박노철 65
1. 할아버지, 아버지도 경찰 67
2. 일본군 지원병으로 가다 67
3. 해방 후의 경찰 입문 70
4. 지역의 독자적 전투경찰 조직으로 '결사대'를 조직 73
5. 여순사건과 구례 77
6. '공비' 토벌과 주민 소개(疏開) 81
7. 후퇴 행로 : 담양-순천-보성-강진-영암-청산도(거문도)-욕지도-부산 83
8. 진동작전 : "미군들 후원을 안 받으문 아무것도 안 돼" 87
9. 국민보도연맹 : "지시가 내려온 건 사실이여" 89
10. "구례에서는 국민보도연맹원들 다 살려줬어" 90
11. 군의 위세와 휴전 후 전투 92
12. 때 이른 경찰 퇴직 93
13. 지금의 사는 이야기 94
박점문 97
1. 열 다섯 살에 일본으로 99
2. 소집영장과 평양에서의 훈련 99
3. 1942년 6월, 용산에 배치 100
4. 오키나와 출격을 위해 제주도에서 대기 101
5. 경찰에 들어간 계기 103
6. 미군정기 경찰시험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경사시험 104
7. 용산 철도 파업 경비 106
8. 첫 발령지 하성지서 106
9. 월곶지서와 일제 강점기 경찰의 잔재 108
10. 정보과 활동 : 야산대 109
11. 정보과 활동 : 전단 작성, 참호 급습 116
12. 정보과 활동 : 도민증 위조와 빨치산 118
13. 김포지역 국민보도연맹과 학살 121
14. 한국전쟁, 처제 덕에 살아난 가족 125
15. 한국전쟁과 다부동전투 127
16. 여자경찰 131
17. 김포 농업협동조합 132
18. 첫 월급 135
19. 어머니와 아버지 136
박증효 137
1. 일본에서의 생활 139
2. 귀국과 부산부청(시청) 근무시절 139
3. 경찰이 된 까닭 142
4. 특경대 근무 시기의 업무 143
5. 산청 가는 길은 골로 가는 길 144
6. 산청경찰서 신안지서 공방전 146
7. 산청경찰서 습격 148
8. 보도연맹 관련 기억 153
9. 산청경찰서 근무 시기의 비화 155
l0. 반란군 소탕 작전회의 156
11. 후퇴와 군북면에서의 소집 157
12. 경찰의 마산 외곽 공방전 160
13. 정봉조 서장에 대한 기억 165
14. 산청 수복 이후의 활동 166
15. 후방, 창녕경찰서로 발령과 또다시 황야산 참호 근무 168
16. 통영경찰서와 기동대 근무 171
17. 고성경찰서 근무시기 대공 관련 업무 172
18. 부마경찰서 그리고 38년 3개월 경찰관으로 근무 173
19. 늦은 결혼과 가족들 175
20. 군경마찰 사건 178
21. 이승만정권 시절과 박정희정권 시절의 차이 181
이석원 183
1. 대전에서의 어린 시절 185
2. 일제 강점기 영등포 방직공장 185
3. 해방 188
4. 여자경찰 창설과 지원 과정 188
5. 미군정기 여자경찰 시험 190
6. 초임시절 여자경찰관의 임무 191
7. 서울경찰전문학교 교육 과정 192
8. 한국전쟁과 피난 193
9. 포로가 된 과정 196
10. 태극대 활동 198
11. 수복과 통행증(도민증) 발급 업무 199
12. 성매매여성 취체 202
13. 풍속 위반 단속 206
14. 선거와 경찰유치원 207
15. 5·16과 여자경찰관 정리 210
16. 월급과 경찰관 대우 212
17. 정보과 기록실 근무 215
18. 경사 승진과 시험 215
19. 불우아동 구호와 BBS결연사업 218
20. 성범죄 221
찾아보기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