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지
판권기
[사진]
간행사 / 이태진
해제 / 한상도
범례
목차
중국보도기사 II 56
1930년대 후반(이동 시기) 58
1) 한국 혁명당, 복국운동을 위해 통일전선 조직(『신보』, 1937. 9. 4) 58
2) 철발굽 아래 생활하는 조선 민족 망국의 설움(『신보』, 1937. 9. 19) 58
3) 조선 국민은 적들을 도와 군에 참군하지 않았다(『신보』, 1937. 9. 29) 59
4) 조선혁명당 중·한단결, 공동항일을 촉구하는 선언 발표(『신보』, 1937. 10. 14) 60
5) 한국광복단체, 9개국 회의에 일본에 대한 무력증강 촉구(『신보』, 1937. 10. 31) 61
6) 조선민족혁명당이 해내외 조선동포에 드리는 글을 방송(『신보』, 1937. 11. 3) 62
7) 한국 광복운동 항일역량을 집중하여 연합단체 조직(『신보』, 1937. 11. 6) 65
8) 사설-조선 독립운동기념일의 감상(천진 『대공보』, 1938. 3. 1) 66
9) '8.29' 조선국치일을 기념하며(천진 『대공보』, 1938. 8. 29) 68
10) 조선국민당, 장위원장에게 공문 발송하여 지구전 정책을 옹호(『신보』, 1938. 11. 29) 72
11) 한국독립운동 기념식(중경 『대공보』, 1939. 2. 28) 72
12) 조선 인민의 포효(중경 『대공보』, 1939. 3. 2) 73
13) 한국 독립선언 20주년 기념선언(『유주일보』, 1939. 3. 3) 74
14) 항적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장사를 위한 위문금 모금 공연-한국공작대 위문단 오늘 저녁부터 공연 시작(『유주일보』, 1939. 3. 4) 76
15) 항적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장사를 위한 한국광복진선 공작대 위문단 공연 관련 특간(1)(『유주일보』, 1939. 3. 4) 77
16) 항적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장사를 위한 한국광복진선 공작대 위문단 공연 관련 특간(2)(『유주일보』, 1939. 3. 5) 82
17) 유주에 머물고 있는 전체 부상장병이 삼가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 동지 및 각계 동포에게 경의를 표하며 올리는 글(『유주일보』, 1939. 3. 8) 88
18) 조선의용대, 모처에서 매복 중 적 수십 명 섬멸(중경 『대공보』, 1939. 4. 5) 89
19) 한국독립당 영수 김구 선생 모친상(천진 『대공보』, 1939. 4. 30) 90
20) 계림의 조선의용대(『유주일보』, 1939. 5. 19) 91
21) 조선의용대의 적 사병 감화(『유주일보』, 1939. 6. 4) 94
22) 한국망국기념(중경 『대공보』, 1939. 8. 29) 95
23) 동북의 조선혁명군, 조선 경내로 진입하여 적과 격전(중경 『대공보』, 1939. 8. 30) 95
24) 조선인 포로들 전선으로(중경 『대공보』, 1939. 9. 10) 96
25) 고려 포로 39인 지원병 대오에 가입(『신보』, 1939. 9. 10) 98
26) 중경의 한국 청년 화북으로(『신보』, 1939. 11. 12) 99
1940년대 전반(중경 시기) 100
27) 중경의 한국인 독립운동 기념식(『신보』, 1940. 2. 29) 100
28) 중국·조선·대만은 한 형제(천진 『대공보』, 1940. 4. 13) 100
29)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반전동맹동지를 환영하는 특간(『유주일보』, 1940. 4. 30) 101
30) 중·한합작에 대한 소견(중경 『대공보』, 1940. 7. 7 ; 천진 『대공보』, 1940. 7. 7) 103
31) 조선 망국 30주년(중경 『대공보』, 1940. 8. 29) 108
32) 조선 망국 30주년 기념(『신보』, 1940. 8. 29) 108
33) 중경 체류 한국인 의식 거행(『신보』, 1940. 8. 30) 109
34) 한국독립당, 중국 경내에서 광복군 조직(중경 『대공보』, 1940. 9. 13) 109
35) 조선의 농민(『신화일보』, 1940. 9. 13) 109
36)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내일 성립(중경 『대공보』, 1940. 9. 16) 113
37) 내일 한국 광복군 성립(『신보』, 1940. 9. 17) 113
38) 한국광복군 성립(천진 『대공보』, 1940. 9. 18) 113
39)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위원회의 포고문 (계속)(천진 『대공보』, 1940. 9. 19) 115
40) 사설-한국광복군 성립을 축하하며(중경 『대공보』, 1940. 9. 19 ; 천진 『대공보』, 1940. 9. 19) 117
41) 한국 광복군 성립대회(『신보』, 1940. 9. 19) 119
42) 한국 기독교도의 항일운동(중경 『대공보』, 1940. 9. 28) 120
43) 김약산의 연설-중국 항전과 조선혁명(『신화일보』, 1940. 9. 29) 121
44) 조선의용대 제3대, 호남과 강서 일대에서 활동(중경 『대공보』, 1940. 10. 5) 125
45) 조선의용대 탄생 2주년(중경 『대공보』, 1940. 10. 9) 126
46) 조선의용대의 과거와 금후(중경 『대공보』, 1940. 10. 9) 127
47) 지난 2년간 얻은 교훈과 금후의 공작(『신화일보』, 1940. 10. 9) 129
48) 조선의용대 확대간부회의 소집(중경 『대공보』, 1940. 10. 24) 133
49) 한국광복군 군사인원 조만간 서안으로 옮길 예정(천진 『대공보』, 1940. 11. 14) 134
50) 조선지원군 서안에 도착(『신보』, 1940. 11. 18) 134
51) 조선의용대 낙양으로 가서 활동(『신보』, 1940. 12. 15) 134
52) 동방민족문화의 연합(『신화일보』, 1940. 12. 29) 135
53) 조선 민족과 반침략(『신화일보』, 1941. 1. 23) 136
54) 한국 3.1절 22주년 기념대회에서 '삼가 중국동포에게 고하는 글' 발표(『신화일보』, 1941. 3. 1) 137
55) 중경의 각 한교 단체, 어제 3.1혁명절 기념행사 거행(『신화일보』, 1941. 3. 2) 140
56) 한국독립운동 기념식(중경 『대공보』, 1941. 3. 2 ; 천진 『대공보』, 1941. 3. 2) 140
57) 조선인의 입장에서 본 삼민주의(『유주일보』, 1941. 4. 17) 141
58) 사설-반파시스트 국제통일전선을 위한 투쟁(『해방일보』, 1941. 6. 25) 142
59) 전시 조선 인민의 생활(『신화일보』, 1941. 8. 19) 144
60) 중경 한국임시정부, 어제 언론종사자 초청 간담회 개최(『신화일보』, 1941. 8. 29) 147
61) 한국임시정부의 선언(『신화일보』, 1941. 8. 29) 148
62) 우리의 형제 조선 민족이 노예로 전락한 날에 부치는 글(『신화일보』, 1941. 8. 29) 150
63) 한국 망국 31주년 기념식(천진 『대공보』, 1941. 8. 29) 152
64) 단평-한국독립운동(천진 『대공보』, 1941. 8. 29) 153
65) 한국광복군의 근황에 관한 한국광복군 참모장 이범석의 담화(『신화일보』, 1941. 9. 26) 154
66) 일구의 조선통치와 조선의 반일운동(상)(『신화일보』, 1941. 9. 26) 154
67) 일구의 조선통치와 조선의 반일운동(하)(『신화일보』, 1941. 9. 27) 158
68) 사설-동방 각 민족이여 단결하라(『해방일보』, 1941. 9. 30) 161
69) 한국임시의정원 의장 주최의 기자초청간담회(『신화일보』, 1941. 10. 3) 163
70) 목하 일구의 조선통치와 조선 국내의 반일운동(상)(『유주일보』, 1941. 10. 7) 163
71) 목하 일구의 조선통치와 조선 국내의 반일운동(하)(『유주일보』, 1941. 10. 8) 167
72) 조선민족해방사화(『해방일보』, 1941. 10. 16) 170
73) 조선민족해방사화(속완)(『해방일보』, 1941. 10. 17) 173
74) 한국임시의정원 중경회의 거행(『신보』, 1941. 10. 17) 176
75) 한국임시의정원 개원(『신화일보』, 1941. 10. 17) 177
76) 한국임시의정원 소식(천진 『대공보』, 1941. 10. 17) 177
77) 화북의 반전 일병, 동방 반파시스트 대회에 호응하는 통전 발표(『해방일보』, 1941. 10. 20) 178
78) 사설 동방 각 민족 반파시스트 대회 개막을 축하하며!(『해방일보』, 1941. 10. 27) 178
79) 동방 각 민족 반파시스트 대회 개막(『해방일보』, 1941. 10. 27) 180
80) 모택동 동지, 동방 반파시스트 대표대회에서 각 민족의 단결강화를 호소(『해방일보』, 1941. 10. 31) 183
81) 동방 반파시스트 대회의 성공적 마감(『해방일보』, 1941. 11. 1) 186
82) 손중산 선생 탄생기념일 감언(천진 『대공보』, 1941. 11. 12) 188
83) 사설-원동의 대국(『해방일보』, 1941. 11. 14) 190
84) 동방 각 민족의 반파시스트 통일전선을 건립하자(『해방일보』, 1941. 11. 25) 193
85) 동방 각 민족의 반파시스트 통일전선을 건립하자(속완)(『해방일보』, 1941 11. 26) 199
86) 한국독립당 인사, 공동항일성명 발표(『신화일보』, 1941. 12. 19) 205
87) 한국독립당 성명 발표(중경 『대공보』, 1941. 12. 19) 205
88) 한국임시정부 소식(천진 『대공보』, 1942. 1. 14) 206
89) 사설-세계 반침략진선의 전략 방침(『해방일보』, 1942. 1. 22) 206
90) 사설-세계 반침략진선의 전략 방침과 중국(『해방일보』, 1942. 2. 12) 209
91) 전한민족대회 다음 달 초 워싱턴에서 거행(중경 『대공보』, 1942. 2. 13) 211
92) 조선의용대원 4명 순직(중경 『대공보』, 1942. 2. 19) 211
93) 한인의 국권회복운동(중경 『대공보』, 1942. 2. 24 ; 천진『대공보』, 1942. 2. 24) 212
94) 미주의 한교들 대규모 집회 예정(『신화일보』, 1942. 2. 24) 212
95) 사설-조선문제(중경 『대공보』, 1942. 2. 27 ; 천진 『대공보』, 1942. 2. 27) 213
96) 조선의 4열사(중경 『대공보』, 1942. 2. 28) 215
97) 중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들, 오늘 '3.1'운동 기념식 거행(『신화일보』, 1942. 3. 1) 215
98) 조선 '3.1'혁명운동 23주년 특집-한국독립운동과 임시정부(『신화일보』, 1942. 3. 1) 216
99) '3.1'운동과 한국독립운동의 새로운 발전(『신화일보』, 1942. 3. 1) 224
100) 사설-조선 3.1혁명운동 23주년을 기념하며(『신화일보』, 1942. 3. 1) 228
101) 조선 '3.1'운동의 의의(『신화일보』, 1942. 3. 1) 230
102) 미국 정부 조만간 조선 망명정부 승인 예정(『해방일보』, 1942. 3. 1) 232
103) 미국, 한국독립 승인 고려(천진 『대공보』, 1942. 3. 1) 232
104) 국권회복을 위한 한인들의 단결된 모습(중경 『대공보』, 1942. 3. 2 ; 천진 『대공보』, 1942. 3. 2) 234
105) 미국에서 조선자유회의 성립(『해방일보』, 1942. 3. 2) 237
106) 미주한교, 한국임시정부 및 26개국 공동선언 옹호 표시(『신화일보』, 1942. 3. 2) 238
107) 갱생의 태극기 아래서(『신화일보』, 1942. 3. 2) 238
108) 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한국임시정부 옹호 선언(천진 『대공보』, 1942. 3. 11) 240
109) 조선정세(중경 『대공보』, 1942. 3. 22) 241
110) 한국 독립문제에 관한 손철생 원장의 강연(『신화일보』, 1942. 3. 23) 241
111) 미주 한교 지원군 조직(『신화일보』, 1942. 3. 30) 242
112) 미주 한교, 손 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담은 전보 보내(『신화일보』, 1942. 4. 4) 243
113) 사설-조선의 해방(중경 『대공보』, 1942. 4. 11) 243
114) 한국임시정부 성립기념(중경 『대공보』, 1942. 4. 11) 245
115) 한국임시정부, 중외 인사 초청 다과회 베풀어(『신화일보』, 1942. 4. 11) 245
116) 한국임시정부, 어제 성립 23주년 기념식 거행(『신화일보』, 1942. 4. 12) 246
117) 한국임시정부, 어제 성립 23주년 기념식 거행(중경 『대공보』, 1942. 4. 12) 247
118) 폭발 직전의 조선(『유주일보』, 1942. 5. 8) 247
119) 한국 혁명계의 선배 현하죽 동지를 추모하며(『신화일보』, 1942. 5. 11) 251
120) 김약산 씨, 내일 기자초청 간담회에서 조선 정세 보고 예정(『신화일보』, 1942. 5. 17) 254
121) 국내의 병원이 고갈되자 적들은 조선에서도 징병제를 실시하기로 결정(『신화일보』, 1942. 5. 19) 255
122) 김약산 씨, 중국 신문기자 초대(『신화일보』, 1942. 5. 19) 256
123) 한국의 혁명역량 통일(중경 『대공보』, 1942. 5. 19 ; 천진 『대공보』, 1942. 5. 19) 256
124) 사설-조선 징병제 실시를 통해 본 일본의 국력 소모(중경 『대공보』, 1942. 5. 21 ; 천진 『대공보』, 1942. 5. 21) 258
125) 조선의용대 조만간 광복군에 편입 예정(『신화일보』, 1942. 5. 21) 261
126) 조선문제에 관한 라티모어의 강연(『해방일보』, 1942. 6. 2) 261
127) 한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어제 중경의 신문종사자 초청하여 간담회 개최(중경 『대공보』, 1942. 6. 13) 263
128) 한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의 담화(『신화일보』, 1942. 6. 13) 263
129) 세계대세와 한국광복군(『신화일보』, 1942. 6. 14) 265
130) 한국광복군의 연합국일 축하(『신화일보』, 1942. 6. 15) 270
131) 소기 신임총독 조선 도착(중경 『대공보』, 1942. 6. 21) 270
132) 한인들의 반항(중경 『대공보』, 1942. 6. 23) 271
133) 한인들이여 속히 일어나라(중경 『대공보』, 1942. 7. 5) 271
134) 역사의 기적(『신화일보』, 1942. 7. 6) 271
135) 한국광복군의 항전 5주년 축하 전문(『신화일보』, 1942. 7. 7) 273
136) 중한문화협회 9월 17일 성립 예정(중경 『대공보』, 1942. 8. 21) 273
137) 재미한교, 복국운동 진행(『신화일보』, 1942. 8. 27) 273
138) 한국임시정부의 국치 32주년 기념행사(『신화일보』, 1942. 8. 28) 274
139) 한국망국기념일(중경 『대공보』, 1942. 8. 28) 275
140) 화북조선독립동맹 성립(『해방일보』, 1942. 8. 29) 275
141) 오늘은 한국 망국기념일(천진 『대공보』, 1942. 8. 29) 278
142) 한국임시정부 국치기념선언 발표(『신화일보』, 1942. 8. 29) 280
143) 독자투고-조선 '8.29' 국치 제23주년 기념선언(『신화일보』, 1942. 8. 29) 282
144) 압록강을 건너 조국산하를 광복하자(『신화일보』, 1942. 9. 17) 285
145) 한국광복군 성립 기념행사(『신화일보』, 1942. 9. 17) 288
146) 단결하여 복국을 이루자(『신화일보』, 1942. 9. 17) 288
147) 중국혁명을 위해 희생된 조선의용군 동지 추도 특간(『해방일보』, 1942. 9. 20) 290
148) 한국과 대만 출신 일본군 병사의 반전폭동(『신화일보』, 1942. 9. 27) 303
149) 한국광복군, 북경·천진 일대에서 활약(『신화일보』, 1942. 10. 3) 304
150) 한국광복군, 하북·하남 접경지대에서 맹활약(『신화일보』, 1942. 10. 6) 305
151) 한국광복군, 한단에서 전과 올려(중경 『대공보』, 1942. 10. 7) 305
152) 한국광복군, 중국 군사당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전문 발송(중경 『대공보』, 1942. 10. 10 ; 천진 『대공보』,1942. 10. 10) 306
153) 중화문화협회 성립, 장 위원장은 이를 기념하여 특별히 훈사 내려(『유주일보』, 1942. 10. 12) 306
154) 중한문화협회 어제 성립(중경 『대공보』, 1942. 10. 12) 308
155) 단평-중한문화협회의 성립을 축하하며(중경 『대공보』, 1942. 10. 12) 310
156) 한국의정회 제34차회의 개막(중경 『대공보』, 1942. 10. 26 ; 천진 『대공보』, 1942. 10. 26) 311
157) 한국임시의정원 개원(『신화일보』, 1942. 10. 26) 311
158) 한국의정회 신임의장에 홍진 씨 임명(중경 『대공보』, 1942. 10. 27 ; 천진 『대공보』, 1942. 10. 27) 312
159) 한국임시의정원, 홍진씨를 신임의장으로 추대(『신화일보』, 1942. 10. 27) 312
160) 한국임시의정원 의회 속개(『신화일보』, 1942. 10. 28) 313
161) 동방 각 약소민족의 광복운동 적극 진행 중(중경 『대공보』, 1942. 11. 8) 313
162) 중한문화협회, 어제 한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초대하여 다과회 열어(중경 『대공보』, 1942. 11. 11) 314
163) 단결은 존망의 관건(『신화일보』, 1942. 11. 11) 315
164) 한국 건국기념절(『신화일보』, 1942. 11. 11) 318
165) 중한문화협회, 한국 의원 초대연 개최(『해방일보』, 1942. 11. 14) 318
166) 한국임시의정원 폐막(『신화일보』, 1942. 11. 20) 319
167) 사설-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라!(『유주일보』, 1942. 11. 22) 319
168) 한국광복군, 3개 지대로 개편(『신화일보』, 1942. 11. 23) 322
169) 화북의 적 점령구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거류민'(『신화일보』, 1942. 11. 23) 322
170) 한국광복군 제2지대 개편 완료(『신화일보』, 1942. 11. 25) 325
171) 한국독립문제에 관한 한인들의 의견(『신화일보』, 1942. 11. 27) 325
172) 한국광복군의 장비와 보급은 국군과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신화일보』, 1942. 12. 2) 326
173) 김약산의 라디오 연설(『신화일보』, 1942. 12. 4) 326
174) 태평양학회 캐나다에서 개막(『신화일보』, 1942. 12. 5) 327
175) 김약산, 한국광복군 부총사령에 취임(『신화일보』, 1942. 12. 6) 327
176) 김약산, 한국광복군 부총사령에 취임(천진 『대공보』, 1942. 12. 6) 327
177) 한국광복군 제1지대, 오늘 순국열사 추도식 거행(『신화일보』, 1942. 12. 12) 328
178) 중경 거주 한인, 광복군 열사 추념식 거행(『신화일보』, 1942. 12. 13) 328
179) 각 전구에서 분투하고 있는 한국광복군(『신화일보』, 1943. 1. 5) 329
180) 화북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의 아들 딸(『신화일보』, 1943. 1. 10) 330
181) 전후 한국독립문제-국제 공동관리는 절대 찬동할 수 없어(중경『대공보』, 1943. 2. 1 ; 천진『대공보』, 1943. 2. 1) 333
182) 조선민족혁명당 조직개편(중경 『대공보』, 1943. 2. 26) 335
183) 한국임시정부, '3.1'절 기념대회 주비(『신화일보』, 1943. 2. 26) 336
184) 한국광복군의 3.1혁명 기념행사(『신화일보』, 1943. 2. 28) 336
185) 한국 '3.1'기념대회에서 발표된 '중국 동포에게 고하는 글'(요약문)(『신화일보』, 1943. 3. 1) 336
186) '3.1'대혁명 정신을 널리 알리자(『신화일보』, 1943. 3. 1) 338
187) 사설-한국 민족의 단결과 투쟁방향(『신화일보』, 1943. 3. 1) 341
188) 사설-조선의 독립해방을 미리 경축하며(중경 『대공보』, 1943. 3. 1 ; 천진 『대공보』, 1943. 3. 1) 343
189) 오늘은 한국혁명기념일(중경 『대공보』, 1943. 3. 1 ; 천진 『대공보』, 1943. 3. 1) 346
190) '3.1'절은 원동민족 해방의 첫 번째 외침이었다(중경 『대공보』, 1943. 3. 1 ; 천진『대공보』, 1943. 3. 1) 347
191) '3.1'혁명을 기념하는 한국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식과 노력(중경 『대공보』, 1943. 3. 1 ; 천진 『대공보』, 1943. 3. 1) 350
192) '3.1'혁명정신 해석(중경 『대공보』, 1943. 3. 1 ; 천진 『대공보』, 1943. 3. 1) 353
193) 단결하여 복국을 이루자(『해방일보』, 1943. 3. 1) 356
194) 조선의 독립군운동(『해방일보』, 1943. 3. 1) 357
195) '3.1'운동의 개황과 경과(『해방일보』, 1943. 3. 1) 362
196) 연안의 조선우인들 '3.1'혁명 기념행사 거행(『해방일보』, 1943. 3. 2) 370
197) '3.1'대혁명과 한국임시정부(『신화일보』, 1943. 3. 2) 372
198) 어제 가릉빈관에서 한국혁명기념식 거행(중경 『대공보』, 1943. 3. 2 ; 천진 『대공보』, 1943. 3. 2) 375
199) 사설-어떻게 동아의 독립된 인민이 될 것인가(중경 『대공보』, 1943. 3. 2) 376
200) 산서성서북행정공서, 조선 교민의 항일운동에 대한 협조방법 공포(『해방일보』, 1943. 3. 29) 379
201) 태평양학회 '태평양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의 보고서 발표(『신화일보』, 1943. 4. 8) 380
202) 한국 독립문제(『신화일보』, 1943. 5. 10) 382
203) 전후 한국문제에 관한 공개서한(중경 『대공보』, 1943. 6. 11 ; 천진 『대공보』, 1943. 6. 11) 383
204) 전후 한국문제에 관한 공개서한(속)(중경 『대공보』, 1943. 6. 12 ; 천진 『대공보』, 1943. 6. 12) 386
205) 한국임시정부, 임삼 주석의 서거에 조의 표시(중경 『대공보』, 1943. 8. 5) 393
206) 조선 혁명지사에게 거는 기대와 바람(『신화일보』, 1943. 8. 29) 394
207) 한국광복군 성립 3주년 기념식 거행(중경 『대공보』, 1943. 9. 16 ; 천진 『대공보』, 1943. 9. 16) 397
208) 오늘은 한국광복군 성립 3주년 기념일(『신화일보』, 1943. 9. 17) 397
209) 어제 한국광복군 성립 3주년 기념대회 거행(『신화일보』, 1943. 9. 18) 398
210) 한국광복군 성립 3주년(중경 『대공보』, 1943. 9. 18 ; 천진 『대공보』, 1943. 9. 18) 400
211) 한국임시정부 장 주석에게 축전(중경 『대공보』, 1943. 10. 10) 400
212) 사설-조선독립을 논함(중경 『대공보』, 1943. 10. 12 ; 천진 『대공보』, 1943. 10. 12) 401
213) 중·한이 함께 손을 맞잡다(중경 『대공보』, 1943. 10. 12) 404
214) 한국건국기념일(중경 『대공보』, 1943. 10. 31) 407
215) 전후 한국의 독립문제에 관한 한국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 씨의 성명(중경 『대공보』, 1943. 12. 3) 408
216) 망국 후 조선에서 행해진 일구의 압박과 착취의 실상(『신화일보』, 1943. 12. 7) 408
217) 한국독립과 세계평화(『신화일보』, 1943. 12. 13) 409
218) 한국독립을 돕자(중경 『대공보』, 1943. 12. 20) 410
219) 사설-한국 내부에서 반일운동을 불러일으키자!(『신화일보』, 1943. 12. 21) 411
220) 한국해방을 쟁취하자(중경 『대공보』, 1943. 12. 22) 413
221) 한국의 독립과 중립(중경 『대공보』, 1943. 12. 26 ; 천진 『대공보』, 1943. 12. 26) 414
222) 조선은 마땅히 독립되어야 한다(중경 『대공보』, 1944. 1. 21) 417
223) 한국광복군 총사령 이청천, 조만간 중경으로 귀환 예정(『신화일보』, 1944. 2. 19) 417
224) 한국임시정부 대미성명 발표(중경 『대공보』, 1944. 3. 1 ; 천진 『대공보』, 1944. 3. 2) 418
225) 한국혁명기념일 행사(중경 『대공보』, 1944. 3. 1 ; 천진 『대공보』, 1944. 3. 2) 418
226) 오늘은 한국혁명기념일(『신화일보』, 1944. 3. 1) 421
227) 한인의 단결된 모습(중경 『대공보』, 1944. 4. 26 ; 천진 『대공보』, 1944. 4. 26) 421
228) 한국임시정부 개조(『신화일보』, 1944. 4. 26) 422
229) 사설-한국의 민주단결(『신화일보』, 1944. 4. 30) 423
230) 한국임시정부, 중국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전보 발송(천진 『대공보』, 1944. 5. 6) 425
231) 한국임시정부 각부 수장 선출(천진 『대공보』, 1944. 5. 11) 425
232) 한국임시정부 신임 부장 7명 어제 취임선서식(중경 『대공보』, 1944. 5. 16 ; 천진 『대공보』, 1944. 5. 16) 426
233) 한국임시정부 신임 부장 7명의 취임선서식 거행(『신화일보』, 1944. 5. 16) 426
234) 중한문화협회, 한국임시정부 요인들을 위한 환영식 거행(중경 『대공보』, 1944. 5. 19 ; 천진 『대공보』, 1944. 5. 19) 427
236) 일요 논설-일본 민족의 침략성(중경 『대공보』, 1944. 5. 28) 428
236) 한국의 단결은 동아의 기쁨(중경 『대공보』, 1944. 5. 29 ; 천진 『대공보』, 1944. 5. 29) 433
237) 한국의 여성혁명가 박차정 여사 서거(『신화일보』, 1944. 6. 1) 434
238) 태평양전쟁의 새로운 단계(중경 『대공보』, 1944. 6. 18) 435
239) 한국광복군, 인도·버마전선에서 활약 중(중경 『대공보』, 1944. 6. 22 ; 천진 『대공보』, 1944. 6. 22) 436
240) 한국광복군은 동맹국의 작전에 적극 협조할 것(『신화일보』, 1944. 6. 22) 437
241) 한국임시정부 인사, 동맹국의 신속한 승인을 희망한다고 표시(『신화일보』, 1944. 7. 4) 437
242) 조선민족혁명당의 과거와 현재(『신화일보』, 1944. 7. 5) 438
243) 중국 항전과 한국독립(『신화일보』, 1944. 7. 7) 440
244) 중국 항전과 한국독립(중경 『대공보』, 1944. 7. 7 ; 천진 『대공보』, 1944. 7. 7) 442
245) 중·한 양국 요인 한자리에(중경 『대공보』, 1944. 7. 18 ; 천진 『대공보』, 1944. 7. 18) 444
246) 한국을 잊지말자(중경 『대공보』, 1944. 8. 15) 445
247) 조선-잊혀진 나라(『신화일보』, 1944. 8. 15) 446
248) 한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복간(『신화일보』, 1944. 8. 18) 446
249) 미국 하원 발렌타인 의원, 한인의 입경제한법 폐지를 제안(『신화일보』, 1944. 8. 23) 447
250) 한국임시정부, 4국회의에 전시 및 전후의 바람을 담은 전보 발송(중경 『대공보』, 1944. 8. 25) 448
251) 한국국치일(중경 『대공보』, 1944. 8. 25) 449
252) 한국의 오랜 한과 새로운 탄생(중경『대공보』, 1944. 8. 28) 449
253) 한국임시정부, 오늘 오전 국치기념일 행사 거행(중경 『대공보』, 1944. 8. 29 ; 천진 『대공보』, 1944. 8. 29) 451
254) 한국임시정부, 국치 34주년 기념대회 거행(『신화일보』, 1944. 8. 29) 452
255) 사설-단결하여 복국을 이루자!(『신화일보』, 1944. 8. 29) 455
256) 잊혀져서는 안 될 나라 한국(『신화일보』, 1944. 8. 29) 457
257) 재미 한교, 국치기념일 행사 거행(중경 『대공보』, 1944. 8. 31 ; 천진 『대공보』, 1944. 8. 31) 461
258) 한국광복군, 군관임명권 독자 행사(중경 『대공보』, 1944. 9. 1 ; 천진 『대공보』, 1944. 9. 1) 462
259) 전후 일본 처리(중경 『대공보』, 1944. 9. 8) 462
260) 국민참정회, 정부에 한국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의(천진 『대공보』, 1944. 9. 17) 463
261) 한국임시정부 외교부, 중화민국 참정회에 감사의 뜻 전해(중경 『대공보』, 1944. 9. 17 ; 천진 『대공보』, 1944. 9. 17) 464
262) 한국임시정부 외무부, 참정회에 감사의 뜻 전해(『신화일보』, 1944. 9. 17) 464
263) 중한문화협회, 공개강연회 정기 개최 예정(중경 『대공보』, 1944. 9. 20 ; 천진 『대공보』, 1944. 9. 20) 464
264) 한국임시정부 대표 구제선후총서 회의에 출석(『신화일보』, 1944. 9. 21) 465
265) 중한문화협회 주최의 좌담회 개최(『신화일보』, 1944. 9. 23) 465
266) 어제 중한문화협회 주최 좌담회 거행(중경 『대공보』, 1944. 9. 23 ; 천진 『대공보』, 1944. 9. 23) 466
267) 중한문화협회, 어제 성립 2주년 기념식 거행(중경 『대공보』, 1944. 10. 9) 466
268) 집단으로 귀순해 온 한국 출신 적군 병사 방문기(중경 『대공보』, 1945. 2. 4) 467
269) 적진을 탈출해 귀순한 한국 청년(천진 『대공보』, 1945. 2. 5) 471
270) 귀순한 한국 청년에 대한 환영식(중경 『대공보』, 1945. 2. 6) 471
271) 귀순한 한국 청년 병사(중경 『대공보』, 1945. 2. 9) 472
272) 일구의 침략기지가 된 한국의 현황(중경 『대공보』, 1945. 2. 21) 472
273) 한국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 홍군절 축전 발송(『신화일보』, 1945. 2. 23) 474
274) 중경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3.1'절 기념행사(중경 『대공보』, 1945. 2. 27) 474
275) 한국신당-신한민주당 성립(중경 『대공보』, 1945. 2. 28) 475
276) 한국임시정부의 대독선전포고(『신화일보』, 1945. 3. 1) 475
277) 한국, 독일에 선전포고(천진 『대공보』, 1945. 3. 2) 476
278) 중경 거주 한인들 '3.1'절 기념행사 거행(천진 『대공보』, 1945. 3. 2) 476
279) 사설-한국혁명의 현 단계(천진 『대공보』, 1945. 3. 3) 478
280) 한국구제총회 어제 중경에서 성립대회 개최(중경 『대공보』, 1945. 3. 16) 480
281) 한국임시정부, 샌프란시스코 회의 참가를 희망(중경 『대공보』, 1945. 3. 23) 480
282) 일본, 조선과 대만을 본토에 편입시킬 예정(중경 『대공보』, 1945. 4. 2) 481
283) 일본이 조선과 대만에 은혜를 베푸는 까닭(중경 『대공보』, 1945. 4. 3) 481
284) 한국임시정부, 미국에 대표 파견(천진 『대공보』, 1945. 4. 4) 482
285) 한국임시의정원 회기 확정(천진 『대공보』, 1945. 4. 5) 482
286) 한국임시정부, 샌프란시스코 회의 참가 갈망(중경 『대공보』, 1945. 4. 5 ; 천진 『대공보』, 1945. 4. 5) 482
287) 한국임시의정원 회기 확정(중경 『대공보』, 1945. 4. 5) 483
288) 한국임시정부 대표는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인가?(천진 『대공보』, 1945. 4. 9) 483
289) 한국임시의정원 어제 개원식 거행(중경 『대공보』, 1945. 4. 12 ; 천진 『대공보』, 1945. 4. 12) 484
290) 한국임시의정원, 루스벨트의 사망에 애도의 뜻 표시(『신화일보』, 1945. 4. 15) 484
291) 한국임시정부와 샌프란시스코 회의(중경 『대공보』, 1945. 4. 19 ; 천진 『대공보』, 1945. 4. 19) 485
292) 한국대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비공식적으로 참가(『신화일보』, 1945. 4. 27) 485
293) 조선 국내의 인민들 부단히 반일투쟁 전개(『해방일보』, 1945. 4. 28) 486
294) 한국임시정부, 샌프란시스코 회의 참가를 정식으로 요구(중경 『대공보』, 1945. 5. 4 ; 천진 『대공보』, 1945. 5. 4) 487
295) 인도·한국, 흑인과 유태인의 시선이 모두 집중된 샌프란시스코 회의(『신화일보』, 1945. 5. 6) 488
296) 사설-국제신탁통치제에 대한 우리의 견해(중경 『대공보』, 1945. 5. 8) 489
297) 한국구제총회협제위원회 어제 성립(중경 『대공보』, 1945. 5. 10) 492
298) 한국을 동방의 스위스로 만들자(중경 『대공보』, 1945. 5. 13 ; 천진 『대공보』, 1945. 5. 13) 492
299) 한국임시정부, 샌프란시스코 회의 참가 요구(중경 『대공보』, 1945. 5. 13 ; 천진 『대공보』, 1945. 5. 13) 496
300) 국제신탁통치제도(중경 『대공보』, 1945. 5. 14) 497
301) 사설-일본의 투항에 대한 우리의 견해(중경 『대공보』, 1945. 5. 16) 503
302) 한국 독립운동 역량을 증강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는 한적 포로를 석방하기로 결정(중경 『대공보』, 1945. 5. 16 ; 천진 『대공보』, 1945. 5. 16) 506
303) 신탁통치제에 대한 중국의 건의안 전문(중경 『대공보』, 1945. 5. 16) 507
304) 신탁통치제 수정방안 완성(중경 『대공보』, 1945. 5. 18) 509
305) 신탁통치의 목표 문제(중경 『대공보』, 1945. 5. 20) 511
306) 전후 일본을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중경 『대공보』, 1945. 5. 21) 511
307) 조선의 근황(『신화일보』, 1945. 5. 21) 512
308) 한국임시정부 대표, 샌프란시스코 회의 참가 무산(중경 『대공보』, 1945. 5. 22 ; 천진 『대공보』, 1945. 5. 22) 514
309) 한국의 앞날(중경 『대공보』, 1945. 5. 23) 515
310) 한국 포로 전원 한국광복군에 이관(중경 『대공보』, 1945. 5. 23 ; 천진 『대공보』, 1945. 5. 23) 515
311) 한국은 여전히 소련을 신뢰(중경 『대공보』, 1945. 5. 25 ; 천진 『대공보』, 1945. 5. 25) 516
312) 중한문화협회, 미국으로 출발하는 김규식·조소앙을 위한 환송회 개최(중경 『대공보』, 1945. 5. 25) 517
313) 한국임시정부, 얄타 회의에서 밀약이 체결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재차 열강에 대한 신뢰 표시(중경 『대공보』, 1945. 5. 28 ; 천진 『대공보』, 1945. 5. 28) 517
314) 한국임시정부, 미국에 대표 파견(중경 『대공보』, 1945. 6. 3 ; 천진 『대공보』, 1945. 6. 3) 518
315) 신탁통치제도(중경 『대공보』, 1945. 6. 18) 518
316) 한교 구제(중경 『대공보』, 1945. 6. 26) 519
317) 한국 지사 귀순(중경 『대공보』, 1945. 7. 16) 519
318) 한국독립당 대표대회 개회(중경 『대공보』, 1945. 7. 17) 520
319) 한국임시정부 김구 주석, 장 주석에게 항전승리 축전 보내(중경 『대공보』, 1945. 8. 14) 520
1940년대 중반(환국 시기) 522
320) 사설-일본이 투항했다!(중경 『대공보』, 1945. 8. 16) 522
321) 항복 후의 일본(중경 『대공보』, 1945. 8. 17) 526
322) 중경 거주 한인들 승리 경축(중경 『대공보』, 1945. 8. 18 ; 천진 『대공보』, 1945. 8. 18) 527
323) 소련군, 심양 수용소의 연합국 포로 석방(중경 『대공보』, 1945. 8. 25) 528
324) 소련군 계속 전진(중경 『대공보』, 1945. 8. 26) 529
325) 구제총서의 업무 확대(중경 『대공보』, 1945. 8. 26) 529
326) 미군, 조만간 조선에 진주(중경 『대공보』, 1945. 8. 28) 530
327) 중한문화협회, 한국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중경 『대공보』, 1945. 9. 7) 530
328) 한국임시정부 조만간 귀국 예정(중경 『대공보』, 1945. 9. 8 ; 천진 『대공보』, 1945. 9. 8) 531
329) 한인들 해방을 경축(중경 『대공보』, 1945. 9. 11) 532
330) 사설-조선해방을 축하하며(중경 『대공보』, 1945. 9. 12 ; 천진 『대공보』, 1945. 9. 12) 533
331) 전체 한국 민중, 장 주석의 은혜에 감사(중경 『대공보』, 1945. 9. 13 ; 천진 『대공보』, 1945. 9. 13) 536
332) 한국 정부 기자 초청간담회 개최(중경 『대공보』, 1945. 9. 14 ; 천진 『대공보』, 1945. 9. 14) 537
333)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목전의 사업(『신보』, 1945. 9. 14) 538
334) 한국광복군 성립 5주년(천진 『대공보』, 1945. 9. 17) 538
335) 한국임시정부, 그제 다과회 열어 동북지구 신임 수장 환영(천진 『대공보』, 1945. 9. 19) 539
336) 트루먼 대통령 조선문제에 관한 성명 발표(『신화일보』, 1945. 9. 20) 540
337) 한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담화(천진 『대공보』, 1945. 9. 23) 540
338) 한국임시정부의 군대 재편성(천진 『대공보』, 1945. 10. 2) 541
339) 조선혁명 영수 이승만씨 한성 도착(중경 『대공보』, 1945. 10. 17) 542
340) 이승만 씨, 김구 주석의 조속한 귀국을 희망(중경 『대공보』, 1945. 10. 19 ; 천진 『대공보』, 1945. 10. 19) 542
341) 한국임시정부 조만간 귀국(천진 『대공보』, 1945. 10. 20) 543
342) 한국망명정부 영수 김구 개인자격으로 귀국 예정(『신화일보』, 1945. 10. 21) 544
343) 한국광복군 총사령 이청천 어제 상해 도착(중경 『대공보』, 1945. 10. 23) 544
344) 한국혁명 영수 김구 등 내달 초 귀국(중경 『대공보』, 1945. 10. 30 ; 천진 『대공보』, 1945. 10. 30) 544
345) 한국혁명 영수 환송(중경 『대공보』, 1945. 11. 4) 546
346) 장 총재, 어제 한국 영수들의 환국을 축하하는 다과회 열어 환송(중경 『대공보』, 1945. 11. 5 ; 천진 『대공보』, 1945. 11. 5) 546
347) 사설-한국혁명 영수들의 귀국을 환송하며(천진 『대공보』, 1945. 11. 6) 548
348) 김구 주석 일행 상해를 출발하여 한국으로(천진 『대공보』, 1945. 11. 6) 550
349) 중한문화협회, 어제 한국임시의정원 의원들을 초대하여 다과회 개최(천진 『대공보』, 1945. 11. 11) 551
350) 한인들 김구 주석의 조속한 귀국을 갈망(중경 『대공보』, 1945. 11. 16 ; 천진 『대공보』, 1945. 11. 16) 552
351) 김구 등은 평민신분으로만 귀국이 가능(『신화일보』, 1945. 11. 16) 553
352) 미국 국무성 조선문제에 관한 성명 발표(『신화일보』, 1945. 11. 18) 553
353) 미국무성 성명 발표(천진 『대공보』, 1945. 11. 18) 555
354) 한인들, 김구의 빠른 귀국을 갈망(중경 『대공보』, 1945. 11. 19 ; 천진 『대공보』, 1945. 11. 19) 556
355) 김구 등 어제 상해 출발하여 한성에 도착(중경 『대공보』, 1945. 11. 24) 557
356) 한국 영도자 김구(『신보』, 1945. 11. 24) 557
357) 김구 씨 한성 도착(『신화일보』, 1945. 11. 25) 559
358) 김구 일행 한성 도착(중경 『대공보』, 1945. 11. 25 ; 천진 『대공보』, 1945. 11. 25) 559
359) 김구 씨는 한인의 단결을 이끌어 낼 충분한 능력을 갖춘 인물(천진 『대공보』, 1945. 11. 26) 560
360) 김구 조선을 두 군사구역으로 나누는 것을 반대(『신보』, 1945. 11. 26) 561
361) 김구의 담화(중경 『대공보』, 1945. 11. 27 ; 천진 『대공보』, 1945. 11. 27) 561
362) 장 주석에게 경의를 표한 김구의 전보(천진 『대공보』, 1945. 11. 28) 562
363)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장 주석에게 감사전보 보냄(『신보』, 1945. 11. 28) 562
364) 김구와 각당 영도자들 회담, 전 한국이 단결 추진(『신보』, 1945. 12. 3) 562
365) 김구의 정부조직 한국 합법정부로(『신보』, 1945. 12. 5) 563
366) 김구 등 귀국 후 한국임시정부 조직 계획(천진 『대공보』, 1945. 12. 5) 563
367) 김구 씨가 조직한 한국 정부, 조만간 합법정부로 인정될 것이라는 소문(중경 『대공보』, 1945. 12. 5) 563
368)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한국 각 당파의 단결(중경 『대공보』, 1945. 12. 6) 564
369) 각 정당 김구를 옹호(『신보』, 1945. 12. 6) 565
370) 김구 씨, 장 주석에게 경의를 표한 전보 발송(중경 『대공보』, 1945. 12. 28) 565
371) 김구 시위운동을 취소할 것에 합의(『신보』, 1946. 1. 3) 565
372) 중경에 남은 한국교포 독립쟁취 결심 표시(『신보』, 1946. 1. 4) 566
373) 중경 거주 한인들 신탁통치 반대(중경 『대공보』, 1946. 1. 4) 566
374) 한국 교포 철퇴문제 연구 중(『신보』, 1946. 1. 9) 567
375) 오늘은 한국 '3.1'절(중경 『대공보』, 1946. 3. 1) 568
376) 이청천 남경에서 기자 간담회 소집, 한국광복군 복원 준비(『신보』, 1946. 5. 17) 568
색인 570
원문 : 중국보도기사 II 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