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노동운동 40년을 되돌아보며|이종복가난한 양복공의 아들로 태어나임시공으로 대한중기에 입사1970년, 27세 나이로 노조 분회장에 출마우리 손으로 탱크를도시산업선교회 참여와 정보과 형사들의 미행감시내나름대로의 노조운영전태열 열사와의 인연8시간제도 도입운전연습으로 막은 정리해고금속노조의 제명1980년 노조민주화운동80년 신군부의 등장과 계엄확대 조치80년 신군부 노조간부의 정화조치강제퇴직한국노총 조직교육국장5.1 노동절 쟁취노총 사상 초유의 총파업대통령 선거와 정책연합노총의 정치방침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가장 힘들고 아쉬웠던 점노조간부로서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내가 겪었던 노동운동|이호승사회생활의 첫걸음 농촌운동으로 시작노조운동에 발을 내딛고 임시직 해고를 파업으로 막다첫 단체협약 체결전태일 분신과 금연.금주 운동투쟁과 협력산재사망 사건과 8시간 노동제 관철지부장직을 그만두면서 전개한 비상계엄 하의 농성투쟁조합원 자격까지 박탈당하다권력의 탄압에도 꿋꿋했던 삼성제약노조한국노총 쟁의지도국장으로노동위원회의 어이없는 판정임금 삭감 없는 주 44시간제 관철 농성투쟁후배들에게나의 노동운동 회고|남일삼학업을 중단하고 광부가 되어총회 발언이 계기가 되어 노조 총무로 발탁군 제대후에 노조 지부장으로광산촌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노동조합 운영실태첫 단체협약 체결외부교육 받으면서 의식 일깨워지역노조 결성으로 노조가 노사관계 주도권 잡아광산노조와의 인연광산노조 쟁의부장이 되어국가보위체제 하의 단체교섭1980년대 권력공백기의 노동운동사북 동원탄좌 노동자와 가족들의 폭동신군부의 정화 조치로 노조와 회사를 그만 두고 다시 광산노련으로불만 누적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집단행동제1연화, 제2연화 광산 파업87년도 노동자 대투쟁과 광산노조 투쟁폐광과 광산 노동자 생존권유승규 함태탄광 위원장 국회의원 출마와 선거 활동한국노총 조직국장으로 노동운동 계속가장 기억에 남는 일후배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