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이육사 연보평전을 다시 쓰면서육사가 사용한 이름, 264에서 戮史를 거쳐‘이원삼’에서 ‘이활’로이활과 대구 264264에서 육사肉瀉ㆍ戮史를 거쳐 육사陸史로육사의 고향, 원촌 마을 881번지육사를 만나러 가는 길〈계절의 오행〉에 담긴 원촌 마을1904년, 육사의 출생과 집안 전통육사를 둘러싼 ‘무서운 규모’육사의 형제들1909~1924년, 육사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한문을 배우며 자라나다보문의숙寶文義塾을 거쳐 도산공립보통학교 다니다혼인하고 대구로 이사하다일본 유학1925~1926년, 중국을 드나들며 민족의식을 키우다대구 조양회관에서 문화 활동을 벌이다베이징 나들이베이징에서 ‘중국대학 상과’에 다니다1927~1930년,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꺾이지 않다장진홍 의거에 따른 수감 생활 1년 7개월대구에서 기자 생활‘대구 격문 사건’으로 2개월 구금되다잦은 만주 나들이, 결국은 베이징으로《중외일보》에서 《조선일보》로1931~1933년, 초급 군사간부가 되다윤세주尹世?가 권한 난징행베이징을 거쳐 난징에 도착한 의열단의열단,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열다육사, 난징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다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다니다졸업 기념으로 연극을 공연하다육사가 맡은 임무봄비 내리는 난징에서 국내 침투 준비의열단에 가입하지 않았다는데1933~1934년, 국내 근거지 확보하다가 체포되다상하이에서 루쉰을 만나다서대문 감옥에 갇히다1930~1944년, 평론가·수필가·시인의 삶본격적인 글쓰기와 사회 활동〈청포도〉와 〈절정〉1933~1936년, 시사평론에 보이는 그의 시대 인식시사평론가로서의 육사육사의 정세 인식1943년, 친일의 물결 헤치고 투쟁의 길로또다시 베이징으로 간 까닭은충칭과 옌안을 연결하려 하다베이징에서 순국하다‘베이징 감옥’은 어디일까고향에 묻히다백마 타고 온 초인, 이육사주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