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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흑인문학의 번역과 한국문학(화)의 지평 : 『흑인문학전집』(1965)을 중심으로 = Cold war negro literature translation and Korean literature(culture) prospect : focusing on The Selected Works of Negro Literature(1965)
이 글은 1965년 출간된 한국의 유일무이한 흑인문학전집인 『흑인문학전집』(전 5권, 휘문출판사)을 실증적으로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냉전기 흑인문학의 번역수용사를 재구성하는 한편 흑인문학과 한국문학(화)사의 다면적인 접변을 탐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전집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을 감안하여 세 가지 논점으로 접근한다. 첫째, 『흑인문학전집』의 번역 안팎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고 먼저 발간된 일본의 흑인문학전집과 비교한다. 이 전집은 자체 기획한 한국 고유의 흑인문학전집으로 18세기 중엽~1960년대 초 미국 흑인문학의 계보와 계기적 발전사를 파악하기에 손색이 없는 편집체계를 갖추고 있다. 아울러 할렘르네상스기의 흑인문학과 사회주의적 전망에 입각한 흑인문학을 개척하며 미국 흑인문학의 제3세계적 관점을 선취한 리처드 라이트의 저항적 흑인문학을 중점 편집함으로써 미국 흑인문학사를 관류한 저항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유용성이 크다. 이는 미국 흑인문학에 대한 한국적 정전화 과정이기도 했다. 다만 흑인작가의 작품만을 수록했고, 1960년대 말콤 엑스의 흑인민족주의의 영향 속에 흑인문학의 새로운 전환을 나타낸 흑인미학이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흑인문학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부족함이 크다. 우리에 앞서 번역 출판된 일본의 흑인문학전집과의 관계가 논란될 수 있으나, 전집 구성의 유사성은 단순 모방이라기보다는 한국과 일본 모두 저항적 흑인문학에 중점을 둔 소개․수용으로 비롯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둘째, 이 전집이 지닌 파급을 미국 인종갈등과 그 영향 속에 비등한 혼혈—흑인담론과 결부시켜 1960~70년대 한국사회의 인종의제를 거시적으로 탐색한다. 전집 출간 시점인 1965년 무렵 혼혈—흑인으로 연쇄된 인종의제가 대두하는 것에 착안하여 미국 흑백분규의 고조와 이의 국내적 수용에 따른 인종주의 혼혈담론의 활성화, 혼혈인들의 대담한 고백으로서 혼혈수기의 출현과 혼혈에 대한 문화적 재현의 다양한 확장, 정부 혼혈정책의 기조와 민간 주도 기지촌—혼혈아의 실태조사, 성년혼혈인의 자체 조직화와 인종의식 등 당대 인종—혼혈담론과 관련된 여러 지점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이를 통해서 당대 인종—혼혈의제가 혼혈인 수기, 아메라시안의 쟁점화 등을 매개로 다지역적 초국성으로 확대되었고 인종주의의 사회적 공모와 배제에 못지않게 혼혈인 내부의 인종주의도 뚜렷했다는 사실 그리고 인종담론이 흑백혼혈로 축소돼 재생산되는 맥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어도 흑인문학의 대중적 수용은 한국사회에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던 인종주의를 심문해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는 가운데 1970년대 후반 미국 흑인문학 붐의 저변을 이룬다. 셋째, 흑인문학과 제3세계문학론의 접속을 중심으로 흑인문학의 번역과 수용의 양상을 살폈다. 이 전집 출간 후 흑인문학에 관한 논의가 부진했고 번역 또한 전집류에 일부 텍스트가 수록된 것 외엔 드물었는데, 1970년대에 들어 제3세계론—제3세계문화(학)—흑인문학이란 구도 속에 번역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흑인문학에 대한 전유는 1970년대 후반 제3세계문학—흑인문학의 관계 설정과 제3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흑인문학을 제3세계문학의 전범으로 배치한 백낙청 및 창비그룹의 제3세계문학론이 중심을 이룬다. 다만 제3세계문학과 흑인문학에 대한 축소된 번역에 따른 자료적 한계로 인해 중역된 제3세계문학, 미국 중심주의를 현출한 것은 문제였다. 다른 한편에서 미국 흑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수용 열풍이 공서하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 미국 흑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과 미국 흑인문학을 전범으로 한 제3세계문학론의 다소 엇갈린 병존, 그 교차와 거리에 미국 흑인문학에 대한 주체적 수용의 가능성과 한계가 존재한다. 본고가 수행한 논의의 성김을 채우기 위해서는 흑인문학의 번역과 수용사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대시켜 냉전과 흑인문학의 관계를 비교사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과 함께 산재되어 있는 혼혈인의 수기 발굴 및 아메라시안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켜 인종담론에 대한 역사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