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에 말씀을 사모하고 자기 영혼의 구원에 간절함을 느끼는 사람이 이 책의 주요 독자임을 밝힌다. 그는 복음의 초심자들도 성경 본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주석을 써 내려갔다. 웨슬리는 회심 이후 신성회(Holy Club)에서 매일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기도하고, 시편과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읽으며 경건과 영성 훈련에 힘썼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내면뿐만 아니라 외적인 영역에서도 드러나야 한다고 보았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성령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강조했던 목회자였다. 「웨슬리와 함께 읽는 사복음서」 시리즈의 『마태복음』은 영성과 경건의 길을 걸어온 그가 죽음을 극복한 후 집필한 『신약성서주석』의 첫 번째 저작이다. 마태복음을 문맥, 문장, 단어 단위로 세밀하게 해체하여 간결한 해설을 덧붙였고, 본문에 장마다 성경을 삽입하여 웨슬리가 주해한 단어에 밑줄을 긋고, 번역자의 풍성한 해설을 덧붙였다. 웨슬리의 마태복음 주석을 통해 주석이 성서 연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마치 한 편의 설교처럼 경어체로 써 내려간 역자의 해설은 웨슬리의 주석을 읽어 내려가는 독자들에게 메시지의 풍성함과 친근감을 더해줄 것이다. ◎ 시리즈 소개
1763년 감리회 연회에서 “감리회의 설교자는 웨슬리의 『신약성서주석』과 네 권으로 된 『표준설교』에서 지향하는 방향성에서 어긋나게 설교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명시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표준설교』를 연구하고 읽는 분위기가 많이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주석』은 여전히 소외의 대상이다. 따라서 이 「웨슬리와 함께 읽는 사복음서」 시리즈는 『신약성서주석』을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웨슬리의 성서 주석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설교자나 성경을 제대로 읽고자 하는 이들이 성경 본문을 더욱 쉽고도 정확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웨슬리의 『신약성서주석』과 더불어 성경의 장마다 그 해당 본문을 분석하고 그 메시지를 풀어낸 해설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쉽고도 밝히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이 책은 오늘날의 평신도나 목회자들이 참고하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용한 주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웨슬리의 주석만을 의지하지 말고 최신의 학문적 주석도 병행해서 보면 좋을 것이다. 오히려 이 주석은 웨슬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주석 곳곳에서 웨슬리의 신학적 세계를 엿볼 수 있고, 이것을 통해 웨슬리의 신학과 그가 주장했던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자 서문과 해설> 중에서
선행을 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통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은 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에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정신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행동인지 잊으면 안 됩니다. 경건한 생활, 선행과 자비의 행위로 치면 바리새인을 따라갈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 헤롯당원, 열심당원 등 당시 다양한 분파 중에서 누구보다도 백성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께 많은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외적·내적 경건이 겉과 속이 다르고, 하나님의 계명의 참된 정신과 취지는 무시한 채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하나님의 눈보다는 사람의 눈을 의식한 경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은 무엇을 얼마나 실천했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행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느냐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은 그들의 것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산상수훈의 첫 장 말씀을 묵상하며 이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우리 자신도 함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중에서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늘 결단을 요구합니다. 매 순간 어떤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복음에 귀를 막지만, 어떤 이는 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뒤로 물러서기도 합니다(히 10:38). 근심하며 뒤돌아서는 이유는 많습니다. 재물이 많아서(19:22), 인간적인 관계로(8:21), 따돌림당하거나 먹고 사는 데 위협이 두려워서(요 9:22),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26:56, 69-75) 혹은 다른 여러 이유가 우리를 망설이게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의 말처럼 이것은 이유가 아니라 핑계이며, 이 핑계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려면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합니다(44, 46절). 천국을 소유하는 길은 많은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어리석고 달갑지 않은 것입니다(고전 1:23). 그러나 비록 그 길은 좁고 험하지만, 생명의 길입니다(7:13-14). 그 길 끝에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과 그 모든 길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기억한다면(『표준설교』 18.3.1-13), 우리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