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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조각의 진흙 더미

조각에서 시를 발견하고, 시에서 조각의 입체감을 찾는다. 신휘 시인의 시 43편과 유건상 조각가의 조각 40여 개가 합쳐진 시집 『추파를 던지다』는 시와 조각이라는 이차원과 삼차원 두 세계를 결합시킨다. 두 예술가의 실험적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는 시집이다.

이차원과 삼차원의 결합
우주의 진흙을 주무르다


언어와 조각은 평면과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이러한 위치의 차이는 넘나들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지지만, 언제나 사람의 상상력은 숙명을 뛰어넘으면서 행복을 주었다. 시에서 조각을 발견할 수 있고, 조각에서도 시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조각에서 시를 발견하는 순간은 의외로 많다. 자코메티의 세계는 잘 발골된 언어의 탑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로댕의 미끈한 질감에서 발견되는 에로티시즘의 입체감은 사람을 생의 욕망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와 반대로 조각의 입체감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시도 있다. 김춘수의 「꽃」 같은 경우는 허공에 단어를 새겨 사람들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조형을 각인시킨다. 언어로 상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조각도를 휘둘러 사람들 마음에 존재를 구축해 낸다.

김천에서 농업이라는 공동의 직업 영역을 가지고 있는 신휘 시인과 유건상 조각가는 예술이라는 또 하나의 연결성을 통해 실험적인 도전에 나섰다. 두 세계를 연결해 새로운 공간을 열어가는 길을 만든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평면과 공간 세계를 합치자 시집은 시간까지 끌어당기게 되었다.

이따금 수면 위로 핍진한 가계의 밥 짓는 연기만 피워 올리는 고래의 구릿빛 꼬리는 하얗게 일렁이는 대리석 파도 위로 헤엄친다. 알 듯 모를 듯 난해한 문장처럼 불어오는 바람은 청동 깃털이 짙푸른 세라믹 위에 남기는 아지랑이 파문으로 형상화되었다. 시와 조각, 무엇 하나 먼저 나서는 법 없이 어우러진다.

그들의 연결을 통해 두 예술가는 감상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조각이 된 시의 입체성과 시가 된 조각의 평면성이 뒤섞여 만들어진 세계는 감상자의 개입을 통해 완성된다. 독자에게 감상자라는 지위를 부여해 시인의 언어와 조각가의 손길이 만나서 무엇을 탄생시켰는지 물으며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다.

박기영 시인은 이 콜라보가 즐거운 이유가 두 사람의 세계에 제삼자가 그 답을 만들어 행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만남은 감상자의 시선이 닿고 그 시선의 무수한 말들이 피어올라야 완성되는 순간을 이루어낸다.

그들은 언어와 공간의 영역에 독자의 상상력을 개입시키면서 그들의 작업 속으로 들어와 함께 세계를 해석하고 나눠 보자고 말을 건넨다. 이제 그 답을 만들어 이들의 행위를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우주의 진흙을 주무르듯 이 시집을 마음껏 주물러 보라. 우주는 그렇게 당신이 함께함으로써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