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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153-21-5

- 서명: 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 편/저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 발행처: 흐름출판(2021-08)

서평
 미래의 신경과학과 AI의 세계
서평자
 이대영,중앙대학교 교수
발행사항
 559 ( 2021-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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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존재에 관하여
2장 마음과 표상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하여
3장 느낌에 관하여
4장 의식과 앎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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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출현 자체는 자연적이고 살아 있는 유기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생명체들의 문제 해결 능력, 운동의 효율성과 경제성이 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p. 200) 이 책은 무척 난해하다. 전문가의 책이라 그렇겠지만, 그의 언어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그저 몽상가의 글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대중적으로 쉽게 썼다고 해도 저자는 지식의 숲에서 자기만의 미로를 설계하여 놓았기 때문이다. 언어의 의식과 마음의 불(不)확정성을 논하는 책이라서 더 어렵다. 내용도 난해하고 문장도 난해하다는 역자의 투정은 거짓이 아니다. 그 난해함을 하나하나 풀어보자. 생명 유지와 자연 선택의 법칙은 인간과 유기체들을 통할(統轄)하고 통제한다. 한때 공룡의 시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멸종했다. 인간은 실로 나약하기 그지없는 몸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어떤 기능과 전략이 있었던 것일까. 그 원인과 과정은 어떠하였을까. 이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탐구한 주요 내용이다. 그렇게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까지도 추적한다. 저자는 책을 통하여 존재(being), 느낌(feeling), 앎(knowing)의 세 단계에 대하여 집중한다. 이것은 인간의 발달과정과도 같다. ‘존재’는 모든 생명체의 등장 그 자체를 뜻하고, ‘느낌’은 외부와 내부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러한 느낌들을 통할하는 의식체계가 곧 ‘앎’이라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앎’이란 ‘깨달음’이다. 저자는 ‘항상성(恒常性)’에 주목한다. 항상성의 요구에 따라 온갖 생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상호 협력하며 진화해왔다. 인체 내의 박테리아는 인간의 생명 유지에 큰 도움을 주며 스스로 살아남았고, 땅 위의 나무는 땅 밑의 균들과의 협력 공생을 통해 서로를 보호한다. 따라서 항상성은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동원하는 온갖 방법을 뜻한다. 온도, 내부기관 활성도, 영양 등이 항상성에 영향을 준다. 특히 ‘느낌’은 생존을 위한 감각 즉 배고픔, 목마름 등 원초적 상태를 파악하거나 공포, 분노 등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적 상태를 파악하여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감정이다. 따라서 느낌은 생명체가 몸의 내부 상태와 외부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하도록 요구한다. 우리 인간은 느낌을 소유하고, 이것들을 조합하는 의식이 있고, 의식을 지배하는 마음이 있다. 의식은 어떤 느낌이 들면 즉각 발동한다. 의식은 생명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는 욕구와 본능이 있다. 의식은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마음속 활동들이 내게 속하며, 내 소유이며, 나라는 유기체 안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마음은 의식과 별개로 움직인다. 마음은 자거나 깨거나, 의식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생명의 항상성을 위하여 365일 움직인다. 이러한 마음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가 오감으로 인식하는 외부 세계의 현상이다. 둘째는 내 몸 안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내 몸의 내부기관의 상태 즉 내적 세계이다. 셋째는 골과 골격근 등 몸 그 자체이다. 따라서 유기체가 마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위의 세 가지를 혼합하여 항상성의 지도를 그려나감을 뜻한다. 느낌에서 마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앎’이라는 것을 의식한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느낌은 마음에 어떤 사실 즉 정보를 제공한다. 정보의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연결이 곧 ‘앎’이다. 느낌과 의식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고도의 연산 행위가 인간의 창의적 행동으로 이어져 왔고, 그것이 인류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미래 로봇의 세계를 추적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느낌이 있는 로봇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한 것이다. AI와 로봇에도 마음을 넣어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로봇은 느낌이 없다. 로봇이 마음을 가지려면 그의 몸체에도 느낌과 감각을 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것은 항상성 측면에서 온갖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상호 협력해 왔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며, 향후 인간과 로봇도 상호의존성에 의한 공진(供進)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한 점에서 획기적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