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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88.1-22-2

- 서명: 주소 이야기 : 거리 이름에 담긴 부와 권력, 정체성에 대하여

- 편/저자: 디어드라 마스크

- 발행처: 민음사(2021-11)

서평
 거리의 이름에 담긴 인류의 비밀스러운 역사
서평자
 이대영,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장
발행사항
 587 ( 2022-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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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주소는 왜 중요할까?

개발
1 콜카타 : 주소는 빈민촌을 어떻게 바꾸는가?
2 아이티 : 주소가 전염병을 막을 수 있을까?

기원
3 로마 : 고대 로마인들은 어떻게 길을 찾아다녔을까?
4 런던 : 거리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5 빈 : 주소는 권력이다
6 필라델피아 : 미국에는 왜 숫자로 된 도로명이 많을까?
7 한국과 일본 : 도로명 주소와 번지 주소의 차이

정치
8 이란 : 혁명 후에 거리 이름이 바뀌는 이유는?
9 베를린 : 나치 시대의 거리 이름이 말해 주는 독일의 과거사 극복

인종
10 플로리다주 할리우드 : 거리 이름을 지키려는 자, 바꾸려는 자
11 세인트루이스 : 마틴 루서 킹 거리가 고발하는 미국의 인종 문제
12 남아프리카 공화국 : 거리 이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계급과 지위
13 뉴욕 맨해튼 : 주소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14 노숙자 문제 : 주소 없이 살 수 있을까?

나가며 : 주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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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체신 역사를 소재로 희곡(戱曲)을 쓴 적이 있다. 이를 위해 고종 시대에 설립된 우정국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20여 년 체신국의 역사와 집배원의 에피소드를 훑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필자에게 낯설지 않다. 구어의 시대에서 문어의 시대로 옮기면서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도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러한 상징은 신화를 만들고, 신화는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전쟁을 만들고, 전쟁이 다시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새로운 상징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류사는 축적되었다. 영웅들의 이름을 딴 도시가 건설되고, 영웅을 기념하는 거리도 만들어졌다. 물론 마을의 전설과 풍습과 일상적 삶의 형태와 중요한 사건도 반영하여 마을 이름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것은 대개 권력에 관한 문제다. 이름을 짓고, 역사를 만들고, 누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왜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권력 말이다. 도로에 이름을 짓고 번호를 붙이는 계몽 사업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사회를 개혁한 혁명이 되었는지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이다.” - 31∼32쪽 이 이야기가 바로 『주소 이야기』의 핵심이다. 로마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주소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 무렵 조선 시대에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과 호패법이 등장한다. 본격적인 주소 시스템은 1770년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서였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위해 병사를 차출하고자 집에 숫자를 붙였다. 이렇게 현대적 의미의 주소가 시작된다. 이후 주소는 주민을 대상으로 병역, 조세 및 범죄자 색출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런 까닭에 주소를 거부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집에 번호를 매기는 것은 곧 자유를 박탈당하고 정부로부터 감시받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정치가 시작되는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주소는 선거구 책정과 투표권 확정 등 민주주의의 증진, 범죄 퇴치 및 치안의 강화, 수도와 전기요금의 징수, 납세 및 병역 등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무엇보다도 주소는 소속감도 준다. 내가 어느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는가는 인간의 삶에 퍽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주소가 현대인의 필수요소로 각인되자 이제는 사회경제적 가치로까지 그 상징성이 확대된다. 저자는 특히 뉴욕시의 조례 40%가 도로명 변경에 관한 것이라는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일례로 부동산 개발자인 트럼프가 새로 건물을 완성한 뒤 원래 주소인 ‘콜롬버스 서클 15번지’에서 ‘센트럴파크 웨스트 1번지’로 주소를 바꾸어 줄 것을 뉴욕시에 요구한 적이 있다. 교통지옥인 ‘콜롬버스 서클’의 이미지를 벗고 센트럴파크라는 청량한 이름으로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영국에서는 ‘스트리트’로 끝나는 주소보다 ‘레인’으로 끝나는 지역의 주택이나 건물이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소지의 주택 가격이 더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치동과 청담동은 부와 교육과 신분을 상징한다. 반면에 인도 콜카타시(市)의 빈민촌인 ‘체틀라’ 주민들은 주소가 없다. 집이라는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 누워서 잘 수 있는 침대 하나가 곧 집이다. 주소가 없으면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나아가 신분 증명인 ‘아다르카드(Aadaar card)’를 소지할 수도 없다. 이 카드가 없으면 출산지원금, 연금, 진학, 식비 등과 같은 공공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여기에서 주소는 곧 인권과도 직결된다. 이처럼 저자가 펼치는 주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며 주소가 가져다주는 긍정적 측면은 물론 부정적 측면까지도 낱낱이 파헤친다. 주소와 정치와의 관계, 주소와 인종의 관계, 그리고 주소가 내포하는 계급과 지위의 문제에 대하여도 다룬다. 주소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보편적 평등 기호가 아니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경험과 계급과 신분을 나누는 개별적인 기호체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지털 주소인 이메일을 하나 이상 갖고 있다. 핸드폰은 또 다른 의미의 개별적 주소이다. 세대별 주소가 아닌 개인 주소이다. 핸드폰만 있다면 공원에서도 물건을 배달받을 수 있다. 투표마저도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과연 주소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저자의 문장력에 있다. 흡사 다큐멘터리 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야기를 이끄는 등장인물이 있다. 물론 실존 인물이다. 저자는 이들과 함께 각 나라 각 지역을 누비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섬세한 배경 묘사는 일품이다. 실체적 체험과 통계 자료가 풍부한 것도 매력이다. 번역이 깔끔하여 읽는 재미를 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