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의 스승인 앤 설리번 메이시에 관한 이야기가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된다. 자신도 시각장애인이었으면서 헬렌 켈러를 빛의 세계로 이끈 설리번 선생의 인내와 자기 희생을 헬렌 켈러의 관점에서 기록한 책이다. 헬렌 켈러의 말을 빌리자면 “여태껏 아무도 쓴 적이 없고 자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이다.
헬렌 켈러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귀먹고, 눈멀고, 말 못하는 헬렌 켈러를 교육에 뛰어난 문필가이자 사상가로 만들었으며, 비장애인도 성취하기 어려운 과업을 이루게 한 평생의 동반자 설리번 선생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동북부에서 가장 천대받는 사회 계급이었던 아일랜드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눈이 먼 채 구빈원에서 보냈고, 문학과 창의적인 활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앤 설리번의 삶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책 《나의 스승 설리번》은 헬렌 켈러가 자신을 빛으로 이끌어낸 스승 설리번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한 책으로, 아마도 설리번에 관한 한 국내에 나온 책 가운데 가장 폭넓게 다루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과 장애, 그로 인한 우울한 성향과 편향적인 성격, 실패로 끝난 결혼 생활 등 이 책에는 설리번의 일생이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또한 헬렌 켈러의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문학과 자연을 사랑하고, 동정심과 열정이 많은 한 인간으로서의 설리번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기도 하다. 교사로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던 노력하는 인간 설리번은 존경심을 자아내게 할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한 장애인 교수법의 단초를 던져주기도 한다.
설리번은 결코 헬렌 켈러가 자신의 일생을 미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불행했던 내밀한 사생활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헬렌 켈러가 스승의 일생을 쓰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어줄 일기를 불태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자신의 위대한 스승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책에는 헬렌 켈러가 설리번의 희생에 대해 가지는 한없는 고마움, 자신의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간 설리번으로서 그녀의 뛰어난 점들을 세상에 있는 그대로 알리기 위해 했던 노력, 끝까지 스승의 일생을 책임지고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독자 여러분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헌신했던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편린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책속에서
[P.넬라 브래디 헤니(헬렌 켈러의 친구이] 오래전 헬렌 켈러는 사람들이 늘 듣고 싶어 하는 주제는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헬렌은 이 주제가 별로 흥미롭지 않았으므로 곧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헬렌은 예의바르고 참을성이 많았기 때문에 책과 기사, 인터뷰, 대담, 영화, 연극, 설교단, 연단 등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수없이 되풀이해왔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그 지루한 노정을 반복하는 대신 여태껏 아무도 쓴 적 없고 자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를 써보리라 결심했다. 다시 말해 헬렌은 순서대로 일어난 배경 상황에 대한 설명은 되도록이면 줄이고, 자신과 자신의 스승인 앤 설리번 메이시와의 관계에 대한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던 것이다. 헬렌 켈러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회자될 때 성장한 사람은 이미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대공황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세대는 세월이 흐르고 전설이 덧입혀짐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졌을 터이므로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설리번 선생님은 몇몇 기사에서 묘사된 것처럼 ‘엄격하고 딱딱한 시골학교 여교사’같은 분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한 아이가 쓸모 있는 정상인처럼 충만한 삶을 살도록 하겠다는 숭고한 꿈을 이루려고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가며 헬렌과 함께 노력하는 발랄한 여성이었다.
임종이 있기 몇 주 전 헬렌 이 설리번 선생을 위로하려고 “선생님, 꼭 나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안 계시면 헬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거에요”라고 말했을 때 설리번 선생은 슬퍼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그러하면 나는 실패한 삶을 산 거야.” 설리번 선생이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긴 목표는 헬렌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