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일종의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해가 나오기 전 아침 안개 보일 때 알죠? <안개>는 거기 아주 잠깐 머물러 있다가, 그저 타버리죠. 타서 사라져… 아주 빠르게. 사랑은 현실의 첫 햇살과 함께 타버리는 안개요.” -찰스 부코스키
워즈워스, 휘트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동시대의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은 시를 일상의 언어로 옮겼다. 찰스 부코스키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미국 주류 문단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이단아, 그러나 전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소설 『우체국』과 『여자들』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우체국』은 부코스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쓴 첫 장편으로, 하급 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10년간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이후 발표된 일련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된다. 한편 『여자들』은 세월이 흘러 그가 전업 작가가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노동에서 벗어나 글을 쓰고 시 낭독회를 다니며 자유롭고 방탕한 삶을 즐기는 주인공의 일상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우체국』에서 시작해 『여자들』을 거치며 부코스키는 기승전결의 부재, 운문처럼 압축한 문체, 태연하게 드러내는 불건전한 사상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노골적인 묘사로 <점잖은> 이들의 검열 기제를 파괴하고, 독자를 끊임없이 당황하게 하는 작품들은 술과 섹스, 경마나 권투 경기 관람으로 고단한 삶을 견뎌 내는 하층민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삶을 거침없는 언어로 가감 없이 그려 낸다. 그는 거대 자본주의하에서의 부조리한 계급 구조, 허울뿐인 권위주의를 조롱하며, 주도권을 빼앗긴 부속품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감정에 충실한 삶을 꿈꾼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 <예술은 무엇보다 위장의 문제>라는 명제를 내세우며 주류 사회에 저항하는 부코스키의 반골 정신은 전 세계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에게도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U2의 보노는 부코스키에게 바치는 곡으로 「Dirty Day」를 발표했으며 본 조비, 너바나 등의 많은 밴드들이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맷 딜런 주연의 「삶의 가장자리Factotum」(2005)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자전적 다큐멘터리 「이렇게 태어나Born Into This」와 미키 루크가 주인공 부코스키 역을 맡은 영화 「바플라이Barfly」 등을 포함해 그와 관련한 1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기사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이라는 그의 작품들은 후배 작가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작가 장 주네는 그를 <미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했으며, 국내에서도 한재호, 배수아, 유용주 등 많은 작가들이 부코스키의 팬임을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부코스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경마광이 되거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섹스광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 로버트 W. 호윙턴
『우체국』
세상에, 집배원들은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구나. 이거 나한테 딱 맞는 일인데…… 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한없이 노골적이고 뻔뻔하도록 저속한 부코스키 세계의 시작점! 서양 문학사의 가장 독특한 안티 히어로 헨리 치나스키의 반(反)노동가
『우체국』은 여태껏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캐릭터가 끊임없이 독자를 당황시키는 작품이다. 금기시되는 욕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하지만 선의는 물론 악의조차 부재하기에 세상 모든 질서에서 자유로운 인간 헨리 치나스키. 여자, 술, 경마 세 가지가 삶의 전부인 하층민 치나스키는 매일 새벽 숙취에 찌든 몸을 일으켜 우체국으로 출근한다. 비에 흠뻑 젖은 우편 자루를 짊어지고, 살벌한 경비견을 따돌리고, 가학적인 상사와 정신 병원에 가도 이상하지 않을 동료들을 견디는 일상 속에서 그는 영원히 노동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는 우체국 하급 직원으로 12년간 반복적 노동과 비합리적인 관료주의에 시달리면서도,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만은 결단코 사양한다. 지극히 저속하지만 한 점의 여과도 없이 표출되는 그의 자유분방함은 사회가 정한 기준을 당연시하고, 그런 사회의 병폐를 애써 외면하는 이들을 향한 일갈이다.
반노동에 대한 찬가 <우체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반복적 노동에 대한 혐오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치나스키는 1952년부터 3년간 집배원으로 일하다가 우체국을 떠난다. 그러나 3년 후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와 그 후 10년간 우편물 분류 직원으로 일하며 우체국에 젊은 시절을 바친다. 이 노동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아볼 수 없으며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요식과 절차만이 맹목적으로 강요된다. 개인의 개별성은 말살되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권리는 무시된다. 표준 양식에 따른 반복적인 노동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도록 강요받는 직원들은 잠깐 급수대에 물을 먹으러 다녀오는 것조차 금지당한다. 헨리 치나스키는 이러한 조직의 위계와 규칙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는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표준화한 작업 양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규칙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유일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가 좇는 것은 노동을 대치할 노동이 아닌 노동하지 않는 삶, 산업 사회의 기준에서는 악이지만 개인에게는 축복일 수 있는 반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