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A)paradise built in hell :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that arise in disaster 찾아보기: p. 49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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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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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재난은 습관적이고 제도화된 행동 양식을 중단시키고 사람들을 사회적·개인적 변화에 따르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충격을 낳는다.” -찰스 프리츠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르기까지 99년 동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다섯 건의 대형 재난을 심도 있게 연구 조사하여, 대재난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책. 지은이는 1980년대부터 쉼 없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해온 진보적 저널리스트로, 국내에서는 전작 《걷기의 역사》와 《어둠 속의 희망》으로 이름을 알린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다. 지은이가 책에서 5부로 나누어 살펴본 주요 대재난은 다음과 같다. 1.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2. 1917년 12월 6일,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 핼리팩스 항구에서 발생한 무기수송선 폭발 3. 1985년 9월 19일, 멕시코시티를 안팎으로 뒤흔든 대지진 4.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 5. 2005년 8월 29일,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재난 속 인간에 대한 통념을 허무는 경이로운 통찰 재난 하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약탈과 파괴와 살인과 폭동, 상실과 고통과 비애로 가득한 디스토피아를 떠올릴 것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재난의 역사를 더듬고, 관련 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수많은 재난 경험자의 육성을 들어본 뒤, 재난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통상적인 재난 이미지들은 소수 권력자들의 두려움(엘리트 패닉)이 불러일으킨 상상이며, 미디어가 더욱더 강화하고 널리 유포한 이미지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재난 속에서 많은 이들이 강렬한 ‘기쁨’과 사랑, 연대의식을 경험하며, 그러한 경험은 재난이 일어나기 전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와 약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난은 지옥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믿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이 지옥은 유토피아를 향해 열린 문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은이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 사회질서가 갑작스레 무너진 이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가치에 의문을 갖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응시하게 되며, 그 결과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또한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이타주의라는 ‘인간 본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따뜻한 연대와 상호부조가 꽃피고, 활발한 시민사회가 부활한다고 한다. 이러한 양상은 축제 혹은 혁명과 유사한 측면을 공유한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요컨대 재난은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변화를 일구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과 에세이와 르포가 어우러진 전방위적 글쓰기 이런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지은이는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은 위의 다섯 가지 대재난 외에도 세계의 다양한 재난(최초의 현대적 재난으로 통하는 1755년 리스본 지진, 일본 관동 대지진, 중국의 지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마나과 지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 1973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사건,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 붕괴 등) 관련 자료를 검토했다. 또한 핼리팩스, 멕시코시티, 뉴욕, 뉴올리언스의 수많은 재난 경험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로 남겨진 그들의 육성에 귀 기울여,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반영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재난 사회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학자들(프린스, 프리츠, 콰란텔리, 티어니, 클라크 등)을 비롯해, 윌리엄 제임스, 크로폿킨, 도로시 데이 등 다양한 철학자와 실천가의 이론으로 자신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지은이 자신이 1989년 캘리포니아 로마 프리에타 지진을 직접 겪은 이후 오랫동안 재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재난이 초래하는 결과에 관심을 가져왔고, 이 책은 그러한 관심의 결실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 책은 그 구성 요소들이 방대하고 다채로운데다 현장 묘사와 분석이 병행되어 있어, 때로는 명쾌한 논문 같고, 때로는 사색적인 철학 에세이 같으며,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르포 같은 속성을 보인다. 사실, 이런 속성 모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점이 바로 이 책의 개성이자 미덕이다. 이런 점은 사태의 본질에 깊이 다가서고자 애쓰는 저널리스트의 진면모가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기후변화와 2008년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위기(공황)로 나날의 생활이 재난인 시대에 이미 들어서 있다. 재난의 정치사회적·철학적 의미를 고찰한 이 책은 향후 우리에게 펼쳐질 세상에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신선한 지적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각 부의 내용 소개】
1부 황금시대의 우애: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지진이 난 지 몇 시간 뒤에 펀스턴 준장이 이끄는 군대가 샌프란시스코를 점령하여 계엄령을 선포하고 재난 대응을 진두지휘한다. 하지만 군대는 시민들을 폭도 혹은 적으로 취급하고 부적절하게 대응하여 지진 후 남은 것마저 불에 타거나 폭발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한다. 한편 권위적인 엘리트와 달리, 평범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무료 급식소와 응급 처치소를 세우고, 자신에게 남은 물건과 공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평소와 달리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며 침착하게 대응한다.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현대 재난에서 나타나는 모든 양상을 보인 원형과 같은 재난이다. 이 지진을 통해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태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에서 지진을 겪은 도로시 데이는 이후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급진적 가톨릭 사회운동을 추진했다.
2부 핼리팩스에서 할리우드까지: 중대한 논쟁 1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17년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조용한 항구도시 핼리팩스 부두에서 인화성 높은 무기를 가득 싣고 프랑스로 향하던 3000톤급의 화물선 몽블랑 호를 노르웨이 선박 이미 호가 들이받으면서 발생한 폭발 사건. 핵폭발 사건이 나기 전, 인류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폭발 사건이었다. 핼리팩스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들을 돕거나 돌보려는 지극한 이타주의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았다. 핼리팩스 주민으로 폭발 당시 교회 목사보로 있던 헨리 프린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에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최초로 재난을 연구하는 학자로 변신한다. 프린스는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무한한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토머스 홉스나 귀스타브 르봉 같은 사회적 다윈주의의 주장 대신, 혁명적 무정부주의자인 표트르 크로폿킨을 자기 이론의 근거로 삼은 학자다. 2부에서는 핼리팩스 폭발 사건뿐만 아니라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 런던 공습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재난을 연구하는 학자가 된 찰스 프리츠의 주장,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재난 영화의 문제점도 짚어본다.
3부 축제와 혁명: 멕시코시티 대지진 1985년 멕시코의 수도이자 세계적 규모의 대도시인 멕시코시티를 강타한 지진은 지진 자체보다도 수십 년 동안 멕시코를 지배해온 ‘제도혁명당’의 부패한 정치가 낳은 재앙이었다. 이 재난을 계기로 멕시코 시민들, 특히 피해가 막심했던 지역에 위치했던 봉제 공장 노동자들은 크게 각성하여 최초의 독립노조를 탄생시켰고 이후 주거권운동을 비롯한 다른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투쟁을 이어가, 그 어느 곳보다 강력한 시민사회를 만들어낸다. 한마디로, 멕시코시티 지진은 결코 균열이 생길 것 같지 않던 지배집단에 무기력하게 순응했던 시민들을 대오 각성시켜 정치사회적으로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지진 후에도 오랫동안 재난 유토피아를 유지한 사례다. 3부에서는 멕시코시티의 사례뿐만 아니라, 1972년 니카라과의 마나과 지진,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 붕괴도 다루며, 멕시코의 독특한 시민운동 방식의 대표적인 예인 ‘수페르 바리오’(가면을 쓰고 특수한 복장을 한 채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운동가),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활동처럼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독특한 특징인 카니발과 혁명과 재난의 상관관계를 짚어본다.
4부 달라진 도시: 뉴욕의 비애와 영광 2001년 9월 11일 뉴욕 참사의 기억은 우리에게도 아직 생생하다. 방송 영상을 통해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하는 비행기와 그후에 이어진 붕괴 장면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사람들은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사건 이후로 미국은 10년이 넘게 ‘테러와의 전쟁’을 대내외적으로 벌였고, 부시 행정부는 재집권에 성공했으며, 미국 사회는 오로지 애국주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뉴욕 시장 줄리아니와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341명의 소방관들은 영웅이 되었다. 지은이는 그동안 뉴욕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 대신, 그때 쌍둥이 빌딩에 있었던 근로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침착하게 재난에 대처했는지, 외부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렬히 도움의 손길을 뻗었는지, 뉴욕 시민들이 겪은 심리적 변화는 무엇인지를 들여다본다. 뉴욕의 경우에도 시민들의 놀라운 임기응변과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도움, 유니언 광장 같은 공개토론장의 등장 등 많은 성과를 낳았지만, 멕시코시티의 경우만큼 심대한 변화를 낳지는 못했다.
5부 뉴올리언스: 공유지와 살인자들 2005년 8월 29일, 루이지애나 주와 그 주변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시시피 강 출구 운하의 제방들을 무너뜨렸다. 상업용 선박들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이 해상 지름길은 허리케인 폭풍해일이 멕시코 만에서 곧바로 돌진하도록 유도하는 탓에 ‘허리케인 고속도로’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라고 한다. 강풍과 홍수로 수만 채의 가옥과 기간 시설이 수장되었고, 이후에 진행된 정부 당국의 부적절한 대피와 구조 대응 때문에 뉴올리언스는 ‘감옥도시’가 되었으며, 그후 몇 년이 지나도록 대피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해 ‘유령도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기승을 부린 인종주의와 엘리트 패닉으로 카트리나 피해자들, 특히 가난한 흑인들은 막심한 물질적·심리적 피해를 입었다. 그런가 하면 카트리나는 9/11 이후 승승장구하던 부시 행정부를 비롯한 미국 우파와 엘리트들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국면 전환의 발판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5부에서 지은이는 그동안 미디어에서 유포한 뉴올리언스 주민들의 가난한 흑인들이 저질렀다는 범죄와 관련된 뜬소문들은 사실과 전혀 다르거나 부풀려진 것이며, 가장 섬뜩하고 중대한 범죄를 자행한 집단은 잘못된 신념에 입각해 움직인 공권력과 소수 백인 인종주의자들이었음을 낱낱이 밝혀낸다. 5부에서는 특히 뉴올리언스 사람들의 남긴 구술 자료(컬럼비아 대학교 구술사연구소 자료집)뿐만 아니라 지은이가 직접 대면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 풍성하다. 카트리나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파괴된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애쓴 다양한 시민사회 세력의 노력도 상세히 소개한다.
책속에서
[P.19~20] 재난을 연구하다보면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여러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지는데, 특히 두드러지는 본성은 회복력과 임기응변 능력, 관대함, 동정심, 용기 같은 것들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재난의 영향을 일관되게 ‘트라우마’, 곧 정신적 외상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참을 수 없이 연약한 인간, 행동하기보다는 행동의 영향을 받는 자아, 한마디로 피해자가 되기 딱 좋은 인간을 암시한다. 재난 영화와 대중매체는 평범한 사람들이 재난에 직면하면 병적 흥분에 빠지고 광포해진다고 묘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믿기보다, 우리를 가리켜 희생자나 야수라고 말하는 대중매체를 믿는다. 공식 자료들, 주류에 속하는 자료들은 확인해주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는 다른 인간 본성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 지금은 널리 이야기되고 있지 않지만, 이 주제는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줄 수 있는 주제다.
[P. 34] 돈이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는 사회를 한번 상상해보자. 사람들이 서로를 구조하고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 먹을 것을 나눠주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함께 보내는 사회, 사람들 사이의 오랜 벽이 무너지고 아무리 가혹한 운명이라도 함께 공유함으로써 한결 가벼워지는 사회,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한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해지거나 실재하는 사회, 현재의 순간이 너무도 급박해서 예전의 불평과 근심이 달아나버리는 사회, 사람들이 세계의 중심에서 어떤 중요성과 목적의식을 의식하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보자. 이런 사회는 본성적으로 지속될 수 없고 곧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따금 마치 번개처럼 예전의 형식을 부숴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유토피아 그 자체로, 끔찍한 시간 동안 아주 짧게 등장하는 유토피아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서로 모순되는 감정인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P. 135~136] 이타주의와 자선은 행위 자체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그 느낌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타주의는 연대의식과 공감으로 팔을 앞으로 뻗는 것인 반면, 자선은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것이다. 자선은 늘 가진 자와 필요한 자 사이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받는 자들을 경시하거나 초라하게 만들거나 생색을 낼 위험이 있다. 자선은 물질적 원조를 제공하는 대신 자긍심을 앗아간다.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에는 묘한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