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 박태환의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다. 짧지만 한 편의 영화처럼 강렬하다. 천식을 앓던 다섯 살 꼬마는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은 운명이 된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한 아테네 올림픽 부정 출발로 실격, 도하 아시안게임과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석권, 아시아인 최초로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 로마 세계선수권대회 예선 탈락 부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 정상으로 부활.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예선전 오심에도 불구하고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프리스타일 히어로』는 0.01초를 놓고 경쟁하는 수영선수의 치열한 일상을 고스란히 담았다. 최선을 다하되 즐기면서 하자는 삶의 태도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강해지는 힘이다. 몸도 마음도 유연하게 모든 승부에 임하는 자세는 불리한 체격조건을 딛고 세계 정상이 된 원동력이다. 런던 올림픽에서 그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라 세계신기록이었다. 마이클 볼 감독도 세계신기록을 자부할 만큼 경기 전날까지 최상의 실력과 컨디션을 유지했다. 뜻하지 않은 오심으로 루틴이 깨지고 꿈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스스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름다운 승부사라고 말할 만큼 그의 삶은 빛난다.
한 번의 올림픽을 위해 지구 세 바퀴 반을 수영하는 박태환, 말 못할 고민과 성장통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이 책은 마린보이에서 청년 박태환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예선전 실격 판정 후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심경, 국가대표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인내하고 절제해야 했던 생활, 태릉선수촌을 떠나 전담팀을 꾸려 호주에서 훈련한 시간, 큰 무대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즐기는 법, 대학을 선택한 기준, 경기장 패션, 이상형 등 인간 박태환의 내면을 숨김없이 공개한다. 그는 남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 걷지 않았다. 최고가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끝까지 찾았다. 방법을 찾은 후에는 주위의 시선에 반응하지 않고, 꿈을 이뤄내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 주었다. 『프리스타일 히어로』는 영혼이 아름다운 준비된 마린보이 이야기다. 고난이 닥칠수록 빛나는 박태환의 투지와 투혼이 살아 숨 쉬는 책이다. 오늘보다 빛나는 내일을 꿈꾸는 청춘 필독서다. 눈앞에 닥친 시련을 적이 아닌 친구로 여기고 극복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책속에서
항상 배가 고팠던 나를 만났을 때는 눈물도 났다. 어릴 때는 훈련을 마치면 정말 배가 고팠다. 대회에 나가서 이기지 못하면 늘 새 기록에 목말랐다. 태극마크를 단 뒤부터는 더욱 그랬다.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 0.01초도 못 줄였을 때는 화가 났다. 목표를 잃고 방황했을 때는 울었다. 눈물을 닦고 미친 듯이 훈련해 완전히 녹초가 됐을 때 배고픔도 잊고 웃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로마의 나처럼 좌절했던 친구들이 읽어주면 좋겠다. 호주의 나처럼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처럼 새롭게 시작하려는 친구들이 들어주면 좋겠다.
한 가지는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승부는 없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면 런던의 나처럼 어떤 위기에도 당당할 수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침착해야 돼, 침착해야 돼, 잘 될 거야.’ 속으로 만 번쯤 되새겼다.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는데 시간은 마치 정지돼 있는 것 같았다. DSQ(실격, Disqualified).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허무하고 억울함에 치가 떨렸다. 소리라도 질러야 화가 풀릴 것 같은데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30분 쯤 지났을까,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자포자기 상태. 갑자기 호주 전지훈련이 떠올랐다. 2년 동안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깊게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고 차분히 400m 예선을 되짚어봤다. 수경을 내려 쓰고, 출발대에 올랐다. 그때도 깊게 심호흡을 했다. 바로 출발신호가 들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들었다. 쓸데없이 몸을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3분46초68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쪼개고 쪼갰다. 몇 번을 반복해서 분석했지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화장실에 갔다 오고 물도 마시고 수영복도 다시 챙겼는데 고작 2분이 지났다. 침대에 누웠는데. 눈조차 감을 수 없었다. 어느새 4시간이 지났고 나는 거의 탈진상태였다. 여전히 감감 무소식.
자유형 400m의 전설을 꿈꾸어왔던 나는 런던 올림픽에서 내 인생 최고의 레이스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겠다는 다짐을 해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꿈은 멈춰 버렸다. 내 몸은 탄성을 잃어버린 고무줄처럼 흐느적거렸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마지막 3주 동안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루틴(Routine)화 한다. 평소 같으면 지금 이 시간은 결승에 대비해 잠깐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예선 때의 피로를 푸는 시간. 그러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낮잠은커녕 안정을 찾기도 어려웠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2시 30분이 됐다. 그런데 감감 무소식이다. 분명 잘못된 게 없는데. 지루한 30분이 더 지나갔다. ‘아. 이제 포기해야 하나’ 다시 아테네 올림픽 때 생각이 났다. 그때는 경험이 부족했다. 로마도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준비가 부족했다. 그 뒤로는 큰 위기가 없었는데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 다 잊자! 마음 굳게 먹고 200m에 집중하자!’ 3시 반쯤 마음을 정리하고 일어나는데 박 선생님이 들어왔다. “태환아,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졌어.” “그래요? 알겠습니다. 박 샘!” 조금 더 일찍 결정됐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박 샘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박 샘. 이제 금메달 따러 가야지.” “태환아 괜찮아?” “박 샘, 아시안게임 금메달 같은 건 싫다며. 내가 올림픽 금메달 걸어줄게!” “그래 좋아. 가서 금메달 따오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4시간 동안 진을 뺀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400m 결승에 맞춰 놓은 내 몸의 시간은 타이머 기능을 상실했다. 분명 위기였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은 확인됐다. 이제 이 위기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속으로 ‘침착하자! 침착하자!’라고 다짐하며 내 목표를 다시 확인했다.
‘운명의 실격코드, 정면승부가 답이다’ 중에서
“석배 형, 물 챙겼어?” “네가 좋아하는 제주도 생수로 3박스!” “3주도 안 되니까 3박스면 되겠지, 런던으로도 가져올 거지?” “보낼 거야. 야, 부족하면 사 마셔. 좋은 물 많아.” “난 이상하게 유럽 물은 안 맞아! 형도 알잖아, 맛이 없어.” “어우 촌놈, 에비앙도 못 먹어.”
나는 내가 뭐든지 잘 먹는지 알았다. 태릉선수촌에서도 이것저것 안 가리고 잘 먹었고, 호주에서도 스테이크부터 라볶이까지 골고루 잘 먹었다. 훈련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먹는 양도 정비례했다. 이런 날은 우리 테이블이 음식으로 가득 찼다. 일단 반찬으로 된장찌개, 보쌈 큰 것, 팔보채 하나. 해물파전, 샐러드 큰 것, 그리고 면발이 살아 있는 라볶이를 시킨다. 전담팀 권태현 선생님은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할 때마다 “수영선수가 아니라 소를 키우네”라고 놀리곤 했다.
이런 내가 유럽에만 가면 물 때문에 고민이다. 이상하게 유럽 생수는 맛이 없다. 처음에는 식당이나 호텔에서 주는 물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에비앙이나 볼빅, 비텔 같은 생수도 나는 맛이 없다. 물은 개운해야 하는데, 유럽 생수는 아무리 차게 마셔도 별로 시원한 맛이 없다. 그래서 런던 올림픽 때는 과감하게 물에 투자했다. 가장 중요한 대회인데, 물 같은 사소한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7월 초, 프랑스 몽펠리에로 조절훈련 나갈 때 제수도 생수 3박스를 싣고 갔다. 공항에서 대한항공 카운터에 계신 분이 물 때문에 오버차지 나오겠다는 농담을 하셨다. 라면과 햇반, 팩소주 같은 걸 챙겨가는 사람은 많이 봤는데, 물을 이렇게 많이 챙겨가는 경우는 처음이란다.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이 최고인 것처럼, 우리 몸에는 우리 물이 최고라고 말해 주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말고 신수불이(身水不二)! 역시 우리 물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