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글 7 2 사막의 싱크홀 37 3 끊어진 열차 75 4 3주 후 99 5 마네킹의 섬 131 6 표류 167 7 일요일의 무이 201 0 맹그로브 숲 221
작가의 말 233 작품 해설_ 강유정(문학평론가) 정오의 그림자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235
이용현황보기
이용현황 테이블로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872286
811.33 -13-92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872287
811.33 -13-920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어느 오후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윤고은이 펼치는 전혀 새로운 상상력 ‘재난 여행’ 상품 수석 프로그래머 ‘고요나’의 기상천외하고 스펙터클한 재난 사용법
윤고은이 마지막으로 남겨 두고 싶었던 유토피아와 결별하는 소설적 공간이며 지독한 현실의 중압감을 다른 방식으로 허구화한 첫 작품이자 자신의 어떠한 문학적 기록을 거절하는 첫걸음. 단언컨대 『밤의 여행자들』은 윤고은의 소설적 세계의 전회이자 또 다른 도약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우리는 『밤의 여행자들』 이후 달라진 윤고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강유정(문학평론가)
■ 한겨레문학상.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윤고은 - 전혀 새로운 상상력의 무한 열전
“상상력이라는 것이 근거 없는 공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라고 하는 절박한 인식의 방법임을 분명히 보여”(문학평론가 김경수) 준 소설가 윤고은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 소설의 밀도는 더욱 깊어졌고, 상상력의 자기장은 더욱 넓어졌”(문학평론가 이명원)다.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 ‘오늘의 젊은 작가’ 03으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1인용 식탁』 이후 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단언컨대 『밤의 여행자들』은 윤고은의 소설적 세계의 전회이자 또 다른 도약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우리는 『밤의 여행자들』 이후 달라진 윤고은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상찬했다. “기발한 인공 현실의 창안과 신랄한 현실 비틀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해 온 작가 윤고은의 아주 특별한 재난 여행기”(문학평론가 백지은)이며, 또한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작품이기도 한 『밤의 여행자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보다 더욱더 놀랍고 독특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경험케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독자들이라면 단언컨대, 진한 감동과 전율의 소용돌이에서 한동안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 기상천외하고 스펙터클하며 버라이어티한 윤고은의 아주 특별한 재난 사용법
재난으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 여행’ 상품만을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의 10년차 수석 프로그래머인 주인공 ‘고요나’.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그녀가 이번에 향한 곳은 사막의 싱크홀 ‘무이’다. 요나는 뜻하지 않게 여행지에서 고립되며 엄청난 프로젝트에 휘말리게 된다. 작가 윤고은은 어딘지 불미스럽게 재난과 여행을 한데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종말의 위기의식, 묵시록적 음울함 등으로 채색된 흔하디흔한 종말 서사들 틈에서 윤고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은 확실히 자별한 데가 있다.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 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 61쪽
윤고은은 재난 그 자체가 아니라 재난의 이미지가 상품이 되는 세상을 통해 묵시록적인 세계를 그려 낸다. 중요한 것은 윤고은이 그려 낸 이 공간이 단순히 재난을 추앙하는 종말의 묵시록이 아니라, 그마저도 이미지로 소유하고 상품으로 소비하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섭리를 형상화했다는 사실이다. 재난 여행이란 허구는 이곳의 현실보다 더 개연적이며 때로 핍진하다. 여기의 일상이 정글의 각축장인지, 저기의 여행지가 정글의 미로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을 떠난 주인공 요나와 함께 독자들은 ‘예기치 않은 하루’들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상품 사회의 풍속도에 민첩한 이야기인가 싶으면, 어느덧 설렘과 낯섦, 흥겨움이 생생하게 풍기는 여행기 안에 들어와 있다. 한 치 앞을 추측하기 어려운 사건, 사고 들이 드라마틱하게 밀어닥쳤다가는, 어느새 땅이 휘말려 들어가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추락하고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어 대는 재난의 한복판이다. 이 버라이어티한 소설을 횡단하는 동안 우리가 익히게 되는 것은 재난 대처법이 아니라 재난 사용법이다.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서자 곧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질문들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재난이란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자연의 재해인가, 인간의 파국인가. 재해의 ‘불운’과 그 불운이 비껴간 ‘행운’을 공존시키는 이 사태는 불가피하므로 공정한 것인가, 불가피하지만 불공정한 것인가. 그 무차별성은 신의 섭리인가, 예기치 못한 운명인가. 혹은 그 차별성은 인간의 기획인가, 예기한 필연인가. 재난이라는 시나리오 안에서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엑스트라인가. 누가 불행하고 누가 불행하지 않은가. 재난 안에서 ‘나’의 재난과 ‘남’의 재난은 구별될 수 있는가. 과연 재난이란 무엇이고 재난 아닌 것은 무엇인가. 정글은 어디이고, 또 정글 아닌 곳은 어디인가. 재난과 재건의 한복판에서 이토록 괴이쩍은 모험에 동승한 우리 모두에게 부디, 희망 있으라.
책속에서
[P.9-10] 북상하는 것. 고기압, 벚꽃,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황사, 파업, 쓰레기.
지난 한 주간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은 부음 소식이었다. 발인이 지나면 효력을 잃어버릴, 유통기한이 짧기에 신속한 것. 소식이 시작된 곳은 경남 진해였다. 하필 벚꽃의 발원지와도 같은 곳. 어느 오후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꽃 마중을 갔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일광욕을 하던 건물도, 해변의 가로등도,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P. 18-19] 그때 김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탔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요나에게 말했다. “존슨이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군.” “누구요?” “존슨 말일세, 내 존슨.” 김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자신의 사타구니였다. 그곳은 21층에서 3층을 향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고, 김과 요나 두 사람만 있었다. 김의 손은 요나가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요나의 엉덩이였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고, 고의인 것을 들켜도 상관없다는 투의 몸짓이었다. “자네 아직 젊지 않나? 근데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요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김의 손길을 피했다. 이번에는 김이 요나의 블라우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요나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김의 다른 모습을 봐서가 아니었다.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요나가 아는 바에 의하면, 김은 늘 퇴물들만 성추행 대상으로 삼았다. 옐로카드를 받았거나, 곧 받을 예정인 사람들. 어쩌면 김의 성추행자체가 옐로카드인지도 몰랐다.
[P. 33-35] 사막의 싱크홀은 5박 6일짜리 상품이었다. ‘무이’라는 곳이 목적지였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인터넷으로 조금 찾아봐야 했다. 무이는 크기가 제주도만 한 섬나라였다. 무이로 가려면 베트남 남부를 거쳐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다시 해안 도시인 판티엣으로, 그리고 판티엣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야 다다를 수 있었다. 왜 이 상품이 인기가 없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를 들여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다른 재난 여행 상품들보다 미약해 보였다. 상품 이름처럼 사막에 싱크홀이 생긴 것은 사실이고, 홍보물에 쓰인 설명처럼 그것은 꽤 ‘두렵고 슬픈 풍경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게 지금은 호수로 변해서 딱히 무서워 보이거나 독특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싱크홀’이라고 하면 적어도 2010년 과테말라 시티에 생겨난 깊이 500미터의, 도심 한복판을 강타한 괴 구멍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과연 이 지역이 그런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 재난이 한 세계를 뚝 끊어서 단층처럼 만든다면, 카메라는 그런 단층을 실감하도록 돕는 도구였다. 카메라가 찰칵, 하는 순간 그 앞에 찍힌 것은 이미 인물이나 풍경이 아니다. 시간의 공백이다. 때로는 지금 살고 있는 시간보다 짧은 공백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요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은 이미 시작된 행보를 확인하는 일일 뿐.